제59회 BFI 런던 국제영화제가 열리던 기간인 지난 10월 중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는 아르마니가 전 세계에서 네 곳의 영화 학교를 선택해 각 학교 학생들의 단편영화 제작을 후원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쇼케이스를 열어 선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아르마니의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영화산업과 맺어온 돈독한 관계는 <아메리칸 지골로> <유주얼 서스펙트> <다크 나이트> 등 수많은 명작에 등장한 아르마니 의상들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화계를 후원하고자 했고, 2014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그의 필름 프로젝트 가 그 첫 결실이었다. 아르마니는 뉴욕과 파리, 홍콩, 런던, LA, 로마의 영화 학교 학생들에게 단편영화 제작을 의뢰했다. 오랫동안 그의 아이웨어 제작을 담당해온 이탈리아의 룩소티카 그룹, 그리고 이탈리아 필름 프로덕션인 라이 시네마(Rai Cinema)가 아르마니와 뜻을 함께했다. 평소에 패션계에서도 유망한 디자이너 인재들에게 다양한 전시 기회를 마련하는 대선배로서의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프로젝트였다.
는 올해 두번째 에디션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영국영화협회(BFI)와 협력해 런던 국제영화제에서 쇼케이스를 열기로 결정했고, 시드니, 상파울루, 토리노의 영화학도들, 그리고 서울의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룩쏘티카와 라이 시네마가 도움을 주었고, 영국의 여배우 헬렌 미렌이 멘토이자 쇼케이스의 홍보대사가 되어 학생들을 격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전야제 만찬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조카이자 배우인 로베르타 아르마니, 그리고 BFI 최고 책임자인 아만다 네빌(Amanda Nevill)이 헬렌 미렌과 함께 우먼 파워를 보여주었다. 상영회 당일,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가 진행을 맡았다. 상영관을 가득 채운 각국의 기자들 또한 기대감에 차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두 번째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도시’ 그리고 ‘시선’이었다. 학생들은 실제 도시의 삶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할 것, 그리고 아르마니의 아이웨어 컬렉션인 ‘Frames of Life’을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도록 구성할 것을 요청받았다. 그렇게 각자의 도시에서 완성된 단편영화는, 공통된 테마를 놓고 저마다 다른 비주얼과 무드, 철학이 담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동화적인 이미지를 구현한 토리노의 Scuola Holden, 아버지와 딸의 기억을 섬세하게 담아낸 상파울루의 Academia Internacional de Cinema, 눈먼 여자를 매개로 심오한 세계를 펼친 시드니의 Sydney Film School 모두 각자의 개성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한편 서울예술대학교의 학생들은 서울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첫 만남을 대사 없이 감각적이고 컬러풀한 영상만으로 표현해냈다. 쇼케이스에 참석한 프로듀서 김고은은 “나는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을 믿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이미지에 집중했고, 구체적인 스토리의 묘사를 배제한 채 감정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헬렌 미렌은 특히 이 영화에 대해 ‘다채로운 색감으로 구현해낸 이미지가 매우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냈다. 쇼케이스가 끝난 후에도 각국의 영화학도들을 향해 뜨거운 취재 열기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자신의 재능을 더욱 활발히 펼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원하는 장면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