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조합의 밴드다. 겉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 말투, 성격, 심지어 추구하는 음악까지 전혀 다른 세 명의 뮤지션이 모인 포니(The Pony). 베이시스트 유승보는 그림책을 파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자유분방한 음색을 가진 보컬 최상민은 광고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송광호는 음악학원 선생님이다. 이 셋이 모여 음악을 한다.
지난 2012년에 발표한 앨범 <Little Apartment>를 마지막으로 포니는 3년간의 휴지기를 가졌다. 멤버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만의 일상을 찾아 떠났고, 각자 곡 작업을 하며 저마다의 음악 세계에 파묻혔다. 그러던 이들이 얼마 전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라는 폐쇄적인 타이틀의 앨범을 들고 불쑥 나타났다. 제각각 길을 찾아 헤맨 3년이란 시간 동안 세 뮤지션은 모두 나름의 방향으로 변했는데 그렇게 달라진 서로의 정서를 녹여 음악에 담아낸 결과물이 바로 이번 앨범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로큰롤 음악에 빠져 살던 세 남자는 이제 모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됐고, 비로소 음악 시장과 타협하지 않는 진짜 그들만의 사운드를 선보인다. “3년 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무대를 마지막으로 흩어졌어요. 격하게 움직이고 시끄럽게 소리치는 록 무대도 지겨웠고, 음악을 통해 꼭 강하고 센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이상한 강박관념도 버리고 싶었거든요. 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나보니, 각자의 취향, 음악에 대한 생각과 방향성이 모두 달라져 있었어요. 그렇게 서로 다른 음악 세계를 가지고 다시 뭉쳐 만든 게 이번 앨범이에요.”(최상민)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라는 앨범의 긴 제목에는 멤버들이 각각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 느낀 감정이 그대로 투영된다. 전형적인 밴드 음악처럼 가사와 악기 사운드로 사랑과 청춘을 예찬하거나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는 더 이상 담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모인 밴드 포니는 평범한 날들을 지나다 마주친 영감을 정제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옮겨 담은 음악을 만든다. 싱싱하면서도 거친, 날것 느낌이 나는 사운드다. 앨범의 모든 트랙에는 주로 느릿한 비트가 깔려 있다. 먹먹하게 흐르는 비트 위에 무드를 한껏 끌어올리는 악기 연주와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듯한 보컬이 포개져 꽤 깊숙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첫 번째 트랙인 ‘Ocean Song’은 깊은 바다를 떠올리며 만든 곡이에요. 보컬 파트는 과감히 삭제하고 일정한 분위기의 연주를 반복한 앰비언트 사운드예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철저히 배제하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꽉 채워 넣었죠.”(최상민) 곡이 진행될수록 머릿속에는 광활한 바다의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엔 깊고 검은 심해의 이미지가 떠오르더니, 어느새 묵직한 파도가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 증폭된다. 왠지 모르게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포니의 음악은 참 신기하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설명하기 힘든 모호한 감정들이 어우러지고 현실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은 특이한 감상이 든다.
듣는 이로 하여금 이토록 다채로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들의 음악에는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뿐만 아니라 영화나 그림 등 예술 작품에서 받은 감상 또한 녹아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BBC와 디스커버리 채널의 자연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쓴 곡들도 있죠.”(송광호) 앨범의 한가운데 삽입된 곡 ‘Days of Being Wild’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을 모티프로 삼아 완성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1950~60년대 스타일의 배경음악은 포니만의 독특한 베이스 라인과 비트로 재해석됐고, 쓸쓸한 감성이 묻어나는 박상민의 목소리는 영화 속 황량한 도시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앨범에 담긴 곡은 대부분 광호가 잡은 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어요. 영상에서 느낀 분위기를 소재로 삼아 짜온 코드와 컨셉트를 기반으로 악기 연주를 더하고 사운드 이펙트를 입혀 완성하는 식이죠.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청각적으로 얻은 영감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무언가를 보고 받은 느낌을 소화시켜 사운드에 담아냈다는 점이 이번 앨범 작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예요.”(유승보)
지난 앨범 <Little Apartment>에 비해 매우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로 진화한 만큼 그들이 만드는 무대의 색깔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 “뮤지션이 관객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반적인 무대 형식에서 탈피해보고 싶었어요. 밴드의 공연도 일종의 퍼포먼스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프로젝터를 이용해 미디어 아트 영상을 비추는 효과를 연출하면 하나의 설치 작품 같은 공연이 돼요. 연주하는 주체에게 시선을 모으는 대신 빛과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유승보) 휴지기 이전의 공연에서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관객과 직접적인 교감을 나누는 데 치중했다면 다시 돌아온 포니의 무대는 담담하고 고독하다. 감정 표출은 최대한 억제하고 보컬과 연주자의 존재를 흐릿하게 감춘 채 사운드와 곡 자체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음악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즉흥적인 기타 리프가 예상치 못한 순간 튀어나오고, 귓가에서 멀어진 보컬의 목소리는 몽롱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이 낯선 음악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공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영역에 더욱 명확한 선을 긋고 다시금 새롭게 돌아온 포니의 사운드는 특정한 메시지와 감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앨범 속 한 음 한 음이 모여 다른 세상의 풍경을 그려내듯 살며시 감각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