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들은 어떤 영화를 보며 영감을 받을까? 배우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뭘까? 1920년대에 만들어진 장 르누아르의 작품부터 최근 개봉된 거장감독의 유작까지, 감독과 배우의 영화취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영화제가 열린다. 오는 1월 21일에 개막해 2월 2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펼쳐지는 ‘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2006년에 시작된 이래 올해로 11회째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배우 임수정, 정재영 그리고 대만의 거장 감독 허우 샤오시엔과 박찬욱, 류승완을 비롯한 여러 국내 영화감독과 영화평론가들이 추천하는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총 열 다섯 명의 영화인들이 추천하는 작품을 상영하는데, 지난해 세상을 떠난 샹탈 아커만 감독을 기리는 회고전과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배우 임수정, 정재영 등 이번 축제와 함께하는 영화인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시간까지 구성된 프로그램이라니 꼭 한번 찾아가 볼만 하다.

 

<멋진 인생(It’s a Wondrful Life)>

배창호 감독이 선택한 영화.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이 1946년에 발표한 그의 후기작이다. 자신의 꿈을 희생하면서까지 같은 마을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한 평범한 남자인 주인공 조지 베일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에 나타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인간에 대한 시선은 나의 시선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힘들고 고된 삶 속에서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걸 담아낸 작품이다.” (배창호 감독)

 

<호프만 이야기(The Tales of Hoffmann)>

박찬욱 감독이 추천한 작품이다.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작품 <호프만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는 원작 오페라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 웅장한 음악과 발레가 어우러진 화려한 영상이 연이어 펼쳐진다.

“궁극의 낭만주의를 보여주는 E.T.A 호프만이라는 작가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자크 오펜바흐, 그리고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가 만든 작품이다. 즉, 문학과 음악 그리고 영화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합작품인 것이다.” (박찬욱 감독)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배우 임수정이 선택한 영화는 시드니 루멧이 연출한 1988년작 <허공에의 질주>다. 도피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주인공 대니 포프(리버 피닉스)가 겪는 내적 갈등, 꿈에 대한 고뇌, 사랑에 대한 아픔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리버 피닉스의 앳된 모습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니,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리버 피닉스, 리버 피닉스!” (배우 임수정)

 

<아들(The Son)>

배우 정재영이 고른 영화는 벨기에 출신의 감독 다르덴 형제의 작품이다. <약속>과 <로제타>로 1990년대부터 주목 받기 시작한 이 형제 감독이 2002년에 발표한 영화 <아들>은 소년원 출신의 아이들에게 가구제작을 가르치는 주인공 올리비에가 열여섯 살 소년 프랜시스를 만나면서 겪는 사건을 다룬다. 범죄와 상처,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따뜻한 시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잔잔한 가운데 점점 조여오는 긴장감과 작품 곳곳에 배치된 반전. 마음 속에 큰 여운을 남긴 영화다.” (배우 정재영)

 

<노 홈 무비(No Home Movie)>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난 벨기에 출신의 여성감독 샹탈 아커만(Chantal Akerman). 1968년에 데뷔한 이래 자신의 사적인 삶과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영화세계를 선보였던 그녀의 마지막 작품 <노 홈 무비>다. 86세인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나눈 긴 대화를 작은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기록한 영상이다.

“그녀의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방’이다. 아커만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을 정확하게 찍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역사와 내면, 영혼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었던 감독이다. 이번 샹탈 아커만 회고전에서는 이 기적 같은 관찰의 예술에 대해 감상해볼 수 있다.” (정성일 평론가)

 

<부운(Floating Clouds)>

<자객 섭은낭>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대만의 감독 허우 샤오시엔이 추천하는 영화다. 일본의 1세대 감독 나루세 미키오의 대표작으로 1955년에 발표된 <부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불륜으로 맺어진 커플의 애증관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관계의 본질을 고찰하며 전후의 황폐한 시대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주인공 남녀의 아련한 감정과 담담하게 흐르는 영화 속 흑백영상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감상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