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를 마이크로칩으로 만들어 몸에 이식하거나 손바닥에 바코드를 새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사무실에 지갑을 두고 나왔음을 깨닫거나, 만취해 어딘가 흘려버린 지갑을 찾기 위해 전날밤의 동선을 더듬고 있을 때면 가까운 미래에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 확신하곤 했다. 어쩌면 그 전 단계일지도 모르는 모바일 페이가 요즘 뜨겁다.
인터넷 쇼핑을 일찌감치 포기한 것은 다 액티브X 때문이다. 카드 번호, CVC 번호, 보안카드 번호에 액티브X 설치하고, ARS로 인증까지 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은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소비자로 안주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만난 카카오페이는 혁명이었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지 않고도 카카오톡만 깔려 있으면 쇼핑이 가능했다. 단 한 개의 비밀번호로 20 개의 카드를 자유자재로 결제할 수 있다니! 하지만 결제의 운명은 나의 의지라기보다 가맹점 유무에 달려있었다. 카카오페이를 사용하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이벤트로 무료 이모티콘을 받은 순간이었다. 이후 페이코와 시럽 페이 등 후발 주자들의 공세는 대단했다. 할인 쿠폰과 더블 마일리지 유혹에 자유로운 이는 별로 없었다. 스마트폰 바탕화면은 모바일 페이앱 아이콘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할인 쿠폰을 사용할 때 그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갤럭시 S6를 최신 펌웨어로 업데이트했더니 자동으로 삼성페이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됐다. 별생각 없이 사용 절차를 하나하나 따라 가봤다. 본인 인증 후 지문 인증하고 서명을 남겼다. 후면의 카메라를 사용해 사각 프레임에 맞춰 실제 카드를 캡처하니 자동으로 카드번호와 유효 기간이 입력됐다. 이어 CVC 번호와 비밀번호 앞 두 자리를 입력하고, 이용 약관에 동의했다. 자, 이제 돈 쓸 준비는 끝났다.
사용하기에 앞서 결제 방식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삼성페이, 애플페이 등 모바일 직접 결제에는 근거리 무선통신이라 하는 NFC(Near Field Communication) 방식과 마그네틱보안 전송이라 부르는 MST(Magnetic Secure Transmission) 방식이 있는데, 현재 애플페이가 사용하는 NFC 방식의 경우 해당 특수 기기로만 결제가 가능하다. MST은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긁을 때 생기는 자기장 원리를 이용한 방식으로 카드 단말기 마그네틱 리더에 접촉하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 삼성페이는 위 두 가지 방식 모두 가능했지만, 일주일 동안 NFC를 지원하는 가맹점은 찾을 수 없었다.
출근 준비에 앞서 가장 시급한 것이 교통카드였다. 선·후불 방식의 결제가 모두 가능했는데, 삼성페이의 경우 삼성카드와 KB국민카드만 등록할 수 있었다. 두 카드 모두 이용하지 않는 터라 후불 방식의 휴대전화 결제를 선택했다. 충전 금액은 다음 달 휴대전화 요금에 합산돼 청구되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티머니 수수료가 6%나 됐다. 결국 티머니 애플리케이션을 추가로 다운받아야했다.
주로 일주일 동안 식당과 편의점, 마트에서 모바일 결제를 이용했다. 애플리케이션을 찾아 일일이 터치하지 않고, 그저 액정 하단을 위로 쓸어 올리니 잠금화면에서도 결제 앱이 실행됐다. 홈버튼에 지문을 인식하고 나니 곧 바로 결제 가능 상태가 되었는데, 문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원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는 거다. 결제 가능 상태는 15초 동안 유지됐는데,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 보면 그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점원에게 설명하는 사이 초기화되기 일쑤였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며 자주 초조해했다.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카드 결제 직접 할게요” 하고 스마트폰을 카드 결제기에 슥 갖다 댔다. SSG페이를 운영하는 신세계 계열의 모든 업장에서 사용할 수 없었는데 백화점이나 마트는 그렇다 쳐도 스타벅스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큰 타격이었다. 결국 SSG페이를 다운받아야 했다.
은행에서 현금 인출도 가능한데 현재 유일하게 현금 지급 서비스를 실시하는 삼성페이의 경우 우리은행, 그것도 인식 장치가 삽입된 일부 최신 ATM에 한해서 거래가 가능했다. 일반적인 ATM은 카드를 긁는 게 아니라 삽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사용해보니 물리적인 시간만 따지면 구동 시간은 꽤 긴 편이었다. 평균적으로 지문 인식 후 결제 시스템이 구동이 되기까지 3~4초 정도 소요됐고, 기기를 갖다 댔을 때 정보를 인식하는데 2~3초가 걸렸다. 지갑을 들고 있는 상태라면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는 시간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결제 후 영수증도 종이가 아닌 휴대전화로 전송되면 어떨까, 스마트폰 액정에 바로 서명해도 편리하겠다는 하는 등 몇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지갑과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매번 가방을 뒤적거려야 했던 날들과 비교하면 생활이 한결 홀가분해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여분의 배터리 없이 하루 종일 야외 촬영을 하던 날의 떨림과 긴장의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