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2mcmalimh12_01

첫 한 달에 올인

이직을 하든, 회사를 옮기든 일단 내 커리어에 변화가 생기면 첫 한 달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첫인상이 결국 끝까지 간다. 냉혹한 정글 같은 사무실에서는 ‘처음이니까’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더라. 찍히면 그냥 끝이다. 팀장한테 한번 찍히면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새로운 곳에서 처음 부여받은 업무는 무조건 깔끔하게 끝내야 하고,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인지 어필해야 한다. 첫 한 달은 조금 오버해도 좋다. ‘쭈그리’보다는 ‘오버쟁이’로 살기가 더 편한 법이다. 괜히 구멍 많은 사람으로 찍혔다가는 학생주임인 아버지를 담임 선생님으로 만난 ‘도룡뇽’처럼 팀장이 매번 나만 딱 찍어 매일매일 체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작이 어긋나면 끝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H, 출판사 편집팀

새로운 상사를 만났다

연말이면 휴가 내기가 두렵다. 폭풍처럼 이어지는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 대상자가 아니어도 많은 변화가 몰아치곤 한다. 소문만 무성하던 인사이동이 그저 뜬금없는 소문으로 그칠 때도 있지만 신들린 듯 맞아떨어질 때도 있고, 또 아무런 준비 없이 변화를 맞닥뜨릴 때도 있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나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러운 건 1년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상사를 맞이할 때다. 아무리 원수 같은 상사였어도 상사가 바뀌는 건 두려운 일이다. 일단 새로운 상사의 정체가 밝혀지면 그의 휴대전화 번화부터 입력하라. 상사의 첫 전화에 ‘누구세요?’ 하고 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원래 있었던 부서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상사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사내 정치라는 게 티가 나면 도리어 독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함께했던 상사가 자리를 옮기는 날 낯간지럽지 않을 정도의 문자메시지나 짤막한 이메일 보내는 것도 좋다. 원래 윗사람이란 외로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기에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마음이 움직인다. 갑자기 들이닥칠 다음 인사이동에 내가 예전 상사의 부서로 옮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P, IT 회사 마케팅팀

수상한 분위기

올해로 벌써 직장생활 7년 차. 이젠 어지간한 변화에 충분히 익숙해졌다. 새로운 상사가 오거나 뉴페이스 신입사원이 자리를 채우는 게 특별히 새롭지도 않다. 익숙해졌다는 건 능숙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상사가 바뀌면 그의 이전 경력을 확인하는 일은 이제 문자메시지 몇 번 주고받으면 되는,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이 있으면 이름을 열심히 외운다. 신입사원 이름 못 외우는 것만큼 ‘꼰대’ 같아 보이는 것도 없다. 이름에도 시기별로 트렌드가 있어서 이상하게 꼭 한 해에 비슷한 이름의 신입사원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의외로 쉽지 않다. 올해는 ‘예’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신입이 꽤 된다. 인사 발령 시즌이면 이상한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거다. 그럴 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 명함을 열심히 뿌려대는 거다. 식당에 가서도 부지런히 명함을 놓고 나온다. 한꺼번에 버려도 될 일이지만 이상하게 나로서는 의식 같은 거다. 그렇게 명함을 다 뿌리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부서로 떠나갈 준비를 마친 기분이다. 아! 그리고 동료들 없을 때 틈틈이 짐을 미리 싸놓는다. 남들 다 퇴근하는데 혼자 짐 싸느라 퇴근도 못 하고 많은 짐을 낑낑거리며 가지고 나가면 괜히 비참해진다. K, 식품회사 인사팀

부서를 옮겼다

홈보팀에서 일한 지 5년쯤 되었을 때 커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어 부서를 한번 옮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보다는 사내에서 팀을 옮기는 게 좀 더 안전하고 커리어도 더 풍부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원래 일하던 팀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다. 인사 평가 때도 늘 좋은 점수를 받았고 동료와 특별히 불화를 겪지도 않았다. 다만 커리어에 욕심이 났을 뿐이다. 그래서 해외영업팀에 지원했다. 이직하는 게 아니라 부서만 옮기는 것이니 위험부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다. 해외영업팀과 홍보팀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홍보팀은 여초 조직인 데 반해 해외영업팀은 완벽한 남초 조직이었다. 회식도 이전보다 훨씬 많았고, 이미 견고하게 맺어진 그들 사이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중요한 업무는 내가 아닌 나보다 훨씬 해외영업팀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 차지였다. 1년 버티면 다시 홍보팀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팀에 정착하지 못한 아웃사이더가 돼버렸다. 나는 끝내 친한 동료 하나 건지지 못했고, 팀을 옮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망갈 생각만 하는 ‘객식구’였다. 요즘은 이직을 알아보는 중이다. 어차피 백세 인생, 내 커리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J, 제약회사 해외영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