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이란 말은 있어도 ‘남심’이란 말은 없다. 아무래도 여심을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탓이리라. 솔직히 여심은 여자들도 그 실체를 잘 모른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여자 마음에 비하면 남자들의 마음은 참 빤해서 고맙기까지 하다. 여자의 그런 아리송한 속내를 담은 소설과 에세이가 새로 나왔다.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작가의 작품이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소소하게 ‘썰’을 푸는데 마냥 소박하지 않고 오히려 화끈하고 솔직하다.
<여자는 허벅지>. 제목이 일단 다 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아주 사적인 시간> 등을 발표하며 연애소설의 달인으로 등극한 여성 작가 다나베 세이코가 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선별해 에세이로 묶었다. 1928년생인 그녀는 서른 살에 데뷔해 연애소설은 물론 여행기, 사회 풍자적 에세이를 저술하고 고전문학 번역에도 열성을 다했다. 그런 원로 작가가 1971년 무렵부터 20여 년간 연재한 글들은 적나라하면서도 거부감 없이 경쾌하게 여자와 섹스, 그리고 여심을 그린다. 지금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시대를 살았음에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독립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 그녀는, 책에서 남자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기조차 어려운 여자의 마음 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길어 올린다.
‘여자도 때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성욕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때라고 해도 심리적 욕구 또한 충족되었으면 하는 의식이 아주 심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략) 성욕. 남자에게 그것은 주사기에 들어 있는 약간의 에센스이고, 여자에게 그것은 양치액처럼 희석시켜 오래도록 쓰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듯 진지하고도 명쾌하게 남자들의 질문에 답하는가 하면, 여자 일생의 3대 쇼크는 ‘초경, 첫 경험, 출산’이 아니겠느냐는 남자의 추측에 모르는 소리라고 일침을 가한다. ‘두 번째 쇼크는 바로 결혼생활이다. 첫 경험을 했다고 해서 누가 서러워하겠는가. (중략) 여자는 결혼생활을 통해 남자의 정체와 본질을 깨닫는다. 밖에 나가면 대단한 천재, 대단한 정치가였던 사람이 집 안에 발을 한 발짝만 들여놓으면 누가 보더라도 그냥 아저씨가 된다. (중략) 이것이 인생에 눈뜨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그에 비해 첫 경험, 처녀성 상실 따위는 그저 우스운 이야기일 뿐이다.’ 이 정도면 시쳇말로 ‘사이다’가 따로 없다. 30~40년 전에 쓰인 이야기인데도, 자연스럽게 산전수전 다 겪은 왕언니의 속 시원한 입담에 빠져들게 된다.
사노 요코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의 여성 작가가 중년에 쓴 수필집이라는 면에서 <여자는 허벅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사노 요코는 1938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전후 세대인데 그림 작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에세이를 집필했다.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여심은, 다나베 세이코의 그것에 비교하자면 한층 내밀하고 감성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사노 요코는 여자들이 가진 몽상하는 기질과 열등감, 비합리적인 사고방식 등 남에게 쉬이 털어놓기 힘든 부분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한결같이 아름다운 사람이길 열망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 나의 친구는 무서운 말을 한다. “절세 미녀란 건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을지 몰라. 하지만 절세 추녀란 건 어느 시대에도 결코 변하는 일이 없을걸.”’ 작가는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미니멀하게 꾸민 감각적인 방을 보면서는 ‘이런 곳에 사는 남자는 여자를 임신시키고 “책임이라고? 너도 즐겼잖아?” 하며 독한 담배 연기를 코에서 내뿜는다’고 상상하고, 분홍색 소파에 페르시아 융단이 깔린 집 사진에서 느껴지는 부자의 에너지와 배짱에 보는 것만으로 녹초가 된다며 시니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정작 자신이 베란다에 놓은 흰 의자가 촌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안달한다. 물건을 담았던 검은 비닐봉지를 그냥 버리는 게 아까워서 외출해서 굳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봉지를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작가에게 동생이 한마디 한다. “언니, 지금 이 전화비면 쓰레기 봉지 몇 장이라도 사겠다.” 예쁜 여자를 질투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가끔은 앞뒤가 맞지 않게 군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도 여심이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는 사실 앞의 두 에세이에 비하면 발칙함이 덜하고 훨씬 말랑하다. 출판사의 잡지 편집부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 코사카이 미야코의 일상을 담은 픽션 소설이다. 술을 좋아하는 미야코는 입사 후 첫 회식 자리에서 하늘 같은 선배 편집자에게 술주정을 부리는 등 온갖 사고를 치면서도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주당이다. 그런 그녀가 회사에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그러다 애인도 만들고, 그런 식으로 창창한 20~30대를 보내는 일상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펼쳐진다.
미야코의 연애 스토리 못지않게 여자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주인공과 회사 동료들에 대한 묘사나 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이다. 대학 친구가 잘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이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야’라고 뻐기는 데 배알이 뒤틀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토로하는 여자 동료의 심리를 두고 남자 동료와 갑론을박을 벌이는가 하면, 특별히 사랑하는 마음은 없지만 만만한 상대라는 이유로 교제해온 남자에게 뜻밖의 이별 통보를 받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한다. 이 책들을 다 읽는다고 여심에 통달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