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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한테 그래? 그렇게 아니꼬우면 팀장한테 직접 말하면 되잖아. 나도 야근하다 네가 퇴근할 시간 맞춰서 달려온 거야. 왜 기껏 마중 온 나한테 신경질 부리는데!” 싸움의 발단은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던 그녀였지만, 그 사정을 이해해주는 대신 그녀의 화에 기름을 부은 건 나였다. 들불처럼 번진 싸움은 며칠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연애는 피로했다. 십자군 전쟁처럼 지지부진 이어지는 말싸움을 끝내고 싶어 메신저 창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옆자리 후배 책상에 놓인 책 표지에 내 생각이 적혀 있었다. <잘하고 싶다, 사랑>. 핑크색 배경에 검은 글자가 선명했다. 봐도 돼? 후배는 내 얼굴을 보더니 한 권을 더 추천했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이란 책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경으로 읽기 시작했다. 두 권 다 연애 잘하는 비결이 담겨 있었다.

 

내려놔라

<잘하고 싶다, 사랑>

<잘하고 싶다, 사랑>을 펼친 건, 연애를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녀와 벌이는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책에 두른 띠지에 ‘사랑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막상 펴 본 책에 승리를 위한 전략은 없었다. 이건 관계에 대한 해법서다. 연애 탈무드라고나 할까? 어쨌든 우리의 다툼은 그녀의 불평과 그것을 무시하는 내 태도에서 비롯된다. 책은 그런 나를 정확히 꼬집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꿈이 실현 가능하냐 불가능하냐가 아니라 내가 그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아는 것이다.”

맞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안다. 알면서 내게 투정을 부린다. 사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편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을뿐인데, 나는 그래주지 못했다. 나도 나지만, 매 순간 이런 식의 자질구레한 수행평가로 나를 시험하려 하는 여자친구도 솔직히 너무하다 싶다. 이에 대해 책은 이렇게 짚어줬다. “사소한 일로 연인에게 상처 주는 일을 피하려면 불필요하게 시험에 드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면 궁지에 몰아서는 안 된다.” 속이 다 시원했다. 글쎄, 어쩌면 우리는 단지 서로 싸울 거리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는 오래된 연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상황인가보다.

책에는 분노를 억누르고 싸움의 싹을 제거하는 방법들이 이어졌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물어보면 큰 힘이 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게 정말로 큰일인가?’ 대부분은 이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하게 현실을 바라보게 되고, 순식간에 생각이 깊어지면서 인식의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고는 ‘별수 없지’ ‘아무렴 어때’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형들은 쪼그려 앉아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저렇게 말하곤 했다. 오죽하면 그랬으랴? 어쩔 수 없지. 어린 내게 그 형들은 나약해 보였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은 이렇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말고 자신을 다스릴 것. 내 태도가 바뀌면 상대의 감정도 바뀐다고 한다. 책이 권장하는 비결을 모두 터득한다면 열반에 이르고, 그녀는 물론 사바세계에도 미련이 없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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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하라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하지만 남자인 내게는 더 명확한 설명이 필요했다. 논리 말이다.<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은 논리로 가득하다. 이 책에 따르면 수학으로 설명하지 못할 건 없다. 사랑? 물론 가능하다. 글쓴이 해나 프라이는 인간의 생활 패턴을 데이터화해 분석한다. 사실 많은 과학자가 이를 시도를 해왔다. 책에도 그런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학자 피터 배커스는 <왜 나는 여자친구가 없는가>라는 논문에서 과학자들이 왜 아직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없는지 고찰할 때 사용하는 공식을 응용하여, 여자친구를 고르는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는 여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파악했다.”

피터 배커스는 2013년에 결혼했다. 저자는 책에서 연인들의 만남부터 결혼생활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수학적으로 풀이했다. 꽤 세세하게 분석한 점이 놀라운데,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성의 외모에 대해, 진화학과 통계학을 동원해 설명하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산 선택 이론’ 이라는 방정식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던 날 그녀 앞에서 공작새처럼 굴 때, 알고 보니 나는 이 이론을 적용한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 이론으로 좋은 신랑감을 찾는 문제를 풀어내기도 한다. 한편 내가 당면한 문제인 ‘그녀와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심은 ‘최적 정지 이론’의 방정식으로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외도를 할 확률과 안정된 관계를 지속할 확률까지 공식에 따라 계산해준다. 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공식들이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그것만큼 딱딱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여자친구와 싸움을 피하는 방법이나 잘 싸우는 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왜 그녀를 만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의 연애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알파고 점쟁이를 만난 느낌이 이럴까. 답답한 마음엔 이런 선견지명도 달가운 법이다.1606mcmalimk16_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