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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프로 광고를 봤다. ‘PC가 가지 못하는 곳을 가고, PC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고 했다. 에이, 뻥을 쳐도 이렇게 치시나? 콧방귀를 뀌었다. 가만 있자. 요즘 사무실에서 서브PC로 쓸 만한 노트북이 하나 필요하긴 했다. 아이패드 프로를 두고 고민을 하다니 별 일이다. 지금은 골동품 취급을 받는 1세대 태블릿PC가 서랍 속에 고이 잠들게 된 과거를 정녕 잊었단 말인가.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12.9형 대신 9.7형이 출시된 것도, 스마트 키보드나 애플 펜슬 같은 폼 나는 액세서리보다도 호기심을 자극한 건 ‘컴퓨터를 초월한 컴퓨터’라는 타이틀이었다. 궁금했다. 지난 몇 년간 태블릿PC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새하얀 박스를 벗겨 책상에 올려놓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6.1mm. 5백 그램이 채 되지 않는 무게. 이만하면 휴대성은 나쁘지 않다. 스마트 키보드를 부착해 봤다. 노트북에 비하면 가볍긴 하지만 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기엔 짐이다. 미니 백을 들고 나서는 건 꿈도 못 꾸겠지. 평일엔 사무실에 두고 업무용으로 쓰다가 금요일 퇴근과 함께 집에 가져오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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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형 아이패드 프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스마트 키보드애플 펜슬이다. 커버로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키보드는 자석에 이끌리듯 기분 좋게 착 달라붙는다. 충전할 때마다 분리할 필요도 없다. 아이패드 프로에 부착된 것만으로도 전력을 알아서 공급받기 때문이다. 적당한 탄성이 느껴지는 키 감도 좋다. 일반적인 키보드와는 달리 키 사이에 틈이 없고 방수 및 얼룩 방지 마감이 되어 있어 자칫 커피를 쏟더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불편한 점이라면 한글과 영문 전환이 다소 번거롭다는 것 정도?

솔직히 애플 펜슬은 키보드만큼 잘 활용하진 못했다. 습관 때문인지 글을 적는 건 아무래도 키보드가 편했다. 만화가 딸임에도 그림 그리는 재주는 타고 나질 못해 아쉬운 마음은 컬러링 앱으로 대신한다. 사람의 손과 애플 펜슬을 정확하게 분간해낼 뿐더러 촉이 눌리는 압력에 따라 섬세하게 굵기를 표현해낸다. 충전하는 방식 또한 재미있다. 펜슬 끝에 달린 마그네틱 캡을 벗긴 후 아이패드 프로 충전 단자에 꽂으면 된다. 방전되었다고 해서 다급해질 필요도 없다. 30초만 충전해도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니까. 완전히 충전하면 12시간은 거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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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패드 프로와의 만남은 해피 엔딩이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들도 다 온다는 권태기가 찾아왔다. 아이패드 프로는 매번 데스크톱과 스마트폰에게 밀려났다. 특히 마우스의 부재는 치명적이었다. 극적인 화해를 이룬 건 여름 휴가 덕분이다. 여행 대신 ‘방콕’을 선택한 나는 틈만 나면 아이패드를 꺼내 들었다. 리디북스 앱으로 읽고 싶었던 책을 다운로드했고, 왓챠플레이 앱으로 내 취향에 맞게 큐레이션된 영화들을 몰아봤다.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것, 생각보다 꽤 괜찮다. 주변 조도에 따라 밝기와 반사율이 변하는 트루 톤 디스플레이 덕분이다. 오래 들여다 보아도 눈이 피로하질 않다. 영화를 볼 때는 듣는 재미가 살아난다. 네 모서리에 배치된 하이파이 스피커가 깊고, 넓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사운드를 선사한다.

자, 이제 결론을 내자. 아이패드 프로는 컴퓨터를 대신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아직 풀어야할 숙제도 많다. 100일 남짓 경험한 아이패드 프로는 각 잡고 일하기 위한 업무용 도구라기보다는 콧노래 흥얼거리며 갖고 노는 장난감에 가까웠다. 책 읽을 여유, 음악을 들을 여유, 생각할 여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이패드 프로는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다. 12년 만에 돌아온 브리짓 존스 언니도 이젠 일기장 대신 아이패드에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