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2동 노인대학교에서 꽤 흥이 넘치는 학생이던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우유갑에 가래침을 뱉을 때마다 내게 “그래 고르다가는 쓰레기만 남는데이” 하고 말하곤 했다. 생김새보다는 주머니가 두둑한 것이 속 편하고, 전라도 남자는 노름을 좋아하고 여색에 잘 빠지니 남쪽 여행은 삼가라고도 했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얼굴 반반한 남자는 한량이라 재산을 갉아먹고, 키가 작고 목이 굵은 사내는 결핍이 많아 주먹을 쓴다. 뚱뚱한 남자는 늘 앉아 있어 구린내가 나고, 마른 남자를 만나면 여자가 바람이 난다. 열여섯 살에 시집와 노름하는 남편 옆에서 60년 남짓 산 여자의 말은 담담하지만 꽤 그럴싸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얇은 입술로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을 노래하곤 했다. 내게 사내에 대한 편견을 잔뜩 심어주면서도 당신은 죽는 날까지 사랑을 꿈꿨다. “쓸모없는 남자는 많아도 쓸모없는 사랑은 없데이.” 하면서.
할머니 말이 옳다. 쓸모없는 사랑은 없을지언정 평생 겪지 않아도 좋을 남자는 있으니까. 대학교 2학년 때 1년을 쫓아다녀 가까스로 쟁취한 복학생 선배가 있었다. 학교에 소문이 자자할 만큼 수려한 용모에 큰 키, 균형 잡힌 엉덩이 근육과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그는 남녀, 선후배를 불문하고 모두 친해지고 싶어 하는 대상이었다.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에게도 자상하고, 다방면으로 해박해 존경까지 받았다. 한데 불행은 그를 쟁취한 후부터 일어났다.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와 사귀면서 그는 우월한 유전자를 지니고도 그저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는 순정남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그러곤 대외적인 이미지에 심취해 이중적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치장과 태도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의 품위는 손상됐고, 죗값은 상스러운 욕설로 돌아왔다. 나와 관련한 이야기를 타인에게서 먼저 들을 땐 격노했다. 나는 그의 폭력성 앞에 무기력해져갔다. 결국 내가 ‘완벽한 남자친구를 괴롭히는 성격 파탄자’로 소문이 난 뒤 그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쓸모없는 남자를 만난 여자는 주변에도 많다. 학교 선배인 J는 언변에 능한 예술가와 사랑에 빠졌다. 정확하게 말해 예술가가 되고픈 허언증 환자를 사귀었다. 그는 자취방 원룸 사방에 붉은 커튼으로 두르고 킹 사이즈 침대 하나만 두고 살았다. J는 방학 내내 그 밀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종일 섹스를 하고 짜파게티를 먹었다고 했다. 그것이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예술가의 삶이었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와 그 방에 들이닥쳤을 때 J는 우리의 사랑을 막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J에게 그는 벗어날 수 없는 종교적 우상 같은 존재였다. 당시만 해도 둘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슬픈 사연을 지닌 커플이었지만 현재 J는 그때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자아를 잃어버린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쓸모’라는 것이 사용자의 목적이나 취향에 의해 정의 내려지기 때문에 무작정 ‘쓸모없는 남자를 피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청소기 하나를 사더라도 내게는 디자인이 쓸모인데, 누구에게는 최저가가 쓸모가 아닌가. 하지만 기본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간단해질 수도 있다. 청소기에 우선되어야 할 쓸모는 흡입력이다. 연애도 마찬가지. 내 안에 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잠식하고 영혼을 훼손하는 이라면 그 남자는 쓸모가 없다.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자존감이 왜소해진다고 느낀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 쓸모의 최소 조건이자 필수 조건은 온전히 본연의 모습으로 일상을 지속하게 하는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알아야 할 것. 내가 꿈꾸는 삶을 파악하고 그것이 실제와 가까워지도록 응원하는 남자라면 더할 나위 없다. 건강한 성가치관을 지닌 남자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는 꽃뱀이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는 성폭행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내겐 쓸모 없는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