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라자스탄 사막
남자친구와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낙타를 타고 라자스탄 사막으로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우리는 가장 싼값을 부르는 낙타 몰이꾼과 여정을 함께했다. 그는 딱 돈 받은 만큼만 서비스를 했는데 낙타를 내팽개치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모래 섞인 토스트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레를 식사라고 제공했다. 시간조차 알 길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는 권력자였다. 열악하고 힘겨운 일정이 이어지면서 지친 우리는 침묵했고 단절되었다. 그 밤이 오기 전까지는.
낙타 몰이꾼이 이불도 주지 않은 탓에 우리는 낙타 안장 밑에 깔던 거무튀튀한 담요 몇 장을 겨우 얻어 모래 위에 깔고 누워야 했다. 눕는 순간, 수천 개의 별빛이 눈으로 떨어졌다. 새카만 밤하늘엔 반짝이는 별들이 점묘화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강렬한 욕망이 일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상대의 옷을 벗겼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알몸이 된 채 애쓰고 있다고 토닥이다 간혹 서로의 엉덩이를 세게 붙잡았다.
낙타 몰이꾼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홀로 천막을 치고 잠들어 문제 될 것 없었지만 문제는 낙타였다. 낙타들은 밤새 낮에 먹은 먹이를 되새김질하며 꼼지락거렸는데, 주기적으로 길고 얇은 다리를 쭉 펴고 킁킁거렸다. 우리는 그때마다 섹스를 멈추고 벌떡 일어나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암흑이 깔린 사막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청각뿐이었으니까. 적어도 낙타 굽에 깔려 벌거숭이 시체로 발견된 한국인 커플로 가이드북에 기록되고 싶진 않았다. 살기 위해 일시 정지를 거듭해야 했던 섹스, 낙타 몰이꾼이 행여 들을까 숨을 참아야 했던 고난의 섹스였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호사스럽고 로맨틱한 섹스였음은 물론이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언덕
암벽 위의 도시, 이탈리아 사르데냐의 여름은 뜨거웠다. 뜨거운 온풍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한낮에는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무기력해졌다. 당시 남자친구 K와 스쿠터를 빌려 암벽 사잇길을 지그재그로 달렸다. 벌거숭이 언덕 정상에 다다라서야 겨우 그늘이 있는 작은 정자를 발견했는데, 그곳을 제외하곤 사방이 사막처럼 건조하고 뜨거웠다. 뜨거운 태양에 둘 다 몸이 붉게 달아올랐고, 그 열기가 주는 나른한 성적 에너지가 있었다. 어느 순간 그는 내 몸을 돌려 뒤에서 강하게 들어왔다.
우리는 태양에 취한 사람들 같았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산 너머로 짙푸른 수평선이 위아래로 흔들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스쿠터 엔진 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흩어졌다. 불안한 공기가 가득했던 짧은 시간이었는데, 내 안에 잠재된 원초적 욕망이 튀어나온 기분. 호텔 침대 위에서 나누는 예쁜 사랑과는 다른 야생의 성을 맛본 순간이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건 쓰레기통에 버려진 콘돔 포장지들을 봤을 때였다. 그 장소는 본래 그런 곳이었다. 커플들이 스쿠터를 타고 데이트를 하다가 이곳에 들러 사랑을 나눈다고 했다. 둘만의 추억이 모두의 추억이 되자 아름다움은 퇴색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다시 그곳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고.
사무실 옥상
B선배는 한때 ‘옥상 8분 섹스’를 생활화했다. 그녀는 한 달에 반 이상은 새벽까지 야근을 ,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엔 언제나 싱그러운 리듬이 있었다. 마치 새 신을 신고 뛰어가는 아이의 발걸음처럼 경쾌하고 날렵한 속도로 마침표를 찍고 일어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그녀는 사내 연애 중이었고, 주변 건물의 불빛이 떨어지는 밤이 오면 옥상에서 사랑을 나누고 자리에 돌아오곤 했던 것. 간혹 동료들이 옥상에서 잠시 휴식하고 돌아오곤 했지만 문이 잠겨 있을 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다.
동료들이 창가에서 담배로 시름을 달랠 때, 그녀는 네온사인을 무드등 삼아 8분 섹스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뒤늦게 억울한 마음에 볼멘소리를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밖에서 안 해봤어? 그 좋은 걸.” 선배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SNS 피드에 올라오는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인생 사진’을 볼 때마다 그곳에 가고 싶고, 그곳에서 하고 싶다. 시공간에 따라서 묘한 성적 흥분과 낭만, 더불어 스릴까지 주는 아웃도어 섹스를 예찬하는 1인으로서 여전히 최고의 한때를 기다린다. 몰카 탐지기를 먼저 사둬야 할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