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통령의 애무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기였던 재작년. 그날도 남자친구와 신나게 야식을 먹고 케이블 채널을 보며 늘어져 있었다. 배도 채웠겠다 나란히 누워서 꿈지럭대다 보니 슬금슬금 내 밑으로 내려오는 남자친구의 손. 나쁘지 않았다. 속옷 속으로 전진한 그 손이 내 클리토리스를 앞뒤로 문지르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이 몽롱해지며 몸이 확 달아오르는 그 순간에 찬물을 확 끼얹는 남자친구의 몹쓸 개그 욕심. “드랍 더 비트! 삐끼삐끼삐끼삑” 그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효과음에 허를 찔린 나는 제대로 웃음이 터졌고, 우리의 섹스는 그날 밤 계속되지 못했다. 내 반응이 그렇게 좋았는지, 그는 지금도 종종 내 클리토리스를 턴테이블로 써먹는다. P, 25세, 학생
구한말에서 오셨나요
전에 만나던 썸남은 세련된 외모와 달리, 에로틱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예스러운 단어 선택으로 내 욕정을 식게 하곤 했다. 처음 그가 “브라자 벗겨 줄게”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이해하려 애썼다. ‘브래지어’는 너무 고상한 외래어 느낌이고 ‘브라’는 여자들끼리 주로 쓰는 단어라고 합리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섹스가 막 시작되려는 아찔한 분위기에서 그가 엄숙한 표정과 음험한 목소리로 “빤스 벗어”라고 말했을 때는 내 안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이 피어올랐다. 그 ‘빤스’라는 두 음절이 섹스 내내 머릿속 에서 떠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고쟁이라고 하지 않은 게 어디냐 싶었지만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L, 30세, 무직
침대 위의 사오정
다정다감한 성격의 내 남자친구는 원래 귀가 조금 어두워 말을 잘못 알아듣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러다 보니 잠자리에서도 간혹 내가 내는 소리나 감탄사를 오해하는 상황이 생긴다. 한번은 여름에 한창 섹스를 하다가 내가 자연스레 “너무 좋아”라고 말했더니, 그가 “너무 춥다고? 그렇게 추워? 에어컨 끌까?” 하며 한참 손을 휘적거리고 리모컨을 찾는 바람에 산통이 깨진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신음처럼 흘리듯 말하긴 했지만 그게 어떻게 그렇게 들리나. 얼마 전에는 격하게 피스톤 운동을 하는 통에 질 입구가 약간 쓰라려 섹스 중에 “아파”라고 했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는 말. “아빠? 아빠를 왜 찾아 지금?” 그게 아니고 아래가 따가워서 아프다고 설명했더니 몹시 민망해 하던 그의 표정이 조금 귀엽기까지 했다. P, 27세, 회사원
김칫국 드링킹
혼이 나가도록 신나게 놀던 금요일 밤에 만난 남자가 있었다. 서로 마음이 통해 새벽녘 모텔로 향했다. 클럽에서 그가 보여준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침대 위의 그는 안타깝게도 기술도, 크기도, 하다못해 말발도 어느 하나 대담한 것이 없었다. 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나 교제를 전제로 담소를 나누며 서로를 차차 알아가는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 찌릿한 감정을 단 하룻밤 나누겠다는 공동의 목적으로 그 자리까지 간 것인데, 이런 식이면 김이 팍 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별한 감흥 없이 섹스를 마치고 나서,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숨을 헐떡이던 그가 찡긋 윙크를 하며 한마디를 던졌다. “원 나이트인데 또 자달라고 하면 못써~. 그건 투 나이트이야. 으흥흥”. 아이고, 별걱정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J, 27세, 디자이너
술이 원수지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는 소위 말해 스펙이 꽤 좋은 사람이었다. 남들 다 알만한 직장에서 일찍 승진한 능력자에, 외모도, 몸도 다부졌다. 대화를 나누다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그의 허세가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잘난 남자니 그럴 만도 하지 싶어 넘어갔다. 몇 번 더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와 선술집에서 사케를 마셨다. 회는 싱싱했고, 술은 달았다. 결국 둘 다 거나하게 취해서 함께 그의 집에 도착했다. 오럴 섹스를 하려는 참에 갑자기 속이 부글거리면서 구토가 올라왔다. 평소 주량보다 술이 한참 지나친 모양이었다. 우욱, 윽, 한 손에 자기 페니스를 잡고 헛구역질하는 날 보더니 그가 진심인 투로 말했다. “앗, 미안. 내 게 좀 많이 크지?” 차라리 그의 말이 사실이었더라면. 취중에도 사이즈 분별은 되더라. K, 28세, 회사원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
그가 섹스를 할 때 종종 내 이름을 묘하게 틀리게 발음한다는 걸 알아챈 건 데이트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다. 사정하는 순간 혹은 완전히 흥분했을 때 토해내는 터라 부정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서른 해가 넘게 불려온 내 이름인지라 그 미세한 혀 놀림의 차이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페이스북 친구를 타고 타고 또 타고 건너가 알게 된 사실. 나를 만나기 직전 헤어진 그의 전 여자친구의 이름이 내 이름과 끝 글자의 받침 하나만 달랐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날로 당장 이별을 고했지만 쓰린 속은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전 여친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그에게 볼드모트의 저주를 날리고 싶었다. S, 31세, 자영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