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을 보는 자신의 관점을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이는 영국의 사진가가 있다. 커스티 매카이(Kirsty Mackay)는 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국회의원이나 학자, 법조인, CEO 등 사회의 주요 인물 중 여성의 비율이 낮다는 사실에 회의를 품고 이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아티스트다. 어린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매카이는 자신이 10대를 보낸 낡은 방과 딸의 침실, 그리고 많은 영국 소녀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 결과 ‘My Favorite Color Was Yellow’ 시리즈를 완성했다. 5년에 걸친 작업 기간 동안 그녀의 카메라에 가장 많이 포착된 컬러는 바로 핑크다.
커스티 매카이가 작업하면서 만난 열세 살 소녀 테레제 타소(Tereze Tasso)는 핑크색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테레제의 주변에는 아직 핑크색으로 만든 모든 것에 열광하는 또래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소녀들이 핑크색 물건을 좋아하는 건 태어날 때부터 핑크색과 파란색을 각각 여성과 남성을 위한 색깔이라고 규정지은 환경에서 지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아주 어릴 때에는 제가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믿었거든요. 아마 그 색깔의 물건을 가진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그랬을 거예요. 열세 살이 된 제게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핑크는 단지 수많은 색깔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초록색이에요.”
여러 나라의 여성들은 테레제처럼 핑크색으로 둘러싸인 시간을 당연한 듯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커스티 매카이는 이러한 양상이 기계화와 대량생산이 급격히 이루어진 1960년대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여러 분야의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던 이 무렵, 아동용품 시장 또한 큰 변화를 맞았다. 수많은 회사에서 획일적인 색상의 똑같은 장난감을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했고, 두 성별로 구분되어 만들어진 핑크색과 파란색 장난감이 아이들 손에 쥐여졌다. “이분법적으로 나뉜 아동용 제품이 아이들의 색깔에 대한 편견뿐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해왔고, 나아가 앞으로 살아갈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자아를 형성해가는 시기에 두 개로 구분된 세상을 먼저 접한 셈이니까요. 핑크색을 여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 또한 아마 이때일 거예요. 아이들은 서로 다른 것보다는 옳은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고, 나아가 인종과 피부색, 직업, 지역의 차이로 사회적 계급을 나누는 데 익숙해지기에 이른 거죠.” 핑크색으로 둘러싸인 일상에 익숙한 소녀들은 사회가 정한 여성성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여성스러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여자아이들의 일상에 스며든 핑크색은 연약하고 부드러우며 귀엽고 예쁜 것을 상징하는 색으로 굳어졌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핑크색에 대한 고정관념은 일상 곳곳에 녹아있다. 세계적으로 많은 인권 운동가와 페미니스트가 다양한 운동을 펼치며 변화를 이뤄가는 가운데, 어린 여자아이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핑크빛 세상이 여전히 소녀들의 머릿속에 편향적인 여성성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핑크 색과 파란색은 단지 남녀 성별의 구분을 위해 사용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지만, 색에 관한 자그마한 편견이 얼마나 거대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돌아볼 때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은 물론 어떤 개인도 특정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로 바뀌어가는 시대다. 두 가지 색으로 나뉜 좁은 세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 또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차별 없이 넓고 자유로워질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또한 점차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