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궁금증의 발단은 여름 휴가를 위해 큰 맘 먹고 비키니 왁싱을 하러 간 왁싱숍에서 시작되었다. 한참 차례를 기다리는 데 멀찍이 복도 저편 계산대에서 들려오는 남자 손님과 직원과의 대화가 묘하게 관심을 끌었다. 다리털을 밀러 온 거 아니냐는 농담 섞인 내 질문에 대한 직원의 대답은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아뇨, 저희 관리실은 비키니 라인 제모 전문이라서요, 저 분은 브라질리언 왁싱만 하세요.”
제모하는 남자들이야 메트로섹슈얼로 시작해 초식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휘로 표현되어 왔으니 별 새로울 것도 없다. 외국 잡지에서 유난히 깔끔한 가슴팍을 드러낸 반라의 남자 모델을 접했을 때나 결승점을 1등으로 통과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박태환 선수의 하얀 겨드랑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꽂혔을 때는 직업이 그런 데 뭐, 하고 그들의 제모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성인물, 그것도 주로 금발 미남미녀가 등장하는 서양 야동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민둥산 페니스’의 실물을 마주할 기회가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니, 대한민국 남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대담해졌나 싶다. 운동선수 같은 덩치와 시원시원한 성격이 천상 남자인 10년 지기 친구 B에게 호들갑을 떨며 이 사실을 전하자 그는 놀라면서도 사실 왁싱처럼 적극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는 방법까지는 창피해서 선뜻 못 하지만 정기적으로 겨드랑이나 중요 부위에 난 털의 숱을 치는 남자들은 꽤 있다며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남자를 두둔하고 나섰다.
‘남자 왁싱’이란 검색어를 치자 사이트 상에서 다수의 간증이 이어졌다. 그 중에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여자친구와 술자리 내기에서 져 울며 겨자먹기로 처음 해봤다는 한 남자는 비뇨기과 의사도 아닌 남자 관리사 앞에서 몸소 하의실종 패션을 선보이며 달랑 티셔츠만 하나 입고서 아랫도리의 털을 모조리 뜯기는 수치스런 30분(게다가 관리사에게서 원활한 진행을 위해 왁싱을 할 동안 발기상태를 유지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이 지나자 전에 없는 신세계가 펼쳐졌다고 고백했다.
보통 배꼽 아래와 허벅지까지 넓게 이어지는 무성한 밀림이 통째로 사막화되면 털에 가려져 숨어 있던 2cm가 드러나는데, 한층 길어보이는 페니스의 모양에 흐뭇해진 그는 어쩐지 섹스를 할 때도 전과는 다르게 자신감에 넘치는 거친 남자가 되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남자들의 페니스 크기에 대한 집착은 다들 아는 사실이긴 해도 수술같이 방법은 왠지 좀 노골적이고 무식해 보이잖아. 그치만 브라질리언 왁싱이라면 뭔가 자기 몸을 깔끔하게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길어 보인다’는 부수적이지만 사실은 남자들에겐 핵심적인 숨은 효과를 얻을 수 있자나.”
그렇다면 남자들의 브라질리언 왁싱은 몸매 관리만큼이나 털 손질도 자기관리의 중요한 척도로 여기는 요즘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편 남성성을 뽐내고픈 본능을 만족시키려는 그루밍족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왁싱하는 남자들은 별난 종족일 거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왁싱숍의 직원은 귀띔했다. “그냥 증권사 다니는 회사원도 있고, 미국에서 온 유학파도 있고, 다양한 남자들이 오긴 해도 별난 사람은 없어요. 그냥 조금 더 깔끔 떠는 사람들인 것 같긴 하지만.”
뭐, 생각해보면 여자들의 입장에서도 남자의 브라질리언 왁싱은 나쁠 것은 없을 듯 하다.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하다가도 문득 까슬까슬하게 다가오는 그의 털들에서 자유로워지고, 한층 청결한(?) 오럴 섹스도 가능하며, 그의 자취방에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는 구불구불한 털들을 직면할 일도 없어질테니 말이다. 물론 그를 구슬리려면 ‘2cm 더 길어 보인다’는 장점을 먼저 어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