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고 돌고

응답하라 1997 “만나지 마까”

윤윤제: 내 오늘, 유정이한테 고백 받았다. 만나지 마까?
성시원: 그걸 와 내한테 묻는데?
윤윤제: 만나지 마까? 만나지 마라케라.

남사친과 여사친이 사랑과 우정 사이에 빠진 역사는 길고, 그 중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빼놓을 수 없다. 왜, 도대체 왜, 왜 때문에 한 번에 고백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게 되는걸까. 원래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지만 이런 고백이라면 눈치 없는 사람은 절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지켜보는 이가 더욱 간지러운, 본인들만 모르는 고백의 유형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직진 고백형

쌈, 마이웨이 “썸이고 나발이고”

촌철살인 대사들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세대의 격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쌈, 마이웨이>. 20년을 돌아왔던 동만(박서준)은 애라(김지원)를 향한 직진을 택했다. “다리에 힘 딱 줘. 어차피 키스했고 난 썸이니 나발이니 그런거 몰라. 키스했으면 1일. 우리 사귀자.” 입을 맞춘 후 동만이 남긴 대사에는 마디 마디 박력이 넘친다. 이 날을 기점으로 그동안 참아왔던 표현과 스킨십을 대방출 중인 이 커플에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알아주기를 바라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면 마음을 꼭 전할 것을 권한다.

 

진심은 통하는 법

수상한 파트너 “이제 그만 나 좀 좋아해주라”

고백의 필수 요소는 무엇일까. 반지? 꽃다발? 아니다. 좀처럼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에 서툰 남자들이 꺼내놓는 묵직한 진심에 여자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어있다. “내가 기다려주겠다고 약속한거 못 지켜서 미안한데, 지금 바로, 지금 당장 나 좀 좋아해줘 봉희야.” 주변의 어수선한 사건들 속 불길한 예감이 들자 봉희(남지현)에게 달려가 지욱(지창욱)이 마음을 다시 전하는 장면이었다. 서툴지만 진솔함이 전해져 감동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지 아니한가.

 

누나의 로망

김수현 “더 제대로 좋아하고 싶어서요”

김수현의 드라마 선택은 참 훌륭했다. 조선시대의 왕, 외계인이 아닌 방송국 신입 PD는 그의 현실 모습과 가장 가까웠던 캐릭터로 기억된다. 대체로 어리버리했던 승찬(김수현)의 마음만은 늘 진지했다. 예진(공효진 역)선배를 짝사랑해 온 그가 거절을 당한 후 돌담길에서 울던 모습은 아직도 짠하다. 다음 날 선배를 옥상으로 불러내 인생이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면 다시 찍고 싶다며, 그 이유를 “더 제대로 좋아하고 싶어서요.”라고 덧붙인 이 연하남의 패기! 밀당을 모르는 이런 남자가 현실 세계에도 존재한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텐데.

 

고백계의 걸 크러시

또 오해영 “나, 심심하다 진짜”

‘오해영’은 두고두고 떠오르는 인물이다. 해영(서현진)이 벽을 향해 뱉는 하소연을 도경(에릭)이 듣게될 줄 몰랐지만, 그녀의 고백은 이토록 늘 솔직했고 구구절절 현실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는 끝났지만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고. 언제까지 그가 고백하기만을, 당겨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 세상에 ‘밀당’과 ‘썸’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오히려 후회하지 않는다는 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