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도어(2-doors)’로 출근하기.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차를 알게 된 이후 마음에 품었던 소망이다. 미끈한 몸매의 투 도어 쿠페라면 철야 근무 후 피곤에 찌든 채 운전하더라도 나는 멋질 것만 같았다. 대체로 우울한 출근길, 단 30분이라도 예쁘고 고급스러우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비교적 편안한 운전을 약속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수많은 자동차 중에서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겠노라 작정한 브랜드가 없을 리 없다. 이를테면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달린 벤츠 E클래스 쿠페(E400 4MATIC) 같은.
올해 나온 벤츠 E클래스 쿠페는 덩치가 크다(길이 4840mm). 분명히 수치상으로는 현대 그랜저(4930mm)보다 작은데 더 커 보인다. 2시간 남짓 전시를 둘러보고 나와 차를 다시 보아도 웅장한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았다. 게다가 비슷한 차 중에는 말로만 4인승이지 뒷자리가 빠듯한 차도 많건만 165cm 키의 내가 앉아도 다리 앞 공간이 꽤 낙낙하다. 이렇게 한덩치 하는 차의 문제는 자그마한 여자 손에 차의 스티어링 휠이 어느 정도 부담스러운가 하는 점인데, 운전하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분명 타 기 전에는 차체가 부담스러웠는데 운전석에 앉으니 훨씬 나았다. 푸근한 승차감 덕도 있다. 무릇 스포츠카 타입은 바닥으로 노면을 덜덜덜 다 느끼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면 매끄럽다고 느낄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과천에 접어들어 움푹 파인 낡은 도로를 지날 때에 쓱 하고 오르고 내리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몬 E클래스 쿠페가 디젤엔진에 비해 조용할 수밖에 없는 가솔린엔진 차량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바퀴 주변으로 충격을 알아서 조절해주는 시스템(에어 보디 컨트롤)이 추가된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차를 많이 타보면 ‘벤츠인데 그렇지 뭐’ 하는 평균 이상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바꿔 말하면 모자람이 없기에 특출난 것도 잘 못 느낀다는 의미다. 갖은 최신 운전 보조 장치(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가 수시로 뜨면서 넋 놓고 달리다 당하기 쉬운 접촉 사고나 차선 이탈을 죄다 막았다. 든든하다. 경험해선 안 될 일이지만, E클래스 쿠페는 스펙 상 시속 210km까지, 최대 60초는 운전자가 두 손을 놓아도 스티어링 휠이 바닥을 따라 똑바로 가게끔 알아서 움직인다. 소형차보다 힘이 두 배쯤 세고(V6 2996cc, 333마력) 가속도 두 배쯤 빨라서(시속 100km/h까지 5.3초), 호젓하지만 그만큼 좁고 고르지 않은 미술관 가는 길에, 이 차로 내가 할 수 있는 실수는 과속뿐이었다.
다섯 가지 운전 모드 중에서, 차가 많을 때 주로 사용한 것은 연비를 아껴주는 ‘에코’와 일상 수준에 맞는 ‘컴포트’였는데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스포츠카를 닮은 차니까, 나 역시 과속 카메라를 피해 달려보고 싶은 유혹을 끊임없이 느꼈고 그럴 때는 ‘스포츠 플러스’를 골랐다. 비슷한 타입의 차들은 스포츠 모드에선 마구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라고 인위적인 엔진음을 높이기도 하는데, E클래스 쿠페는 예상보다는 조용했다. 내가 가는 어떤 길도 2.5배쯤 시야를 넓히고 다가오는 모든 차를 경고해주며 호화로운 요트라도 탄 듯 기분을 ‘업’시켜 주는 이 차는 코너를 급히 돌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분 탓인가? 공인 연비 리터당 9.3km는 내겐 계속 2리터가 모자란 7km대였고 이 차의 가격이 9천4백10만원이란 사실도 그리 억울하진 않았다. 디젤엔진을 쓰는 E 220d의 연비는 리터당 14.6km(복합)이고 가격은 7천1백9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