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들깨를 데려온 날 들깨순두부를 먹었거든요. 어릴 때는 지금보다 털 색이 더 옅었던 터라 ‘완전히 들깨색인데?’ 하고 들깨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원래는 두부라는 이름을 꼭 쓰고 싶었는데 요즘 두부라는 이름이 너무 많은 거예요. 풀 네임은 들깨순두부입니다.”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사색을 즐기는 스코티시폴드, 신중한 고양이 들깨. 창 앞에서라면 하루 종일 앉아 있기도 하는 들깨를 위해 집 안의 창 앞에는 작은 담요가 놓여 있다. 하루에 일정치의 독립적인 시간이 필요한 들깨는 어디 감히 집사가 고양이와 한 이불을 덮느냐는 듯 동침을 거부한다. 한 방에서 자더라도 꼭 본인 침대에서 잠들며 때로는 거실로 나가 소파에서 잔다. 치대는 것을 질색하고, 놀이도 적당히. 장난감으로 놀아도 곧바로 달려들지 않고 장난감 앞에서 엉덩이만 한참을 실룩거리다가 돌아서버리는 고고한 영혼을 지녔다.
“그래도 부르면 늘 쳐다보긴 해요. 물론 처음 불렀을 때만. 계속 부르면 반응 안 하고요.” 들깨의 킬링 포인트는 늘 어딘가 언짢은 듯해 보이는 시옷자 모양 주둥이. 시옷자 입을 하고 창가에 시큰둥하게 앉아 있다가도 집사가 집에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현관 앞으로 빠르게 마중 나가는 ‘마중냥’이다. @ddulggae
시오 & 기모 & 텐초 & 참외
안 모실 수는 있어도 한 마리만 모시기는 힘들다는 고양이 집사의 세계. 시오네는 시오를 시작으로 기모, 텐초, 참외까지 총 4마리의 고양이가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져주고 양보하는 평화주의자 시오, 애교도 없고 입 떼는 법도 없는 묵언수행자 기모, 부르면 대답하고 항상 문 앞에 마중 나오는 텐초, 소심한 쫄보이면서 까불기도 잘하는 모순 매력의 참외까지. 이 대가족은 해외 <허핑턴포스트>가 집사의 계정에서 기모의 사진을 퍼가 실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신기한 고양이를 보아라, 부엉이를 닮았다’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기모 얼굴 옆에 실제 부엉이 사진까지 붙여놓았다. “외국인 팔로어가 많아요. 중국인 팔로어가 몰리는 날은 어마어마하고요.(웃음) 일본에서는 기모를 보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먼지 귀신, 맛쿠로스케를 닮았다고도 하고요. 기모 사진이 한동안 안 올라오면 올려달라고 요청도 하고.” 범세계적인 팔로어를 거느리는 시오네 팔로어 수는 27만6천명. 하지만 네 마리의 고양이는 랜선 세상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는 관심 없다는 듯 오늘도 2층 창 앞에 줄 맞춰 앉아 식빵을 굽는다. 건너편 전깃줄에 비둘기라도 앉으면 조용하던 집이 난리가 난다. @1room1cat
로크 & 모그
수컷 로크를 데려오고 반년 뒤에 로크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암컷 모그까지 함께 살게 된 로크와 모그네 집. 그 사이 빌라 아랫집에 들깨가 새 식구로 들어오며 세 마리의 고양이가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는 중이다. “신기한 건 로크가 모그랑은 장난치면서 종종 모그를 물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아랫집 고양이 들깨 앞에서는 물기는커녕 배를 까고 벌러덩 누워요.” 로크와 모그는 전형적인 현실 남매인 셈이다. 러시안블루인 로크와 아메리칸 숏헤어인 모그는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확연히 다르다. 로크가 사료에 약하다면 모그는 사료보다는 장난감이다. 두 고양이의 식욕과 유희욕 사이에서 부부인 커플 집사는 하루가 짧다.
“로크는 의사 표현이 확실해요. ‘밖에 나가고 싶다 혹은 밥을 달라, 밥 중에서도 습식 사료를 달라’며 말을 엄청 많이 해요. 반면 모그의 요구는 딱 하나예요. ‘놀자’. 한 가지라 편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게 체력이 다해도 헉헉거리며 끝없이 놀아요. 장난감을 던져주면 물어와요.” 마지막엔 장난감을 숨겨야 지독한 놀이가 끝이 난단다. 로크의 놀이는 짧지만 격정적이다. “현관문이 살짝 열리는 틈에 달려나가요. 신기한 건 절대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법 없이 늘 위층 복도로 올라가요. 혼자 신나서 막 뛰다가 쫓아오는 느낌이 없으면 멈춰서 왜 안 오지 하고 뒤돌아봐요.” @locke_mog
히끄
희끄무레해서 히끄, 절친으로는 꺼뭇꺼뭇한 꺼므가 있다. 길고양이였던 히끄는 제주도로 내려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고 있던 지금의 히끄 집사, 일명 ‘히끄 아부지’를 우연히 만나 집 사로 간택한다. 만난 초기에는 두 집 살림을 하다 걸릴 정도로 제주 오조리를 누비는 자유 영혼이었지만 집사가 게스트하우스 ‘스테이 오조’를 열기 전부터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호텔리어처럼 화이트 수트를 입고 손님들을 심드렁하게 맞이하는 히끄. 최근 히끄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히끄네 집>이 출간됐는데 전국의 고양이 집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증쇄 중이다.
‘히끄 아부지’의 성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나 집사는 “엄마라는 호칭만큼은 히끄를 낳아준 진짜 엄마를 위해 남겨두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목욕을 시켜도, 비행기를 타도, 낯선 집에서도 잠자코 있는 ‘적응력 갑’인 히끄. 전용 그릇에 간식을 차려줄 때 한눈파는 찰나 홀랑 간식을 다 집어먹고 안 먹은 것처럼 시치미 떼다가도, 식탐이란 자신과 멀다는 듯 집 마당과 텃밭을 고매하게 거니는 산책 고양이. 여러모로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의 소유자다. @sina_h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