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두부
아이돌 팬덤의 태동에는 언제나 ‘입덕 영상’이 있다. ‘짤’ 하나가 불 꺼진 아이돌 그룹을 지피듯 팔로어 14만6천 명을 거느린 펫스타그램계의 슈퍼스타 두부에게도 팬들의 마음속에 저장된 ‘입덕 영상’이 있다. 눈 마사지를 해주는 주인의 손에 동그랗고 흰 얼굴을 내맡긴 채 까무룩 잠드는 10초 안팎의 영상으로 한 달 만에 팔로어 1만 명을 모은 두부. (번외로는 좌우로 고개 갸우뚱거리기, 퐁퐁퐁 뛰는 영상 등이 있다.) “주말에 서울에 오는 이유 중 80%가 두부 스케줄 때문이에요. 일요일은 100% 고요.(웃음)” 두부가 파워 인스타그래머가 된 데는 견주의 바람도 한몫했다.
“두부가 생후 5개월 때 전 주인에게 버려졌어요. 제가 데리고 온 날이 2014년 10월 13일이라 두부 생일이 5월 13일이죠. 반발심에 SNS를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전 주인에게 두부가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이제 광고까지 섭렵한 두부는 베테랑답게 30분 만에 촬영을 끝내버렸다. 이후 인터뷰 내내 두부는 기척 없이 아빠만을 주시했다. 이 세계에 자신과 아빠 단둘만 존재한다는 듯. 훈육 대신 무한 사랑을 퍼주는 견주의 교육관이 두부를 ‘앉아’밖에 못하는 세 살배기로 만들었지만 천성이 ‘두부두부’한 두부인지라 그 이상의 교육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먹던 간식 뺏는다고 장난을 쳐도 한 번을 으르렁거리지 않아요. 자리에서 뱅뱅 돌다가 간식 물고 저 앞에 뒤돌아 앉는 게 최선의 방어예요.” @i_am_tofu
켄 & 밤
켄과 밤은 시바견 모녀다. 2015년 6월 1일 켄을 입양한 견주는 한 달 뒤 켄을 위한 SNS 계정을 만들었다. 3만 명에 달하는 랜선 이모 삼촌들은 켄의 꼬물이 시절부터 닿는 곳마다 사고가 벌어지는 버라이어티한 개린이 시절과 개춘기를, 임신과 출산의 여정을 함께 지켜봤다. 그렇게 지난가을 밤이가 태어났다. 촬영 내내 도망 다니기 바빴던 천진 명랑한 밤이는 견주의 아픈 손가락이다. “제정신이 아니에요.(웃음) 아직 훈련이 안 됐어요. 아기 때부터 아팠던 탓에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건지. 정신 차릴 나이가 되긴 했는데 보다시피 계속 이래요.”
어릴 때 한 다리가 기형이 된 밤이. 다리의 영향으로 꼬리뼈까지 틀어진 탓에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엄마인 켄만큼 덩치가 자라야 하지만 성장판이 빨리 닫히는 바람에 지금이 다 자란 상태다. 이제는 건강해져 이 집 안의 사고왕이 되었지만 이 또한 당연한 성장 과정임을 아는 견주는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가족이니까. 점잖은 켄의 딸이니까. 두 마리의 강아지가 인생에 들어온 후 견주는 많은 변화를 맞았다. 켄과 밤의 사진 피드 사이사이 강아지 공장 철폐를 위한 동물법 개정 서명을 독려하고, 동물 학대에 반대 목소리를 낸다. 그는 이제는 두 강아지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됐음을 인정한다. 늦어도 밤 10시에는 자동 귀가하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그가 서둘러 집에 와도 30초 정도 애틋하게 굴다가 자기 하던 일하러 휙 돌아가는 독립적인 켄과 밤이지만. @ken_shiba
뚜뚜 & 차차
“뚜뚜랑 차차와 산책하다 보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돼지냐고 물어보세요. 왜 돼지를 데리고 다니냐고.(웃음) 몸매가, 그중에서도 엉덩이가 새끼 돼지 같은 느낌이 있긴 하죠? 꼬리가 짧아서 우리끼리는 엉덩이에 모찌 붙어 있다고 해요. 토실토실 엉덩이가 매력이에요. 우리가 이런 치명적인 스타일을 좋아해서.” 각자 부모님의 집에서 페키니즈와 시추를 오랫동안 기른 두 남녀는 강아지 이야기를 하며 연애하다 결혼까지 하게 됐다. 이들의 첫 강아지는 뚜뚜. “남편 애칭이 뚜뚜였거든요. 꼴뚜기라고···. 배우 고수가 나오는 영화를 같이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웬 꼴뚜기 한 마리가.(웃음) 장난으로 ‘뚜기뚜기’ 하다가 어감이 귀여워서 첫 강아지 이름을 뚜뚜로 정했어요.”
뚜뚜는 털이 갈색을 띠고, 차차는 그보다 옅다. 비슷한 인상의 두 마리 프렌치 불도그지만 성격은 정반대. 힘이 넘치고 활달한 뚜뚜에 비해 차차는 애교가 많고 차분한 타입. 거친 외모와는 달리 집 안에서 한번 짖는 일 없는 순둥이들이다. (촬영이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도 이 두 강아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산책 중 자기 몸집에 3분의 1도 안 되는 강아지들이 앙칼지게 짖고 덤벼도 가만히 정지해버리는 반전 매력견들. 그 은근한 매력에 빠져 지금 부부는 뚜뚜와 차차 외에도 세 마리의 프렌치 불도그를 더 키우고 있다. “2층이 주인집 뚜뚜네고요. 저희는 그 아래층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셈이에요. 다섯 마리가 우당탕거리며 놀 때면 층간 소음이 만만치 않지만 주인집이니까 받아들이고 있어요.” @dduddufamily
두부
(추정하건대) 두부의 고향은 LA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이던 두부 견주는 LA의 한 유기견 보호소의 입양 공고로 두부를 처음 만났다. 한쪽 눈을 실명하고, 적출 수술까지 받은 믹스견 흰둥이. 두 달을 고민하는 동안 두부를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도 다른 강아지들과 교류가 전혀 안 돼요. 산책하다 멀리서 작은 강아지만 와도 바로 ‘얼음’, 그 길로 유턴이에요. 아마 다른 개 때문에 눈을 다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요.” 유기견과 함께 산다는 건 아이의 과거를 추측하고 추적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견주를 따라 서울로 온 ‘미국 개’는 이제 셀럽이 됐다. 3만 명의 팔로어가 포슬포슬한 흰 털과 심드렁하고 무심한 무드를 만드는 아래턱에 반해 제 새끼인 양 두부에게 빠져들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서 지낼 때 DNA 킷으로 견종 추적을 한 적 있거든요. 무려 8~9종이 섞였다는 결과를 받았어요.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믹스종인 뼈대 있는 믹스견 같아요.” 두부와 오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견주는 작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반려동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바잇미’를 론칭했다. 브랜드 대표이사는 당연히 두부다. 고객이 수제 간식 두 개를 구매할 때마다 유기 동물에게 수제 간식 한 개를 기부하는 이 착한 대표이사님은 사무실에 간식이 차고 넘치지만 오로지 오리 육포만을 고집하는 철저한 육식주의자. 대표이사답게 종종 직원들에게 으르렁 호통도 친다. 견주가 밖에 나가려 옷을 챙길 때는 관심 없는 듯 눈길도 안 주다가 나가고 나면 닫힌 문 앞에서 서글픈 소리로 울어대는 애견계의 카이저 소제다. @biteme_dooboo
철수
지난가을 시카고 여행을 다녀온 철수는 유기견계 견생역전의 아이콘이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철수는 이제 산책하다 팬들도 종종 만난다. 누군가 ‘철수다!’ 하면 자기 부르는지는 어찌 알고 고개를 쓱 돌려준다. 2015년 5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철수. “처음부터 얌전했어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배변 실수를 하거나 살림살이를 긁는 등의 말썽을 부리지 않아 좋고 편한데 한편으로는 안쓰럽더라고요. 개답지 못해서.” 외모에 꼭 어울리는 귀여운 이름은 의외로 즉흥적으로 지어졌다. “입양을 결정한 뒤 철수를 한 유기견 행사에서 처음 만났어요. 입양 조건 중 하나가 반려동물 인식칩을 심는 것이었는데 당장 서류에 보호자 정보와 강아지 이름을 쓰자니 망설여지더라고요. 얼마간 지내보고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거든요. 봉사자 분이 일단 서류에는 생각나는 이름을 적고, 나중에 다르게 불러도 된다고 하셔서 급한 대로 철수라고 적었어요. 근데 지금까지 철수가 몇 개의 이름으로 살고, 불렸는지 우리는 모르잖아요. 이 아이의 유일한 정식 등록 서류의 이름마저 가명이 되면 안 될 것 같아서 철수로 마음을 굳혔어요.”
참고로 이름 후보에는 ‘충무’, ‘김밥’, ‘오레오’ 등이 있었다. 철수라 다행이다. 방에 들어가 있을 때는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는 철수. 간식을 주는 견주의 엄마가 부를 때만 1초 만에 뛰어 나오는 철수가 좋아하는 건 고기지만, 고기보다 더 좋아하는 건 견주인 ‘철수 누나’다. 견주가 밖에 나가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밥도 물도 심지어 간식도 안 먹는다고. “유기견 보호소 내에서도 순종이고 어린 강아지들은 입양이 잘 되는 편이지만 믹스견은 입양이 잘 안 돼요. 제가 철수를 키우면서 믹스견 부심이 생겼어요. 철수 때문에 믹스견 입양했다고 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고요.” 철수의 매력을 총망라한 에세이가 3월에 출간된다. @chulsoo_d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