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이를 반으로 나눠서 7을 더해봐.” 친구 J가 대뜸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숫자가 바로 네가 자도 괜찮을 상대방의 최소 나이래.” 우리는 요새 핫하다는 드라마에 대해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다. 멀끔하게 잘생긴 연하의 남자가 연상의 여자에게 다가가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서른 넘어 같이 세상의 풍파를 겪고 늙어가는 처지에 극 중 네 살 차이는 소위 말하는 연상 연하 커플이라 말하기도 뭐하다는 것이 J의 의견이었다. 대화 주제는 연애에서 섹스로 이어졌고, 그렇다면 잠자리 상대로는 몇 살 아래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대목에서 그녀의 나이 계산법이 나왔다. 스물여섯 살이면 스무 살, 서른두 살이면 스물 세 살이 최소 연령이다. 두 성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즐기려 하는 일이니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일단 아홉 살 터울의 남동생보다 어린 남자와 그런 걸(?) 한다는 건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 또래 남자들은 뭉뚱그려 죄 남동생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나를 이성으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 또한 현실적으로 이 상상이 김칫국 들이켜는 일일 가능성을 농후하게 만들었다. 남동생이 없는 J는 나보다 열린 태도를 보였다. “난 할 수 있어. 서른 살 때 스무 살 남자랑 자는 건 그래, 심하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 나이 마흔에 서른 살 남자를 만난다면? 적당히 경험이 있으면서 호기심도 왕성하고, 무엇보다 그 모든 걸 실행 가능하게 하는 생애 최고치의 체력이 있지. 좋은 나이잖아. 단순히 열 살 아래라는 이유로 그 매력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어.”
또 다른 친구 P는 20대 후반이던 몇 년 전 한 남자를 만났다. 앳되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이 스물네 살이라고 했다. 둘은 밤을 함께 보냈다. 그는 섹스에 서툴렀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는 않았다. 당시 오랜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던 P는 특별히 그와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종종 데이트 겸 주말에 가볍게 만나 즐기고 싶었다. 오해를 사기 싫어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그는 쿨하게 알겠다고 했다. 처음 몇 주는 좋았다. 그러다 P가 새 프로젝트로 바빠지며 그에게 연락을 뜸하게 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의 문자 메시지는 처음엔 애교 섞인 투정이더니 점점 협박조에 가까워졌다.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평일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댔다. 관계를 정리하려고 만난 자리에서 P는 남자가 사실 막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이고 그녀와의 섹스가 첫 경험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그 사실에 집착하고 있었다. “처음 만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냥 섹스를 잘 못하는구나 싶었지 아예 처음인 줄은 몰랐어. 그 애 떼어내느라 무척 고생했어. 남자애 입장에선 내가 자기 갖고 논 나쁜 년이겠지. 내 입장에선 글쎄, 우리 합의했잖아?” P는 아무리 법적으로 성인이어도 스무 살 극초반의 남자를 만난다는 건 사춘기의 열병과도 같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동승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반면 K는 내가 아는 한 언제나 연상을 만나왔다. 적게는 다섯 살, 많게는 열일곱 살이나 많은 남자와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꼿꼿했다. 그렇다고 K가 안정된 남자를 만나 정착하고 싶어 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웠다. 그녀의 지론은 이러했다. “나도 20대 초반에 동갑내기나 연하를 안 만나본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애들은 솔직히 잠자리에서 극도로 이기적이거나 아는 게 없거나 그게 아니면 연애 관계에 너무 집착해. 피곤하다 이거야. 어느 날 친구 생일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 서른 일곱 살이랬으니까 나보다 열두 살 많았지. 잘생기고 매너 좋고, 운동도 어지간히 하는지 내가 그간 만났던 비실비실한 20대 애들보다도 몸이 훨씬 탄탄하더라. 침대에서도 은근히 리드하는 듯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데 정말 황홀했지.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든 건 그의 애티튜드였어. 몰아붙이는 일이 없고 항상 여유 있는 태도로 날 대했어. 관계를 강요하는 일도 없고, 피임에도 철저하고. 이후로 자연스럽게 연상을 만나게 되었어. 가끔 싱글인 척하는 유부남 같은 쓰레기가 있다는 것 빼고는 내 연애 타입엔 연상이 잘 맞아. 마흔도 다 같은 마흔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연상남과 얽힌 씁쓸한 기억이 없는 건 아니었다. 퇴근 후 들른 한 바에서 만난 남자가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웃을 때 눈가에 잡히는 잔주름에서 약간 나이가 느껴지는 얼굴이 그녀가 딱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젊은 척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는 10년 전 이혼했고, 지난달에 막 만으로 쉰 살이 되었다고 했다. 서로의 섹슈얼한 감정을 간파한 그들은 두 번째 데이트에서 밤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의 나이를 알기에 못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의 페니스는 충분히 꼿꼿했고 섹스는 강렬했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음 날 아침 샤워하고 욕실에서 나온 그의 알몸 한 부분에서 내 시선이 떨어지질 않더라고. 예전에 들은 적 있어. 아무리 관리를 잘한 남자도 턱선과 고환에서 진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50년 넘게 중력을 고스란히 받아낸 그의 고환은 페니스 뒤에서 더위에 녹은 인절미처럼 늘어져 있었어. 늙는 게 이런 건가, 슬픈 감정까지 들었다니까.” K의 기억에서 그 이미지는 오랜 시간 잊혀지지 않았다.
상대가 연상이건 연하건 섹스는 한없이 좋을 수도, 말도 안 되게 후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침대에서 즐기는 마음으로, 배려하는 태도로, 알아가려는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남자라면 몇 살이건 환영이다. 부디 그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