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목수, 재생 건축가, 올드문래 대표. 최문정을 수식하는 단어는 여럿이지만 그는 멋쩍게 웃으며 “그냥 최 목수라 불러주세요”라고 말한다. 주로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는 대목수(大木手) 최문정은 어릴 적부터 톱으로 나무를 썰어서 뭔가를 만들기 좋아했던 사람이다. 따로 목공에 대해 배운 건 없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그저 나무가 좋아 엄마가 쓰다 버린 도마를 주워다 테이블을, 버려진 나무 궤짝으로 책장을 만들 정도였다.
원래 체육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때가 대학교 3학년. 진로를 바꿔야 했다. 새롭게 선택을 해야 한다면 환경에 이로운 것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고, 이는 나무로 집을 지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택한 ‘생태 건축’을 배우기 위해 일단 작은 클래스부터 들어갔다. “통나무를 실제로 잘라서 집을 짓는 수업이었어요. 막상 수업에 가보니 커다란 톱으로 나무를 잘라야 했죠. 생각보다 무섭더라고요. 앞에서 못하겠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겁이 났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두려움보다 성취감이 점점 커졌죠. 특히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을 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나무의 결이 살아나는데, 거기서 느끼는 희열이 있더라요.” 클래스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도 나무를 다듬는 일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던 그는 졸업도 하기 전에 현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전라북도 무주로 내려간 최문정은 거기서 꼬박 6년을 머물렀다.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 집을 짓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장에 화장실이 갖춰 있지 않아 방광염은 직업병이 됐다. 수도가 얼면 얼음을 깨서 세수했고, 어느 더운 날엔 일사병으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건축 목수가 다른 건설 현장보다 유독 더위에 추위와 노출되는 이유는 나무라는 자재의 특성 때문. 기온이 너무 낮으면 작업이 불가능한 다른 건축 자재와 달리, 나무는 얼거나 변형이 오지 않아 날씨에 상관없이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다. 온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를 견뎌야 하는 환경에서 그를 다독인 건 동료들이었다. “여자아이가 지방까지 내려와 힘든 일을 한다고 하니 기특해 보였던 건지 도와주려는 손길이 많았어요. 그것 말고도 함께 고생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돕고 챙기는 분위기였죠.” 이 끈끈한 우정을 최문정은 ‘전우애’라고 표현한다.
현장의 열악한 여건보다 더 힘들었던 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는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10년, 20년 일해온 분들은 건축 장인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땀 흘려 체득한 완벽한 노하우가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오죽하면 막노동을 하겠냐는 말도 듣곤 했죠. 이를 악물었어요. 전문적인 건축인이 되어서 사람들의 편견을 깨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건축 현장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그동안 부족함을 느낀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나갔고, 전문 자격증을 딴 이후부터는 건축 전반을 주도해서 이끌어나가는 수장인 도편수로 자리 잡았다.
그 후에도 해외에 있는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은 최문정은 몇 년 전 ‘재생 건축’을 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목수로 살아오면서 ‘친환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친환경적인 집을 짓는다면서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쓰레기가 깔린 바닥에서 나무로 집을 짓는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새로 집을 짓는다면 그 소재로 나무를 택하는 게 좋겠지만, 되살릴 수 있다면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게 환경에 더 이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래된 건물을 되살리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소재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보통 친환경적인 것이라면 나무나 돌을 떠올려요. 하지만 철도 자연에서 온 광물이고 리사이클이 가능한 소재라는 걸 깨달았죠. 나무가 가진 한계를 철이 완벽하게 보완해주더군요.” 최문정은 그렇게 버려진 고가구, 건축 현장에서 남은 목재, 못 쓰는 기계 부품 등을 가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탄생시켰다. 이런 작업들은 올드문래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철공소를 우연히 발견해 쇠와 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트렌디한 펍으로 변화시켰다. 직접 만든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은 그가 쌓아온 삶의 기록이기도, 리사이클링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매주 고물을 버리는 날이 되면 최문정은 문래동을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체육을 전공했던 대학생은 집을 짓는 목수가 되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공간을 꾸리다 이제는 버려진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의 작업실에 딸린 별명은 ‘목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다. “어떤 것을 시작할 때 그걸 실제로 만들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특히 소재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로 원하는 걸 실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크죠. 작업실의 부제를 이렇게 지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그의 말처럼, 상상은 현실이 되는 중이다. 그게 나무든 철이든 혹은 그 어떤 것이든 머릿속에서 그려낸 일들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 이는 최문정이 가장 하고픈 일이자, 가장 잘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