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칼럼 피임

한번은 미드를 보다가 다짜고짜 나 혼자 어색해진 적이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동거 3년 차인 커플이 침대 위에서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자는 콘돔을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진다. 그런데 아무리 뒤적거려도 없다. 이번만 그냥 어떻게… 어물쩍 넘어가려는 남자를 향해 여자는 정색하며 말한다. 그게 말이냐고 방귀냐고. 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컷으로 넘어간다. 남자는 추리닝에 파카 차림으로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밤거리를 혼자 터덜터덜 걷는다. 섹스 직전, 기어이 콘돔을 사기 위해 24시 마트로 향하는 중이었다.

나에게는 다음 컷이 없었다. 그 전 상황만 수없이 연출됐을 뿐. 파트너 중에서 침대 옆 서랍장에 콘돔을 수십 개씩 갖고 있던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다. 콘돔 없으니까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긴 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냥 위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21일간 매일 같은 시간에 피임약을 먹은 적이 더 많았다. 분위기 깨지는 게 싫다는 변명에 나 또한 세뇌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게 먼저 준비하지 그랬느냐고 왕왕 따질 만도 한데. 너에게는 그래 봐야 분위기만 깨지는 것이고, 나는 내 호르몬 주기가 다 박살나는 일인데. 도대체 분위기, 그깟 게 뭐라고.

섹스는 둘이 하는데 피임은 왜 늘 나 혼자 해야 했을까. 지나온 연애의 흔적을 살펴보면 듀엣곡을 솔로로 부르는 기분이 든 때가 더러 있었다. 피임은 언제나 그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주원인 중 하나였고. 관계를 가진 파트너와는 솔직하게 말해본 적 없던 얘기를 친구들과 만나서 한 적도 많다. 나 생리를 안 해. 누군가 그 대사를 치면 극도의 긴장과 불안이 곧장 전염되곤 했다. 마냥 듣고만 있던 사람들도 순간 속으로 생리 주기를 계산하도록 만든 대사였다. 그러고는 피임의 중요성에 대해 성토하지만, 정작 그 성토를 들어야 할 대상은 우리의 맞은편에 있지 않았다.

섹스와 피임은 언제나 둘이 함께 다니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남자들에게 ‘피임’을 기대하는 건 왜 이리 요원한 걸까. 결혼과 출산은 연동되면서 연애와 출산은 동반으로 연상되지 않기에 먼 단어처럼 느껴지는 걸까. 백년가약을 맺은 결혼한 사이일지라도 임신은 아주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고 짜야 하는 전략적 플랜 아닌가. 섹스하기 전후로 우리는 피임 때문에 쩔쩔맬 수밖에 없다. 이는 너무도 불가항력적이고 비가역적인 본질이며, 가장 자연스러운 연쇄반응이지 않나. 사실 피임의 중요성에 대해 아직도 이렇게 불을 내뿜으며 땅이 꺼질 만큼 한숨을 쉬면서 이 글을 적어야 하는지, 나는 과거의 나에게 아직도 미안해 죽겠다. 능구렁이처럼 상황을 모면하려는 ‘그’에게 당장 콘돔을 사 오라고, 나는 피임약을 먹기 싫다고 왜 단언하지 못했을까. 지금껏 내가 만났던 모든 ‘그’들에게 말이다.

질외 사정. 나는 이 말 같지도 않은 피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질외 사정이 마치 자신의 특별한 능력인 양 떠벌리는 ‘그’들에게 왜 닥치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생리 기간에 콘돔 없이 한 섹스를 왜 피임이라고 생각한 걸까. 질외 사정과 생리 중 사정은 결코 피임의 한 방법이 아니다. 질외 사정이라는 단어 대신에 ‘책임리스’라고 써도 좋을 것이다. 내가 만났던 ‘그’의 절반 이상은 질외 사정을 자신의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는지 콘돔을 껴달라고 부탁하는 나에게 그러면 느낌이 좀 안 온다며, 마치 질외 사정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피임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이 대목에서 낙태 합법화를 찬성해야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전제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 남자들에게 질외 사정을 금지하고 무조건적인 콘돔 사용을 장려할 수 있는 국가라면, 그러니까 질외 사정 금지법이나 콘돔법 규정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우리에게도 유일한 필터이자 마지막 선택이라는 여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쩜 당연한 맥락 아닐까. 언제쯤 우리는 ‘선 피임 후 섹스’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공식 하나를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동물이 될는지.

섹스는 성스럽다. 지상 최대의 행복인 것도 ‘찰나’적으로는 맞다(만족의 차원으로 보자면 아닐 때가 더 많지만). 다만 내가 가장 확신하는 건 섹스란 번거롭고 수고롭게 여겨야 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이다.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휴전을 선언한 자의 낭랑한 독백쯤으로 받아들이지 마시라. 물론 섹스를 하지 않으면 임신의 공포로부터 당장은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친구들, 그러니까 내 여자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말하고자 한다. 섹스만 성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 전사인 ‘피임’이 가장 성스러운 일이라고.

이번 달에 생리를 안 해. 나는 이제 이 무시무시한 대사를 그만 듣고 싶다. 맞지도 않는 피임약을 먹고 부작용이 일어나 온몸에 알레르기가 생긴 C, 질외 사정에 능란한 척 우습게 노는 애인 때문에 종종 사후 피임약을 먹는다는 H, 그리고 평생 임신이라는 엄청난 불안에 시달려왔고 앞으로도 시달릴 A부터 Z의 이름을 가진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섹스는 고위험군 행위라는 걸 늘 상기했으면. 섹스 직전의 초강력 흥분 텐션에서도, 번거롭기 짝이 없다며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기어이 추리닝 차림으로 밤거리를 걸어갔던 미드속 그 남자처럼 부디 마땅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으면 한다. 오늘은 어떻게 그냥 좀… 하며 얼버무리는 그에게 말하자. 당장 콘돔을 사러 가지 않는다면 오늘밤은 물론이고 다음날 밤, 그 다음 날 밤낮을 막론하고, 너는 물 건너간 것이라고. 크리스마스날 시내에서 음주 단속하듯 캠페인 하고 싶다. 코트 주머니든 바지 주머니든 지갑 안에든 어디든 포켓 속에 콘돔을 하나씩 챙기시라, 남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