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기르던 목축업자의 노동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멕시코의 전통로데오 경기 ‘차레리아(charrería)’. 수세기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이 경기는 미국 서부나 스페인의 로데오 경기와는 또 다른 고유의 형식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중 하나가 여성 기수만으로 구성된 경기 ‘에스카라무사(escaramuza)’다. 여성이 기수를 돕는 조연 혹은 관중으로만 참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여타 로데오 경기와 달리 차레리아에는 여성 기수들이 독자적인 팀을 이뤄 묘기를 선보이는 경기 에스카라무사의 시간이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을 탔어요. 아마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일 거예요. 승마는 제게 인생이나 다름없어요.” 2년 연속 로스 카스카벨레스(Los Cascabeles)라는 팀의 리더로 임명된 안드레아 베세릴(AndreaBecerril)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는 팀의 리더가 되었을 때 자신의 임무는 로데오의 시대를 새롭게 여는 것이자 이 전통 스포츠를 후손에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스포츠의 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일단 리엔소 차로(Lienzo Charro) 경기장을 직접 방문해봐야 한다. 통로가 길게 이어진 구조로 되어 있는데, 참가자가 한 명씩 서로 다른 묘기를 선보이는 동안 심사위원이 이를 살피며 실력을 평가한다. 평가는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진행한다. 기술 중에는 기수가 올가미를 이용해 말이나 소를 잡는 기술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때 로데오 기수인 차로(charro)가 마지막으로 동물의 꼬리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뜨리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로데오 기수의 의상은 정해져 있다. 남성은 바지에 은색 단추가 달린 짧은 재킷을 입고, 산티아고 부츠와 리본 넥타이, 챙이 넓은 펠트 모자를 착용한다. 여성은 무조건 아델리타(Adelitas) 스타일의 의상을 입어야 한다. 아델리타는 1910년대 멕시코혁명 전선에 참여한 여성 혁명가들을 일컬는 말로, 혁명 당시 어깨에 걸치는 숄 하나까지 강인하고 용감한 면모를 드러내려고 했던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다. 아름다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아델리타 스타일은 원피스나 투피스(치마와 블라우스) 두 가지 중 기수의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단, 목깃이 올라와 있고 소매가 있어야 하며 치마는 무릎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속치마와 밑단 장식은 필수다. 소재는 새틴을 비롯해 광택이 나는 재질을 선호하는데 의무 사항은 아니다. 펠트, 가죽, 양모 등 다양한 소재의 모자를 쓰지만 팀원 전체가 색과 소재를 통일해야 한다.
독창적이면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성 기수들의 스타일은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2019년 크루즈 컬렉션에서 에스카라무사에게 영감 받은 옷을 디자인했다. 런웨이에서 여러 방식으로 펄럭거리는 주름치마와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모델들이 스테판 존스가 제작한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실제로 안드레아의 친구 몇 명이 이 패션쇼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옷과 신발, 장신구를 비롯한 각종 부속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있어요. 이들의 노하우 덕분에 기수들의 전통 의상은 계속 계승되고, 나아가 발전하고 있어요.” 안드레아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 이 스포츠에 일단 발을 들이면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의상 한 벌을 맞출 때 세트로 같이 사야 하는 물건이 많거든요. 하지만 경기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안드레아는 총 서른여덟 벌의 전통 의상을 가지고 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장식을 뽐내는 원피스와 함께 디자이너 타예르 메디나(Taller Medina)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모자도 3개나 있다. 가격은 적게는 3백 달러에서 많게는 1천 달러에 달한다. 그의 경기복 리스트에는 얼마 전 2년 연속으로 리더가 된 것을 기념해 은색 꽃무늬 패턴 위에 금색 자수를 놓은 새로운 의상이 추가되었다. 화려한 의상 이야기에 빠져들 때쯤 안드레아가 여성들의 로데오 경기인 에스카라무사에서 의상만큼 중요한 참여 자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을 가지고 매 순간을 즐기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팀원 간에 짜릿한 교감의 순간을 느낄 수 있어요. 서로 유대감을 바탕으로 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에스카라무사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인내심과 관용뿐만 아니라 투철한 참여 의식 역시 에스카라무사의 필수 자격조건입니다.”
그의 팀은 일주일에 서너 번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로데오 경기장인 제네랄 마누엘 아빌라 카마초(General Manuel Ávila Camacho)에 모인다. “여전히 여성 기수를 남성 기수만큼 인정해주지 않는 곳도 있어요. 에스카라무사에 참여하는 여성 기수들과 로데오를 하는 남성 기수들의 실력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여성들 본인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세월도 꽤 길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어요. 우리가 그들과 유일하게 다른 건, 4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원피스를 잘 지탱할 수 있도록 말을 탈 때 살짝 기울여서 앉는다는 점이에요. 로데오 경기에 참여하는 젊은 여성 기수가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에스카라무사의 공연이 시작될 때 몇몇 남성 관중이 화장실을 가는 휴식 시간으로 여기지 않게 말이죠.”
차레리아는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 정도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최근 수년간 세계적으로 차레리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끼리 즐기던 스포츠였다면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싶어 해요.” 안드레아의 사촌 동생인 호세 미겔 마시아스 디아스(JoséMiguel Macías Díaz)가 설명했다. 그는 이 전통을 지키는 일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차레리아 문화, 그리고 그 안의 에스카라무사 문화를 변질시키지 않고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멕시코를 대표하는 여성 기수 안드레아는 이를 위해서 성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모든 기수가 경기장 안에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당당히 이 스포츠를 구성하는 팀이에요. 굳이 설명을 덧붙이면 여성 팀이라는 거겠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멋진 의상과 기술에 감탄하고 있어요. 심지어 남성 우월주의가 팽배한 이 나라의 남성들도 조금씩 우리의 존재감을 인정하는 분위기고요. 이제 우리는 더멀리 나아갈 준비가 됐어요. 차레리아를 알리는 데 앞장설 수 있을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