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확실히 흔한 광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화물선 RZK 콘스탄차(RZK Constanta)에 탑승한 승조원들과 사진가 샤를 젤로(Charles Xelot)의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들이 탄 화물선은 러시아 북쪽 끝에 위치한 야말(Yamal) 반도에 새 액화천연가스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자재들을 실어 나르는 배인데, 북동 항로를 거쳐 카라해를 통과하는 구간을 지나는 2주 남짓한 기간 동안 이들은 놀거나 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항로가 꽁꽁 얼어붙어 쇄빙선이 도착할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이들은 주로 탁구 경기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선내에서 사우나를 즐긴다. 몇몇 승조원은 그 시간을 마치 유급휴가 같다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느긋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이때가 전부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속에서 수송 작업을 하고 새 공장을 건설하는 건 일이라기보다 분투에 가까울 정도다. 이들과 함께 몇 번의 겨울을 나며 북극의 지하자원 개발을 취재한 샤를 젤로는 사진집 <툰드라 아래에 가스가 있다(There Is Gaz Under the Tundra)>에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작업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기엔 승조원들이 말한 유급휴가의 마지막 날인 눈 내리는 밤, 배를 항구로 이끌어주기 위해 도착한 괴물같이 거대한 쇄빙선의 모습도 담겨 있다.
북극 지방에는 지구상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 중 약 22%가 잠들어 있는데, 1960년대 이후 그중 60여 곳에서 대형 유전과 가스전이 발견되었다. 이 중 무려 43곳이 러시아에 위치해 있다. 과거 얼음 속에 묻혀 있었던 탓에 채굴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 자원들은 얼마 전 환경의 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북동 항로 같은 새로운 수송 루트가 생기며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기온이 높아지며 열린 북동 항로는 실제로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줄 뿐 아니라, 해적들을 피하기에도 그만이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물론 장애물은 여전히 존재한다. 불안정한 조건뿐 아니라 여전히 1년 중 여덟 달은 얼음이 얼어 있으며, 화씨 영하 50℃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기후도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국가 경제에서 에너지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 러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천연자원은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기에 새로운 개발은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야말 반도는 더없이 귀한 장소다. 이 지역 언어인 네네츠어로 ‘세상의 끝’이라는 뜻의 지명을 가진 이 자치주는 미국 텍사스주보다 큰 땅에 32곳의 가스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러시아 국영 정유 기업인 가스프롬(Gazprom)에 따르면 약 26조8천 세제곱미터의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에너지 개발 기업인 노바텍(Novatek)은 이곳의 영구 동토층에 기둥 수천 개를 박고 총 2백70억 달러를 들여 그 위에 야말 LNG(액화천연가스) 공장을 세웠다. 중국 정부와 프랑스의 거대 석유 기업인 토탈(Total)의 투자를 받아 세운 이 공장은 지하 수천 피트 지점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해 운반하기 좋도록 액체 상태로 식히는 공정을 진행한다. 최대한의 출력으로 공장을 가동한다면 1년에 약 1천8백만 톤의 액화천연가스를 가스 수송선에 싣고 북동 항로를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운반할 수 있다. 운반에는 주로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Christophe de Margerie)’라는 이름의 수송선 겸 쇄빙선을 이용하는데, 이 선박은 7피트(약 210cm) 두께의 얼음을 스스로 부수며 나아갈 수 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를 포함해 야말 LNG 공장을 위해 특별히 건조한 선박은 총 15척에 달하지만, 새로운 선박이 계속 만들어질 전망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기술은 끊임없이 북극의 극한 환경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취적으로 개발한 자원은 지구 반대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발 대상 지역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도 한다. 거대한 액화천연가스 공장이 세워지고 수송선이 얼음을 부수며 다니는 야말 지역은 본래 순록 떼와 지역주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북극 마을은 천연자원 개발로 인해 원치 않는 변화를 겪는 중이다. 한때 순록 떼가 오가던 목초지에는 이제 파이프와 플레어가 점령하고, 해가 지면 어둠과 적막에 잠겼던 곳은 이제 밤마다 유조선과 쇄빙선이 내는 빛과 소음으로 가득하다. 공장들은 땅을 파괴하는 대가로 지역주민들에게 돈과 목재, 휘발유, 기반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주민 중 누구도 공장 설립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를 막을 힘은 없었고, 이들이 보상으로 제공하는 도움을 거절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놀랍게도 이런 변화는 단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극지방에 더 큰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 보고 있다. 이 변화를 직접 목도한 사진가 샤를 젤로는 취재를 마친 후 실제로 액화천연가스를 실어 나르는 유조선을 타고 고국 프랑스로 돌아왔고,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파스타 삶을 물을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의 불을 켤 때, ‘아, 이 가스가 야말 지역에서 왔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럴 때마다 거대한 공장의 빛과 단단한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는 쇄빙선의 소리, 그리고 멀리 순록 떼를 이끄는 그 지역 주민들의 기이한 조화가 그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