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공생을 위한 22가지 질문 장애인

 

지난 11월 말, 서울에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코로나19 감염자로 확진됐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장애인 확진자 긴급돌봄 지침’에 따르면,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활동지원사를 파견해 그를 지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병상이 없어 열흘 동안 ‘재택치료’를 했다.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4천~5천 명을 넘나들던 시기였다. 원룸에서 혼자 사는 그는 “말이 재택치료지 사실상 방치”라고 했다.

현재도 한 사지 마비 장애인이 확진자로 확인돼 재택치료 중이다. 그러나 그 역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평소 그를 지원하는 활동지원사가 그의 집에서 다른 방에 머물며 방호복을 입고 식사와 신변 처리 등을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청도대남병원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폐쇄 병동에 있던 정신장애인 1백4명 중 1백2명이 집단감염 되고, 이 중 7명이 사망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첫 번째 사망자는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순간이 20년 만의 외출이었다고 한다. 이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는가.

우리 사회는 이러한 시설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져본 적이 없다. 타인의 돌봄과 많은 지원이 필요한 존재를 지역사회에서 분리해 격리 수용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것을 ‘복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 집단감염을 통해 드러난 시설의 모습은 어떠한가.

‘신체 건강한’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이 사회에서는 그 기준치를 조금만 벗어나면 너무 쉽고 간편하게 존재 자체가 실격 처리된다. 이는 비단 장애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 노인, 어린이, 만성질환자 등 재난 상황에서는 사회적 자원이 취약한 이들일수록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한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라고 한다. 기후 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를 덮친 감염병은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는 과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장애인이 가장 먼저 겪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들의 목숨을 버린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공생을 위한 질문 #3 ‘젠더’는 2022년 대선에 어떤 적용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