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인 가구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27.9%였던 1인 가구 비율은 몇 년 사이 30%를 훌쩍 넘어섰다. 이는 자연스레 ‘비혼’과 이어진다. 최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거나 다른 형태의 공동체적 삶을 택하는 사람들의 비율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도 기성세대는 여전히 이 같은 말로 결혼과 출산을 종용한다. “늙고 아프면 돌봐줄 자식 하나 없이 어쩌려고.” 사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든 자식이 부모를 돌보진 않는다. 그렇지만 나이들고 아플 때 돌봐줄 존재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이 듦과 질병, 장애에 대한 두려움은 무엇으로 떨칠 수 있을까.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비롯한 비영리 의료 협동조합에서는 꾸준히 자기 돌봄, 서로 돌봄, 함께 돌봄을 그 대안으로 주창해왔다. 이는 가족과 병원이나 요양원에 의지하는 것을 넘어 내 주변 사람들과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이는 지원을 받으면서, 나답게 나이 들고 아플 수 있기 위한 자기 돌봄. 나의 취향과 정체성을 존중해주는 아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서로 돌봄과 함께 돌봄. 돌보는 사람은 계속 돌보고, 돌봄 받는 사람은 계속 돌봄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호혜적 돌봄이 순환하는 관계는 투병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나이들고 아프면 노인 환자가 되어 자기 정체성이 사라지는 데 대한 불안까지 없애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돌봄의 핵심은 목숨만 부지하도록 하는 돌봄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권을 확보하는 형태가 가능하려면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유상이든 무상이든 순환되는 돌봄의 질이나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평등, 평화, 협동적인 소통과 협의가 필요하며 노후 자금과 보험, 건강한 생활 습관뿐 아니라 호혜적이고 든든한 서로 돌봄의 관계망을 구축해야 한다. 좋은 돌봄의 철학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협동조합, 기관을 통한 체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돌봄 정책이나 제도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잘 돌보는 데에도 기술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돌봄을 잘 받기 위한 인식의 변화와 연습도 중요하다. 특정 성별과 직업에게 편중되거나 숙련과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돌봄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고, 어렵고, 그래서 돌보는 쪽, 돌봄 받는 쪽 양쪽 어디에 속하든 두려운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돌봄의 질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 명확하다면 지금도 부족한 공급을 전향적으로 늘려갈 수 있도록 돌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작가 우에노 지즈코는 고독사 전에 고독생이 있다고 말했다. 고독하지 않게 살아온 사람도 고독하지 않게 죽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돌봄의 문제는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인간다움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돌봄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질문에 답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