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던 날, 당시 편집장 K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우 씨, 유명해지세요.” 떠나는 동료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이었지만, 또한 회사를 통해 제공되던 지면과 고용 안정성을 잃은 전직 기자가 프리랜서로 생존할 길에 대한 충고이기도 했다. 당시엔 그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미디어 환경 변화 안에서 ‘유명함’이라는 자산의 가치는 부동산 가격만큼이나 폭등했다. 물론 자기 PR은 예전부터 중요했다. 다만 과거의 PR이 자신의 사용가치를 어필해 높은 교환가치로 환원하는 일이었다면, 현재의 주목 경제에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위 자체가 상품이 되어 교환가치로 환원된다.
유명해서 유명한 것이 직업적 정체성이 될 수 있는 시대. 이런 주목 경제의 해악을 경험적으로 나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온갖 이슈마다 빠르게 숟가락을 얹어 혐오 정서를 자극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소위 ‘사이버 렉카’들은 주목 경제 시대의 가장 끔찍한 혼종이다. ‘너 고소’라는 밈으로 스스로를 희화해 인지도를 높인 강용석이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저열한 폭로로 인지도를 복리로 불리는 모습은 새 시대의 성공 방식이 됐다. 끔찍하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주목 경제에 접근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SNS에서 ‘좋아요’를 받는 것이 인정 욕구의 문제였다. 이제는 ‘생존형 관종’이 되어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려 주목 경제의 종잣돈을 마련해야 겨우겨우 일감의 네트워크에 접속하거나 소비자와 만날 수 있다. 상징 자산과 인맥이 부족하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퇴사하던 날, K의 말대로 적당히 이름을 알리면 민망한 일은 거절하고 대중문화 글쓰기의 직업적 존엄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유명해지기 위해 직업적 존엄도 버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하여 이제 나의 화두는 유명해지지 않고도 글과 말로 먹고사는 것이다. 우선 나 자신의 생존과 존엄의 문제다. 하지만 아마도 나 하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늘, 당신을 가장 사로잡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새해를 앞두고 마리끌레르가 각계 전문가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