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식물들을 옆에 두기만 하면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일까.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가꾼다는 것은,
그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피크닉의 새 전시 <정원 만들기 Gardening>의 시작점에 적힌 질문이다.
전시는 반려식물 들이기의 대유행 속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며 어떻게 자기만의 정원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마련했다.
전시의 첫 번째 작품은 스스로 생태학자임을 자처하는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작품 <너 없는 나도, 나 없는 너도 Holobiont>다.
거대한 크기의 배추, 무, 양파 등 채소들이 살아났다
시들기를 반복하는 설치로 작은 땅 가까이에서
자연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야외로 이어지는 동선에서는 최근 자연주의 정원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김봉찬, 신준호 작가가 마련한 <어반 포레스트>가 나타난다.
야외 공간 곳곳에 피어난 식물들은 인간 역시 자연공동체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준다.
흙이나 메마른 나뭇잎, 이끼나 벌레 등을 매크로 렌즈로 촬영한 다음,
3D 가상 공간에서 합성하여 생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구기정 작가의 <초과된 풍경>은 몰랐던
땅 속 세계를 탐험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여운을 남기는 섹션은 ‘정원가들’이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원 디자이너라 불리는 거투르트 지킬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
박완서, 헤르만 헤세, 에밀리 디킨슨 등 정원을 사랑했던 문인들의 글,
국내 조경의 선구자 정영선 소장의 철학과 작업을 조망한 섹션과
네덜란드 출신 정원가 피트 아우돌프의 작업 등은
정원을 넘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깊은 고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내가 온전하게 배운 것이자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사실은
정원을 사랑하는 데에서 오는, 끊임 없는 행복이다. – 거투르트 지킬
정원은 아름다움만 찾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친 마음,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조용히 생각할 공간도 필요해요.
들길을 산책했던 철학자, 나무숲을 걸었던 수필가가 나올 수 있도록. – 정영선
정원가들과 그들의 정원을 영상으로 담은 정재은 감독의 <정원의 방식>,
그리고 정영선 소장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도심 속에 머물길 바라며 꾸린
옥상 정원은 나만의 작은 정원을 꿈꾸게 만든다.
별도의 상영관에서는 계절을 관통하며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을 상영 중이다.
정원이 주는 기쁨과 이를 꾸리기 위한 시간과 애정과 노동,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사는 방식을 모두 담은 전시는 10월까지 계속된다.
장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피크닉
기간 10월 24일까지(월요일 휴관)
티켓 1만8천원(영화 티켓 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