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판티니 런던

프란체스코 판티니 런던

런던

 

‘33’은 사진가 프란체스코 판티니(Francesco Fantini)가 런던의 자치구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은 프로젝트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길 위에 9백만 명의 시민이 살아가는 곳인 런던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사진으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그는 런던의 큰 구조를 우주에 비유했다. “런던은 토성처럼 링 모양을 한 M25 외곽 도로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아스팔트는 비공식적인 런던의 경계이기도 하다. 마치 자기인력과 척력의 작용으로 동시에 회전하는 은하처럼 각각의 자치구는 각 지역의 밀고 당기는 힘 아래 팽팽히 연결돼 있다. 나는 이 힘의 체계에 몸을 맡긴 채 카메라를 나침반의 바늘 삼아 탐험가처럼 돌아다녔다.” 그는 이 같은 공간 탐구가 인간이 지닌 태생적 한계 속에서 자신이 살기로 마음먹은 도시를 이해하고 발견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이 주는 위안을 잘 아는 그는 지역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런던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종돼 더 이상 하나의 규정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불가능해진 대도시를 보며 이상적 도시의 모습을 생각한다.

 

프란체스코 판티니 런던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에게 런던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느껴졌나? 런던을 주제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런던과 비교할 때 마을의 모든 시스템이 두 배로 느리게 흘러가는 이탈리아의 작은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모든 게 빠르고 큰 런던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런던을 알고자 하는 탐구는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한계 안에서 내가 살기로 결정한 도시를 이해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그렇게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타국에서의 삶이 덜 이국적으로 느껴지니까. 내가 익숙함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려는 데는 자라온 환경과도 관련이 깊다. 고향인 작은 마을은 모든 벽과 길모퉁이, 보도블록까지도 내게 확실한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런던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나만의 방식대로 이해하려 한 긴 여정이었다.

긴 여정 속에서 런던의 다국화를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담았다. 런던과 이스탄불은 내가 오랜 기간 산 유일한 대도시고, 이는 도시의 복잡한 역학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런던을 끝없이 팽창하는 은하와 비교하길 좋아한다. 자기장의 인력과 척력으로 동시에 회전하는 수많은 태양계는 반중력으로 연결돼 있지 않나. 서로 다른 행성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조화와 상충을 이루지만 여전히 모두 결속돼 있다. 지금 런던의 다국화도 같은 힘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저마다의 속도로 조화와 상충을 이루지만 끝내 결속되는 그런.

 

프란체스코 판티니 런던

 

“그들은 영국 출신이지만 영국인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런던 출신입니다.
이것은 매우 다릅니다.
런던은 어느 방향으로든 활짝 열려 있습니다.
착취당하고 착취하는 곳이지요.”
이언 싱클레어(Ian Sinclair), <마지막 런던(The last London)>(2017)

 

런던의 어떤 점이 계속해서 사진을 찍게 했나? 드넓은 땅. 런던은 1천5백72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미로 같은 곳이다. 우연히 마주한 풍경이 때로는 거대한 그림 테이블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거대한 도시의혼돈 아래 미세하게 빛을 내는 고요함으로 이끌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이 도시의 공간은 나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탐구하도록 자극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된 방향이나 계획이 있었나? 프로젝트는 항상 지역과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발견하는 우연 속에서 늘 변화했다. 사소하고 이례적인 상황에서 큰 계획이나 설계는 없었다.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느끼며 살게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기 드보르(GuyDebord)가 말한 일종의 표류 (derive) 방식을 따랐다. 그저 흘러다녔을 뿐이다.

런던의 33개 지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 두말할 것 없이 해크니(Hackney) 버로우 9이다. 내가 살고 있고, 가장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곳. 그렇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혼종과 변형 등 저마다 다른 현실이 담겨 있다. 해크니의 특성을 보여주는 작은 예로는 버로우 중심에 자리 잡은 유럽에서 가장 큰 정통 유대교 공동체인 스탬퍼드 힐(Stamford Hill)이 있다.

 

프란체스코 판티니 런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기 바란다. 간신히 사진에 담아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과 살아온 이력은 끝내 알지 못하겠지만,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그들은 필름의 셀룰로오스로 들어가 영원히 그 자리에 박제되었다. 블랙베리 나무와 쓰레기 매립지, 그리고 토트넘 (Tottenham) 근처 지상 트랙으로 둘러싸인 작은 자연 무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엔리케(Enrique)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스핑크스 고양이 두 마리를 본 순간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월섬 포레스트(Waltham Forest)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두 고양이를 보고 바로 멈춰 섰다. 두 마리 고양이가 무대 위에서 휘장을 걷은 채 조각상 같은 포즈로 가만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레 거리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자신만의 작은 파티를 열던 비누거품총 상인과 거의 매일 하얀 토끼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시키던 신사도.

당신을 계속 작가로서 촬영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무엇이 당신을 계속 찍게 하는가? 나는 향수에 젖는 것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사진 보는 것을 즐긴다. 사진이야말로 역사에서 반복될 수 없는 독특한 순간과 우연의 일치로 영원히 한 지점에 모인 다양한 이야기들과 수많은 형태를 대표하니까. 다시 말해, 과거의 궤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