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cinema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
수석 프로그래머로서 바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방향이 있다면 무엇인가?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영화에 전문성을 가진 영화제라는 점에서 다른 영화제와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강조하는 동시에 한국과 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의 영화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프로그래머마다 약간씩 관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국과 아시아에 한해서는 전 세계에서 처음 발굴해 보여주는 월드 프리미어 영화가 많고, 이런 방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외 지역, 특히 유럽 영화의 경우 유럽의 영화제들이 우리보다 전문가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발굴한 영화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들여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지역을 막론하고 월드 프리미어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런 구분을 내려놓고 아시아 안에서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데 더 공을 들이려고 한다.
그 가운데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무엇이라 보는가?프로그래머는 한마디로 영화에 대해 가이드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일정 정도의 전문 지식을 갖추고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영화와 사람을 맺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그 점에 있어 요구되는 자질도 다양할 것이다. 그 중 예를 하나 들자면 돌아가신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에게 배운 것이 있다. 그분은 아시아 영화에 있어 누구 못지않은 전문가였다. 하지만 그분이 사람을 대하고, 마음을 얻는 과정을 보면 ‘내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많이 안다’는 뉘앙스를 풍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다가갔고, 그 과정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책에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오는데, 그에게 부산은 여전히 맛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선사해준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잊지 못한다.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누구보다 먼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가 부산과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잊지 못하는 건 아닐 터다. 사람과 영화를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하는 것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의 다른 책무인 것 같다.
그럼 가장 경계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프로그래머는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이지만 심판관은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영화를 대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직업이다. 가령 단 10편의 영화를 선정할 때 그것이 1등부터 10등까지 등수를 매기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탈락시킨 영화에 대해서 ‘과연 내가 이 작품을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거듭하는 태도야말로 프로그래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본다. 창작자에 대한 예의이자 프로그래머가 갖춰야 할 직업 윤리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영화 매체 특성상 그해의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어떤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특별전 중 하나가 아시아 여성 감독 특별전 ‘원더우먼스 무비’다.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 젠더 이슈가 중요한 화두로 대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 감독들의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만큼 우리 영화제 역시 이 현상을 충실히 반영하려고 한다. 작품 선정뿐 아니라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성비를 염두에 뒀다. 이 밖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이란, 이라크 지역 영화 등도 포함할 예정이다.
가장 공들여 초청한 작품은 무엇인가? 올해 중요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인이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다. 2015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영화감독으로, 특히 2021년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활약이 컸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우연과 상상>이라는 작품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같은 해에 만든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서로 다른 영화 두 편으로 상을 받은 인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다음은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것을 올해 확실히 인식시켰다. 그의 영화 두 편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
치열한 예매 전쟁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단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한다면? 구사노 쇼고 감독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이다. BL을 좋아하는 여고생과 게이 남학생이 만나는데, 여학생은 이 친구가 게이인 줄 모르고 사랑을 고백해 얼떨결에 둘이 연애하게 되는 이야기다. 예쁜 소년과 소녀가 등장해 말랑말랑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주제의식을 회피하지 않는 이 작품을 보며 상업 영화지만 용감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무엇이기에 오랜 시간 영화 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가? 작품을 선정하다 보면 이걸 꼭 봐야 하나 싶은 영화도 많다. 그러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발견하면 그간 쌓인 피로가 모두 사라진다. 1백 편 중 한 편꼴이지만 그 한 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자못 크다. 물론 힘들 때가 있지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웃음) 세상에 힘든 일이 너무 많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