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앵글
Wide angle
강소원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머로서 어떤 태도로 작품을 선택하려 하는가? 영화는 이래야 한다 혹은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것이다 하고 규정짓지 않고 열린 형태로 새롭고 낯선 것들을 흡수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음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면 그 프로그램 안에서 관객들 역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선정하고 추천하는 일에 따르는 고충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지향하고 지지하는 영화의 성격이 과연 옳은 것인지 늘 생각하게 된다. 내가 엄청난 영화를 놓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아시아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와이드 앵글은 주요 섹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그래서 때때로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의식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작품이라도 관객에게는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망설여질 때도 있다. 그런 염려로부터 거리를 둬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프로그래머가 지나치게 자기 확신을 가지면 닫힌 시선을 갖게 되지 않을까 돌아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을 차단할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올해의 변화를 체감하기도 했나? 올해 선정작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이 40% 정도를 차지한다. 사실 이전에도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현장에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우리 영화제도 주목했지만 최종 선정 단계에서 올해만큼 많이 채택되지는 않았었다. 여성 감독의 뛰어난 작품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아시아 쪽에서는 중국을 위시한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 다큐멘터리의 기세가 대단하다. 비단 올해만의 특징은 아니고 지난해에도 느꼈는데 이 기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무엇인가? <피아노 프리즘>이라는 한국 다큐멘터리다.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은 오재형 감독의 작품이다. 사적인 다큐멘터리로 한 화가가 은퇴 후 영화감독으로 전향했다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과정을 쭉 보여준다. 이후 공연의 형태로 가는 길까지 보여주는데 소소하면서도 어딘가 많이 엉뚱하다. ‘저 사람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소일거리 삼아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예술로서 접근하고 발전시켜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연출 면에서도 대단히 신선하다. 또 하나는 인도 레바나 리즈 존 감독의 <여성 전용 객차에서>다. 인도 뭄바이의 통근 열차 안, 여성 전용 객실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다. 인도 사회가 여성들이 살아가기에 그다지 수월한 곳은 아니지 않나.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하느냐?’는 감독의 질문에 여성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다양한 대답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억압적인 상황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든다. 지금껏 영화에서 희생당하는 대상으로만 그려졌던 인도 여성들이 실제 삶에서는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 있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촬영과 편집이 뛰어나고, 영상도 무척 아름답다. 두 편 모두 비프메세나상 후보작이다.
다큐멘터리는 시대의 공기를 가장 예민하게 담는다는 점에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작품도 많을 것 같다.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격리된 상태에서 촬영한 작품이 많았다. 줌으로 영상을 주고받으며 만든 영화들도 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이 상황을 더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미국 출신의 매튜 하이네만 감독의 <더 퍼스트 웨이브>도 흥미롭다. 팬데믹 상황이 심각했던 시기의 뉴욕 의료진 이야기다. 의료진과 환자의 일상과 치료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찍은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다. 2019년 홍콩 시위 이후 관련 영화도 속속 나오고 있다. 마스크와 방독면을 쓴 시위자들을 의미하는 제니퍼 응고 감독의 <페이스리스>는 실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큰 위험에 처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페이스리스’이기도 하다. 시위 초창기부터 마지막까지 네 인물을 쫓으며 촬영한 굉장히 뜨거운 영화다. TV에서는 볼 수 없던 실제 시위 현장을 보여주고,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다. 영화를 한 편 더 소개해도 될까?
물론이다. 상영작 중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가는 영화는 김진열 감독의 <왕십리 김종분>이다. 왕십리에서 50년간 노점을 운영한 여든셋 여성의 삶을 담았는데 그분이 고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다. 김귀정 열사 30주년 추모 작품인데 사실 추모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왠지 뻔한 것 같지 않나. 한데 이 영화는 김귀정이라는 이름이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뒤에서야 언급된다. 그저 평범한 노점상의 여성의 일상을 볼 뿐인데 그 삶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