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비프
Community biff
정미 프로그래머
커뮤니티비프는 2018년 신설된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하자마자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도 없는 훌륭한 ‘관객’과 ‘부산’이라는 멋진 장소가 지닌 압도적인 차별성 때문이었다. 커뮤니티비프는 이 바탕 아래 주최자와 관람자의 구별 없이 모두가 주체가 되기를 지향하는 ‘축제’의 본질을 살려 영화, 부산, 현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열린 축제를 하고 있다. 관객이 기획과 진행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색다른 영화 보기 실험을 한다는 것이 커뮤니티비프의 자랑이다. 예컨대, 관객, 배우와의 실시간 양방향 코멘터리 상영인 ‘마스터톡’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적으로 개발해 왔다. 올해는 하나의 주제로 하루 3회 영화를 상영하는 ‘Day×Day 데이바이데이’, 부산 전역에서 펼쳐지는 ‘동네방네비프’ 등을 새롭게 선보인다.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밍하고 다른 관객의 선택을 받아 상영을 확정하는 리퀘스트 시네마: 신청하는 영화관이야말로 커뮤니티비프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영화제 안에서 일부 극소수의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누구라도 자신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해볼 수 있는 광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관객 프로그래머들은 단지 영화를 선정하는 것을 넘어 프로그램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정 영화를 상영한 다음 이어 할 행사도 기획해보는 거다. 직접 섭외를 하기도 하고. 가령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상영하고 이후 박찬욱 감독과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논하는 식이다.
이 밖에 지역주민들과 협업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는 걸로 알고 있다. 올해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연계해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제작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상영하고 전시하는 일일 뿐이고 영화는 그분들이 만드는 거다. 막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시작했는데 방송사에서도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런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도시 전역에서 상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이 영화제가 생활 공간 거점을 찾아간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실험적인 일들을 시도하며 관객들에게 보다 친숙한 영화제로 다가가고자 한다.
올해부터 시작하는 ‘동네방네비프’는 영화제와 지역주민의 연계를 위해 본격적으로 내딛는 첫발인 것 같다. 부산의 작은 마을들에서 작은 영화제가 열릴 것이라고 들었다. 어떤 이벤트인가? ‘생활 밀착형 영화제’라는 개념으로 부산 14개 구 · 군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지역 커뮤니티, 도시재생지원센터, 도시생활지원센터와 협업해 동래구 복천동고분군,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기장군 고리에너지팜 등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BIFF 공식 상영작뿐 아니라 주민이 요청한 작품도 상영한다. 20~40명 규모의 작은 단위로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말한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영화 제작이 이 프로그램과 연계된 행사다.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성격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의미 있는 순간들도 있었나? 전국의 영화 활동가들이 영화 문화의 미래를 그려보는 ‘어크로스 더 시네마’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책 대안을 고민하는 우정과 연대의 자리였다. 이를 계기로 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전국 조직이 만들어졌다. 곳곳에서 각자 활동하던 이들을 한데 모일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영화제가 하는 일 같다. 영화는 보다 넓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창문이기도 하고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영화제가 나의 세계와 넓은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하면 좋겠다.
운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도 특별할 것 같다. 2018년부터 시작해 꿈꿔오던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며 성장하고 치유도 받았다. 관객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참여자 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본인도 이런 행사를 많이 했음에도 왠지 모르게 감정이 격앙된다는 거다.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하기에 해내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나 역시 울컥할 때가 많다. 우리 영화제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지만 커뮤니티비프는 영화보다는 사람에 더 집중하는 행사다. 여타 영화제는 때로 표를 구하기도 어렵고 일반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지 않나. 적어도 커뮤니티비프에서 다루는 것들은 입장 문턱이 낮고, 또 그 안은 굉장히 방대하고 광활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곳에서는 각자의 관심사를 찾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 가운데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험의 상을 차리는 사람이면 어떨까. 내가 요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만들어진 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향에 맞게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프로그램들과 부산에서 마땅히 즐겨야 할 것들을 골라서 코스를 짜주는 플래너이고 싶다. 영화제를 누리지 못하고 이 가을을 그냥 보내기에는 여러분의 인생이 너무나 특별한 한정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