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Korean Cinema
정한석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한국 영화에 최소한의 방향이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방향이나 기준은 복잡하지 않다. 여느 영화제가 그러하듯 해당 프로그래머가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기준이 된다. 그리고 섹션에 따라 실무적인 기준이 동원될 텐데 한국 영화의 경우 비전 섹션은 독립영화와 신인감독 발굴에 주력하기 때문에 되도록 정보와 선입견을 내려놓고 미지의 상태에서 작품을 보려고 애쓴다. 파노라마의 섹션은 소수의 개봉작과 미개봉작, 다수의 프리미어 작품을 상영하는데 올해 유독 프리미어 작품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미 개봉한 작품의 경우에는 감독과 배우 등 게스트를 초청해 영화제다운 행사를 진행하려고 한다. 이렇듯 섹션에 따라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 다르다.
올해 눈에 띄는 한국 영화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전통적인 거장 감독의 주목할 신작 두 편을 만날 수 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가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인 로드무비다. 임상수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과 최민식, 박해일 두 배우의 명연기가 빚어내는 하모니가 이 영화를 행복에 관한 더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질문으로 만들어낸다. 많은 분이 재미있게 감상할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도 국내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한다. 홍상수 감독과 이혜영 배우의 첫 작업물로 단순하지만 분명하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포착하는 방식이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다. 홍상수 감독은 계속해서 앞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앞서 전통적인 것을 강화했다면 두 번째 특징은 OTT 공식 섹션 ‘온 스크린’을 신설해 새로운 시도를 도모한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크린에 걸려고 만든 영화를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것이 영화제가 제시할 수 있는 궁극적인 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온라인 환경과 발맞춰 가는 가장 좋은 비전은 이미 완성된 영화를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환경과 어떤 식으로 접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대답 중 하나가 온 스크린 섹션일 것이다. 그렇게 접점을 찾아가는 방식이 있고, 또 하나는 해외와 이원 생중계를 해볼 예정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면 GV도 같이 듣고. 지난해에 한 번 시도했었는데 이 방법을 더 확장해볼 계획이다. 이 역시 온라인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이런 방식으로 상영하게 될 것 같다.
한국 영화 상영작 중 몇 작품을 추천해주기 바란다. 김덕중 감독의 <컨버세이션>이라는 작품을 먼저 추천하고 싶다. 2019년 뉴 커런츠 부문에서 <에듀케이션>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소개한 감독이다. <컨버세이션>이라는 작품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화로 이뤄진 영화다. 많은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아주 많은 말들이 사소하지만 정답게, 그리고 기민하게 인물의 관계를 각인하고 또 새롭게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내용이 재미있고 형식적으로도 대단히 세련되다. 한인미 감독의 <만인의 연인> 또한 흥미롭다. 한 여고생이 겪는 일을 다룬 일종의 성장담으로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세심하게 담아냈다.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박송열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라는 작품을 꼽겠다. 희극적인 제목처럼 작품도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감독과 프로듀서이자 감독의 아내가 함께 출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일종의 도덕적 기준을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웃긴데 왜 슬프지?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될 희비극 영화다. 프로그램 노트에도 밝힐 내용인데, 영화 속 주인공이 뭔가를 시도하다가 포기한다. 한데 대체로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뭐가 됐든 하나는 성취해야 기분이 좋지 않나. 근데 이 영화는 포기하는 장면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는 거다. 인간의 감정을 깊숙한 지점에서부터 역으로 건드리는 섬세한 작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편하게 오셨으면 좋겠다. 저희가 모든 면에서 안전하게 다 준비하고, 즐기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부분을 정비해놓았다. 사실 영화제는 관객을 편하게 해주는 곳이 아니다. 집에서 TV 보는 게 가장 편하지 않나. 시간 맞춰 극장에 도착해 바르게 앉아 꼼짝없이 영화를 보는 것은 불편한 행위다. 그럼에도 영화를 함께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불편을 잊게 해주는 것이 영화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올가을, 부산에서 만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