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다혜차지스 추다혜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추다혜차지스 추다혜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실크 셔츠 아크네(Acne), 이너로 입은 드레이프 니트 톱 르메르(Lmaire), 레이어드한 레이스 팬츠 룩캐스트(Lookast), 화이트 팬츠와 뮬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민요를 기반으로 활동한 밴드 ‘씽씽’에서 보컬로 활동했다. 2018년 밴드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을 거쳐 이시문(기타), 김재호(베이스), 김다빈(드럼)과 함께 밴드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했고, 지난해 5월 무가와 밴드 음악을 결합시킨 첫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를 발표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과, 더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음악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국악과 연기를 전공했다고 들었다. 밴드 ‘씽씽’이 있기 전에는 어떤 것을 꿈꾸는 사람이었나? 원래는 연기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고 민요는 특기로 시작했다. 무대에 서는 것은 늘 좋았지만 민요와 연기 중 어느 하나만 하긴 싫어서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20대 때는 어떤 것을 꿈꾸기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구체적인 목표 대신 순간순간 충실하자는 마인드였기 때문에 이것 저것 배우느라 바빴다. 인풋만 많고 아웃풋은 없는 상황.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어디쯤에 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동안은 매너리즘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대학 동기이자 씽씽의 멤버였던 (이)희문 오빠의 제안으로 함께 공연을 하게 됐다. 씽씽 이전의 모습을 갖춘 공연이었는데 그 안에서 자유롭게 놀 듯 음악을 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밴드 씽씽 이후 약 3년 간 솔로와 추다혜차지스로 활동하며 자신의 색이 변했다고 생각하나? 그전까지 노래하는 퍼포머였다면 지금은 자신의 음악을 하는 창작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업물을 바라보는 태도나 시각이 좀 더 진지해졌다.

그 변화의 대표적인 결과물인 추다혜차지스의 첫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무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국악을 다른 장르와 섞은 시도는 처음이 아니지만, 무가를 재해석한 음반은 많지 않다. 씽씽에서 민요로 재미있는 사운드와 유쾌한 공연을 만들었다면, 추다혜의 창작물은 그보다 짙은 색채를 띠길 바랐다. 비주얼적 요소나 화려한 퍼포밍에 중점을 두는 것은 씽씽에서 충분히 했기 때문에 굳이 그와 연결되는 작업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굿’을 종교적 행위를 떠나 예술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있었나? 본격적으로 굿을 조사하기 전, 3,4년 정도 요가를 해오면서 명상 음악, 만트라 같은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찬팅(Chanting)도 찾아 들을 정도로.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영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 시기에 우연히 ‘이찬엽’이라는 만신의 굿을 봤다. 신당 밖에서 일종의 공연 형식으로 치러졌는데 매체에서 익히 다뤄지는 무섭고 오싹한 굿이 아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 때부터 굿과 무속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뀐 것 같다. 한국에서 굿이라고 하면 왠지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하지만 내가 접한 굿은 우리나라 고유의 영성이 담긴 음악에 연기, 춤이 들어간 예술가의 퍼포밍 그 자체였다. 무가가 가진 종교적인 색깔보다 가치 있는 전통 예술이라는 측면이 더 와닿았다.

무가의 정서나 분위기를 펑크, 레게, 덥과 같은 대중음악 장르에 녹여낼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무속 음악과 대중 음악 사이의 간극을 좁힐 생각은 별로 없었다. 무가에서 살리고 싶은 포인트, 그러니까 무가가 갖고 있는 언어의 질감이나 리듬의 반복성 같은 요소들을 내가 좋아하는 밴드 사운드와 잘 매칭시키는 데만 집중했다. 사실 무가라는 장르는 쉽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다. 우리말임에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너무 다르고 대중에게 익숙한 실용음악의 ‘훅’ 같은 요소도 없다. 선율 자체도 지극히 전통적이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되, 우리 색을 제대로 만들고자 힘썼다.

지난 3월, 제 1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타이틀 곡 ‘리츄얼댄스’로 ‘최우수 알앤비&소울’ 상을 수상했다. 추다혜차지스의 행보가 실험에서 끝나지 않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어떻게 설득력을 가졌는지 의문이다.(웃음) 우리야 우리가 만들었으니 자신있고 재미있다고 느끼지만 듣는 사람이 어떨지는 상상이 안됐다. 하나 예상했던 게 있다면 진짜 새롭게 느낄 거라는 거. 그 누구도 무가를 밴드와 결합시켰던 적은 없었고, 해외에도 찾아볼 수 없으니까. 우리도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선 사례가 없어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에 대중이 이 앨범을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는 아예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단과 리스너들의 감상을 듣는 것이 늘 재미있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곡임에도 ‘알앤비&소울’ 장르로 분류되어 수상했다. 무속음악에 대한 내 첫인상은 펑키하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이 앨범의 음악적 장르를 단순히 ‘펑크’라고 규정할 순 없지만 신나고 역동적인 무드가 전달되길 바랐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로 규정했는데 사실상 레게, 덥, 락, 댄스, 힙합이 다 들어와 있는 얼터너티브 장르이긴 하다. 다만 퓨전 국악이라는 표현만큼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퓨전’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지만 애매한 선상의 것을 모조리 퓨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어버리는 경향이 있어 그 점이 늘 아쉽다. 각자가 자기 음악을 제대로 명명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제 3의 음악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추다혜차지스 추다혜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의 제작을 직접 맡았다. 기획사 없이 앨범 작업을 진행한 이유가 있나? 나름의 패기라고 할까.(웃음) 진정한 홀로 서기를 하려면 처음부터 내가 다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추다혜차지스 전의 솔로 앨범도 나 혼자 제작했다. 이 앨범을 온전히 내 창작물로 만들고, 제작이 진행되는 전 과정을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준비하면서 힘들어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다음 앨범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사실 우리 앨범에 대형 기획사가 붙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음악과 방향성이 아예 다르니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에는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 지역의 굿이 순서대로 세 곡씩 배치되어 있다. 이 지역의 굿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편에 속한다고 들었다. 서울이나 동해 지역의 굿은 유명한 편이다. 동해안 별신굿, 진도 씻김 굿 같은 것들. 평안도 굿은 많이 사라지고 있고, 황해도 굿은 이어가는 무당은 많지만 배우는 이들이 적다. 제주도 굿은 완전 어나더 레벨. 일단 언어가 아예 다르고 굉장히 원초적이다. 남들이 많이 한 건 나에게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희소성 있는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의 굿을 순서대로 프로듀싱 했다. 자세히 보면 앨범 자체가 하나의 굿 형식을 따르고 있다. 신을 청하고, 부정을 씻고, 명복을 빌어주는 흐름. 노래도 이를 고려한 순서로 넣었다.

시간이 지나 관객들 앞에서 마음껏 공연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면,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의 곡들로 어떤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은가? 진짜 당산나무 아래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 6~7백년 된 큰 나무 아래서. 정식 공연장이 아니라 과거 진짜 굿판이 벌어졌을 법한 공간에 밴드가 들어와서 공연하면 이질감도 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 떡도 돌리고 막걸리도 한 잔 하고 사람들은 반쯤 취해 있는 상황. 그게 진짜 굿판 아닐까?

지금 추다혜라는 사람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을 한다는 건 끊임없이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래서 질리지 않는다. 그게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 아닐까? 뚜렷한 목표나 대의가 있진 않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삶 안에 자연스럽게 음악이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귀감이 되는 여성 뮤지션이 있나?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딱 한 명 있다. ‘오로라’(Aurora)라는 노르웨이의 뮤지션인데 요정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SNS에서 우연히 그가 노들섬에서 내한 공연을 한다는 피드를 봤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유튜브에 검색을 해봤는데 노래가 너무 좋더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처음 본 그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나는 콘서트를 가본 적이 거의 없는데 처음으로 직접 티켓을 예매해서 오로라의 내한 공연을 보러 갔다. 요즘도 그의 영상을 종종 찾아보고 영감을 얻는다.

힐링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아티스트를 동경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나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 누군가의 삶을 치유해 줄 수 있길 바란다. 그게 진짜 교감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장르의 구분이나 배우, 소리꾼과 같은 타이틀은 무의미하다. 나는 그저 적재적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과 퍼포밍을 통해 사람들과 꾸준히 교감해 나가고 싶다.

남은 2021년에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 올해 12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공연을 올린다. 보이스 퍼포밍과 바디 퍼커션을 결합시킨 새로운 장르에 민요를 더한 공연인데 열심히 준비중이다. 추다혜차지스의 앨범 작업도 예정되어 있고. 지난 3월, 두산 아트센터의 아티스트로 선정됐는데 그 안에서도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언급한 것만 해내기에도 빠듯하지 않을까? 더 먼 미래는 볼 수 없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