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이  시집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물처럼 투명히 빛나는 날들이
지속되지 않아도
유리 같은 이 눈 속에
발이 들어맞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고

강지이 시 ‘설국(雪國)’ 중

 

강지이  시집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미지근하고 다정한 말은 힘이 세다. 강지이의 시에는 행간마다 온기가, 희망이 있다. “어떻게든,/아무쪼록/잘 살자”(<VOID>),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또 있었더라도/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다”(시인의 말)는 그의 응원과 다독임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부끄러움과 낙담으로 가득한 하루의 끝에 강지이의 시를 자주 펼쳐보게 될 것 같다.

 

강지이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출판사 제공)

어떤 시간 혹은 공간에 서린 존재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여름’이나 ‘물’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첫 시집을 엮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어떤 공간을 스쳐가는 찰나의 분위기 같은 것에 많은 영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록 언제나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최대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내에서 표현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문장 사이의 여백을 최대한 살려 어떤 공간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그 여백에서 헤엄치거나 잠시라도 머무를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이번시집에서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VOID’와 ‘캠핑 일기’입니다. 이 두 편의 시를 쓰고 난 후 거의 처음으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한에서, 표현하고 쓰고 싶은 것들을 전부 쓴 것 같다!라는 충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때 당시에 좀 지쳐 있었는데 위 두 편의 시로 인해, 시 쓰기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다시 경험해서 기뻤습니다.

‘시인의 말’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고, 또 있었더라도 우린 앞으로 잘 달릴 수 있다. 그런 믿음은 이상하게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읽고 시인의 미래가 궁금해졌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나 삶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좀 더 사려 깊은 시를 쓸 수 있는, 좋은 생활인이 되는 것이 제 평생의 장래희망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다연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바람에 흩날리는 제각각인 우리의 빛깔을 그림자와 그림자로 이으며, 킁킁 가끔 뒤돌아 서로를 확인하면서
모르는 길 밖으로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가볍게 가볍게 땅에 그어진 선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으며
이 걷기를 계속하자

정다연 시 ‘우리 걷기를 포기하진 말자’ 중

 

 

정다연  시집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정다연 시인은 시집 제목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처럼 끝내 사랑해보려는 사람 같다. 사랑과 이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의 문장들로 시집의 면면이 채워져 있다. 시집을 다 읽고 난 뒤 시인의 말을 다시 읽었다. “언제까지고 자랄 수 있을 것 같다/수많은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그만큼의 눈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새삼 다시 읽힌다. 자신에게 보내는 주문 같은 말이 시집을 읽는 이에게도 힘을 전한다.

 

정다연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출판사 제공)

시‘익스트림클로즈업’의 구절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를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되었을까요?
쓸때만 해도 이 구절이 시의 제목이 될지는 몰랐어요. 수십 번 읽어보고 수정하면서 나름대로 제목을 상상해보기도 했는데, 그때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거든요. 이 제목은 편집자 선생님께서 추천해준 제목 중 하나였습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이거다! 했는데, 놀라웠어요. 시를 쓴 저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조각을 타인이 건네주는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시집이 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어요. 서로에게 기대서 미지의 곳으로 끝까지 걸어가보는 일, 타인이 건네주는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립된 자아를 허물어 개방하는 일이요.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제목을 누군가가 열어준 것처럼, 이 시집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시집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초판 한정 커버에 실린 문구 “불현듯 건너편의 사람은 당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도 시의 일부(‘천사가 지나가는 동안’)인데, 이 구절이 탄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혼자만의 생각에 깊이 잠겨 있는데. 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골몰하는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건너편의 누군가가 바라보고, 발견해주는 장면을 생각하며 썼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시집 제목의 맥락과 묘하게 겹쳐지는 듯합니다. 나로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타인이 발견해주는 그 순간 또다른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귀한 순간이 있을까 싶고, 이 시집을 펼친 분들에게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말이어서 정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의말’에서 “언제까지고 자랄 수 있을 것 같다/수많은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그만큼의 눈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구절을 읽고 시인의 미래가 궁금해졌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나 삶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시인의 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이 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해요. 제가 누군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저를 스쳐간 무수한 타인들이 제게 보내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혼자 서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많은 존재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것을 잊지 않고 세상과 접해있는 내면의 눈을 하나씩 떠가는 것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제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더 많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 지면에서 저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쓴 적이 있어요. 세상에 대한 상상력,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포함해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은 상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달리는 사람에게 땅이 확장되듯이 먼 곳까지 가보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자료 제공: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