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점령당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선언한 이후, 주요 도시를 장악하며 조여오다 수도 카불(Kabul)에 진입한 무장 세력에게 끝내 국가의 정권이 넘어갔다. 여성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인권은 바닥에 떨어졌고, 경제와 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며, 시위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다.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상황을 살펴보던 중, 푸른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한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얼굴을 발견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를 장식한 이 사진으로 유명한 매그넘 포토스 소속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Steve McCurry)는 로버트 카파 골드 메달과 월드 프레스 포토 콘테스트 수상 등 다수의 상을 거머쥐며 사진계의 거장으로 오랜 기간 주목받고 있다. 이에 아프가니스탄의 면면을 생생하게 담은 그의 사진을 <마리끌레르> 코리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사진가 측의 공식 이메일을 통해 전했다. 하루 만에 온 회신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스티브는 이 제안에 기꺼이 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1979년부터 수십 년간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 그곳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처음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필라델피아의 한 신문사에서 근무하다가 1978년에 프리랜서 신분으로 취재차 인도에 갔다. 약 1년 6개월 동안 인도와 네팔 전역을 돌아다니며 잡지에 실을 사진을 촬영했다. 1979년 봄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을 탐험해보고 싶어 파키스탄 서부의 산악 지대를 여행했다. 치트랄(Chitral)이라는 도시의 작은 호텔에 머무를 때,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누리스탄(Nuristan)에서 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군인들이 고향 마을을 송두리째 파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내게 현지의 참담한 상황을 촬영해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전쟁 중인 지역을 촬영한 경험이 없었지만, 며칠 후 그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가 약 3주간 카메라에 그곳의 참상을 담았다.
카메라를 든 이유는 무엇이었나? 전쟁의 끔찍한 상황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마주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어땠나? 많은 마을이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을 상세하게 알려줄 주민들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로는 모두 봉쇄되거나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길이 닦이지 않은 땅을 가로질러 걸어야 했다. 그러면서 현지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를 고스란히 접할 수 있었다.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 최소한으로 집약된 단순한 생활 방식에 마음이 이끌렸다.
아프가니스탄을 돌아보는 동안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카불 거리에서 인물을 촬영하던 사진가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는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던 소규모 사진가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낡은 상자형 카메라로 전쟁터에 나가는 가장이나 막 성인이 된 청년들을 촬영했다. 외벽에 붙여둔 커다란 색지들이 이들의 스튜디오였다.
아프가니스탄을 촬영할 때 무엇을 유의했나?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르며 사진을 촬영하기로 마음 먹은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경찰도, 병원도, 안전을 위한 그 어떤 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무서웠다. 그때 좋은 사진가는 무엇보다 먼저 생존 본능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이 있나? 아프가니스탄 중부에 자리한 도시 바미안(Bamyan) 서쪽에 반데아미르(Band-e Amir)라는 호수가 있다. 청록색부터 짙은 남색까지, 다채로운 색을 띠는 잔잔한 호수의 수면에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완벽하게 반사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 호수의 물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아프가니스탄을 수없이 방문한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 난 아프가니스탄의 다양한 정세를 경험했다. 군대가 나라를 점령한 때도,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때도 있었다. 또 내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할 때마다 국가의 핵심 권력이 바뀌어 있었다. 군벌, 범죄 집단, 물라(mullah, 이슬람교 율법학자) 등 여러 세력들이 돌아가며 권력을 잡았는데, 이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현지의 정세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누구든 따뜻하게 맞아주는 환대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아프가니스탄에 가면 마치 집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수년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알아가는 기회와 특권을 누린 만큼, 아프가니스탄은 내 마음속에 특별한 나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을 비교할 때, 비슷한 점과 달라진 점은 각각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심장과 같은 마을들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중부에 사는 사람들은 수백 년간 이어온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와 문화는 지금 아주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외부 세력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국가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어떤 감정이 들었나? 절망스러웠다. 현지 교육과 의료에 큰 도움을 주었던 수조 달러의 재원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헛되이 사라졌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 특히 꿈을 가진 젊은이들의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간다면 무엇을 촬영하고 싶은가? 카불 거리를 걸어 다니며 현재 상황을 그대로 사진에 담을 것이다. 그곳의 모든 변화를 포착하고, 현지 학교의 분위기도 살피고 싶다.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직접 촬영한 아프가니스탄의 사진을 올리며 현재 상황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느끼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세상에 알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친구들이 처한 현실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어 무척 괴롭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이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 세계 원조 기구들과 각국 정부가 탈레반을 압박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국민이 인권을 보장받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아프가니스탄을 담은 당신의 사진을 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사진을 보며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를, 그리고 단순한 투쟁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참 모습을 발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