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는 오전에는 엘이 먹을 음식들을 구매, 요리하고 집 안을 청소했고, 오후에는 엘이 작성한 연구서를
전달하고 연구 업무를 돕기 위한 공부를 한다.
엘바는 엘시와 얼굴이 같았고, 체격도 동일했고,
엘시와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디자인은 몹시 마음에 듭니다.
완전히 같은 것으로 디자인해주세요.
다만 저번처럼 접촉 불량이 없도록 재질을 업그레이드하겠습니다.
지시 사항을 위반하지 않도록 수행력을 강화하고 비판적 사고는 삭제할게요.
가끔 귀찮을 때가 있었어요. 엘바는 그렇게 엘시를 대신했다. 대체하고, 넘어섰다.”
최정화, <성장과 개발은 엘이 꾸는 꿈> 중에서
<성장과 개발은 엘이 꾸는 꿈>은 마리포사라는 가상의 전염병이 지구를 휩쓰는 근미래의 이야기다. 인간은 집 안에 들어앉아 가상현실을 즐기고, 대체봇들이 인간의 업무를 대신한다. 인간들이 겪는 불운도 로봇의 몫이다. 로봇은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에 걸리고, 신경증에 걸려서 정신 상담을 받고, 지나친 노동과 긴장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로봇이 업무를 잘 수행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 업그레이드된 로봇을 꿈꾼다. 부식되지 않는 신개발 물질로 만든 완벽한 로봇이 탄생했을 때 더 이상 교체하거나 업그레이드된 로봇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찜찜하게 여길 뿐이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로봇을 새로 바꾸기 원한다는 사실이 논리적으로는 이상하게 들리지만, 당장 휴대폰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업그레이드에 대한 무분별한 욕심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잠시 수신 정지를 신청했는데, 집 안 어딘가에 두고 찾지 못했다고 이유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휴대폰 회사에서는 새것을 주겠다고 권했다. 괜찮다고 사양했더니 공짜로 새것을 제공하겠다고 한 번 더 권하기까지 했다.
빠르면 10년 이내에 1인 1로봇이 일상화된다고 한다. 모두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현재를 생각하면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를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았더라도 더 세련된 디자인, 고품질의 사양이라면 멀쩡한 물건을 두고 새로 구입하는 것이 현대의 소비문화다. 로봇이라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존 로봇을 버리고 더 나은 새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할 것이다.
소설 속에서 버려진 로봇들은 폐기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땅이 부족해서 폐기되지도 못한 채 그들은 그저 서서 기다리고만 있다. 그들의 걱정은 버려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사히 폐기될 수 있을지 여부다. 간혹 재활용품 선별장으로 보내져 홈 트레이닝 기구로 재탄생하는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니까.
이 이야기가 과장이 심한 것 같은가? 집에 있는 가전제품을 떠올려보자. 정말 더 쓸 수 없어서 버리고 새로 샀는지, 새로운 제품이 더 디자인이 고급스럽고 기능이 편리해서 더 쓸 수 있는데도 폐기했는지 생각해보라.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 휴대폰처럼 친근한 존재가 될 로봇이라고 예외일까?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지구의 땅과 바다와 하늘을 오염시켰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바다를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삼킨 고래의 죽음에 대해서, 콧구멍에 빨대가 끼어 숨을 쉬지 못하는 거북에 대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에도 버려졌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우주도 쓰레기로 포화 상태다.
2002년 9월 3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발견한 우주 물체 ‘J002E2’는 지구의 위성일지도 모른다는 관심을 받았다가 1969년에 발사된 아폴로 12호를 실은 새턴 V 로켓에서 분리된 3단 연료통의 잔해로 판명되었다. 지구 주위를 50일 주기로 돌고 있는 10~50미터 크기의 물체는 쓰레기였다. 2009년에는 운용 중인 이리듐 33호와 쓰레기로 떠돌던 코스모스 2251호가 충돌했다. 초속 11.7킬로미터로 충돌해 2천4백여 개의 파편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그중 1천4백여 개의 파편이 아직 지구 궤도에 남아 있다. 2019년에 소행성으로 오인되었던 ‘A10bMLz’는 ‘빈 쓰레기봉투 물체(Empty Trash Bag Objects, ETBO)’로 밝혀졌다. 움직임이 무작위적인 물체가 추적되었는데 분석한 결과 로켓의 잔해인 금속포로 판명되었다. 질량은 1킬로그램이 안 되지만 펼쳤을 때 길이는 수 미터에 달해 비닐봉투를 연상하게 하는 이 물체는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우주를 떠돌고 있다.
우주 쓰레기의 원인은 인공위성의 폭발, 우주선 표면의 페인트 부스러기, 고체 로켓 상단의 배기가스, 원자로의 냉각수 누출 등으로 다양하다. 1978년에 3천8백여 개로 예측했던 우주 쓰레기 수는 2021년에 2만4천여 개로 6배 넘게 증가했다. 이 증가량에 따라 폭발이나 충돌로 생긴 파편들끼리 충돌하는 비율도 늘어났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최은정 우주위험연구실장은 우주 환경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재난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초기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지만 우주 환경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지금 확인된 우주 쓰레기의 양은 9천 톤이다. 지름이 10센티미터 이상인 우주 쓰레기는 3만4천여 개, 1~10센티미터 크기인 것은 90만 개고,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파편은 셀 수 없이 많다. 이 파편들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파편들이 궤도를 비행하고 있다는 것은 궤도에 안착할 수 있는 속도인 초속 7.5킬로미터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총알의 7배나 되는 무시무시한 속도다. 파괴력은 수류탄이 폭발할 때와 같다고 하니 쓰레기가 아니라 살상 무기가 궤도를 돌고 있는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아니었다.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는 1978년에 이미 우주 쓰레기의 충돌 위험을 경고했다. 인공 우주 물체 간 충돌로 생긴 파편들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 거라고, 파편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수명이 다한 로켓과 인공위성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우주물리학자 휴 루이스 박사에 따르면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지금의 2배로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열권의 대기량이 80퍼센트나 줄고, 대기권에서 불타지 못한 우주 쓰레기들의 수명이 40년 더 증가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지구를 궤도로 도는 우주 쓰레기의 양이 50배나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그 심각성을 경고했다.
우주 쓰레기가 우주를 떠돌지 않고 지구로 낙하할 때도 위험은 뒤따른다. 지난 50년간 지구로 떨어진 우주 쓰레기의 양은 5천4백 톤에 달했다. 2005년에 2백15회, 2014년 6백78회, 2020년에는 4백5회로 낙하 횟수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1969년 발사한 아폴로 12호의 잔해는 2009년에 영국의 가정집 지붕을 뚫고 들어갔다. 2011년에는 독일의 위성 로사트 일부가 베이징을 강타할 뻔했다. 2013년에는 유럽우주국(ESA)의 인공위성 고체(GOCE)가 추락 20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바다로 경로를 비켜가 참사를 면했지만, 우주를 떠돌던 우주 쓰레기의 잔해가 내 집에 떨어질지도 모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구 저궤도에 위성을 쏘아 올려 거대한 위성 네트워크를 만드는 메가콘스텔레이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으로 지난 60여 년 동안 쏘아 올린 인공위성보다 더 많은 위성이 앞으로 10년 이내에 지구 궤도에 배치될 거라고 한다. 저궤도 위성의 수명은 길어야 10년이다. 수명이 다한 위성은 쓰레기가 되어 우주에 방치된다.
앞으로 10년간 최대 10만 개의 새 인공위성을 더 쏘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저궤도 있는 인공위성의 개수는 모두 2천 개로, 지금의 50배가 넘는 양의 인공위성이 더 생긴다는 뜻이다. 우주 공간의 인공위성 개수는 이미 별의 개수를 넘어섰다. 이태형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관장은 우주 쓰레기가 우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운석의 수를 훨씬 능가한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무게가 사람의 무게를 넘어선 지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주 쓰레기 문제가 우리 자신과 무관한 먼 우주의 이야기일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이나 휴대폰을 이용해 언제든지 시간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편리성이 이 우주 쓰레기들을 낳았다.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지진과 같은 재난을 예측하기 위해 항법위성이라는 인공위성을 이용한다. 1978년 최초의 항법위성인 내브스타(NAVSTAR) GPS가 발사된 이후 지금까지 총 73개가 발사되었고, 이 중 32대가 아직 임무를 수행 중이다. 나머지 41대는 쓰레기가 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