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탈리아의 명문 가문인 구찌 가문에서 벌어진 일을 그리죠. 당신이 연기한 파트리치아는 구찌 가문의 마우리찌오를 사랑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요. 이 영화는 두 사람이 만나 마우리찌오(아담 드라이버 분)가 죽기까지 벌어진 사건을 담았습니다. 구찌 가문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 파트리치아가 사업에 어떻게 개입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복잡해지는 상황과 마우리찌오의 변심, 그리고 파트리치아의 아픔에 대해 얘기하죠. 그러면서 통제력을 상실한 여성과 차별적인 계급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을 보여줍니다. 파트리치아는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죠. 늘 아웃사이더였고 인정받지 못했어요. 권력이 집착하는 구찌 일가와 ‘구찌’를 두고 싸우느라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요? 우선 인물이 가진 배경을 찾아 봤어요. 이탈리아 북부의 억양을 6개월간 익힌 후 3개월 반 동안 촬영했습니다. 파트리치아에 대한 자료 중 객관적인 것을 추려 읽었어요. 그리고 짧게나마 이탈리아에서 살아봤습니다. 늘 마스크를 쓴 덕에 사람들이 절 알아보지 못했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 파트리치아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누구보다 파트리치아를 깊게 알게 되었을 것 같아요.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지 궁금해요. 어떤 영화에서는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여성 캐릭터에 불순한 욕망과 저의, 성적인 매력을 담곤하죠. 하지만 파트리치아는 그저 자신이 중요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마우리찌오의 아버지와 삼촌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길 바랐고, 사촌보다 더 큰 권력을 갖길 원했어요.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했죠. 구찌를 더 부흥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녔지만 구찌 가문의 사람들에게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찌오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이 가족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달아요. 단, 사업적인 측면에서요. 마우리찌오의 신뢰하는 친구이자 조언가가 되죠. 매우 강인한 사람이지만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성은 한계에 부딪혀요. 그리고 그런 한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죠. <하우스 오브 구찌>는 범죄와 가족, 그리고 이탈리아 인의 사업에 대한 영화에요. 권력의 이양, 권력의 균형이 지닌 본성이 가족을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보여줍니다.
이 인물을 통해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무너진 여성의 슬픔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가장 사랑하는 남편 조차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슬픔. 전 파트리치아를 사랑합니다. 연기하기 위해 사랑해야만 했고요. 파트리치아를 만나 큰 상처를 입은 인간은 다른 인간에서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자신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의상 역시 중요한 요소일 텐데요. 잔티 예이츠 의상 감독은 천재적이에요. 빈티지 의상을 비롯해 구찌가 소장한 의상, 제 개인 의상, 그리고 이번 영화를 위해 제작한 옷까지 준비했죠. 파트리치아를 완벽히 재현해냈어요. 파트리치아의 헤어 스타일과 메이크업도 그대로 재현해냈어요. 하지만 파트리치아를 바라볼 때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의상은 임신했을 때 알도와 스튜디오 54에서 춤출 때 입은 홀터넷 드레스예요. 마우리찌오와 도미니코에게 무역전쟁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입은 핑크 재킷도 좋아합니다.
마우리찌오를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와의 호흡도 궁금합니다.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에 접근하는 방식이 독보적이에요. 감성적이면서 지적이고 동시에 본능적이죠.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고마웠어요. 늘 캐릭터 안에 살면서도 저를 위한 공간을 남겨줬죠. 파올로를 연기한 자레드 레토와 함께 한 시간도 좋았어요. 매우 헌신적으로 연기하는 배우에요. 그는 분장을 위해 매일 새벽 4시 반까지 촬영장에 와야 했어요. 하지만 촬영장의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배우였죠.
리들리 스콧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너무 영광이었죠. 리들리 스콧 감독은 건축가 같은 연출자에요. 영화에 대한 접근방식이 마치 화가 같죠. 한 편으로는 수학자 같기도 해서 카메라 워킹이 기하학적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각본에 담긴 감정, 배우와 함께 일하는 법, 배우들이 하고자 하는 말, 배우들이 전달하는 이야기를 잘 이해해 주셨어요. 준비도 굉장히 철저히 하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즉흥적인 일을 벌이지 않으세요. 감독님과 함께 한 촬영 현장은 인간적이고 유쾌했습니다. 무엇보다 각본이 훌륭했고요. <하우스 오브 구찌>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마치 다양한 악기 같았어요. 감독님이 개성이 뚜렷한 배우들을 지휘해서 하나의 심포니로 만들어갔죠.
이 영화를 본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요? 이 영화는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해요. 지금까지 이런 방식의 이탈리아 가족과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는 없었어요. 유머러스함도 담겨 있죠. 팬데믹을 지나 온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그 안에 담긴 웃음과 눈물, 파멸과 환희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매순간 재미있고 또한 격정적인 영화에요. 블록 버스터이자 예술 영화에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법이자 영화를 향한 사랑이 펼쳐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