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에 목마르고 욕망으로 가득 찬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은 절박한 상황에서 유랑극단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토니 콜렛)’를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기술을 터득한다. 수려한 외모, 현란한 화술, 마음을 현혹시키는 능력으로 뉴욕 상류층 상대로 부를 손에 쥐게 된 ‘스탠턴’. 채워지지 않는 그의 위험한 욕망을 꿰뚫어 본 심리학자 ‘릴리스(케이트 블란쳇)’ 박사는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거물을 그에게 소개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이트메어 앨리>는 1947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타이론 파워가 주연을 맡은 <나이트메어 앨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는가?
나는 타이론 파워가 <나이트메어 앨리>(1947)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영화 제작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규제였던 헤이스 규약 안에서 이 영화를 만드는 일이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연출한 <나이트메어 앨리>에는 책에 담긴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 같은 인간의 깊은 심리를 좀더 살리고 싶었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누아르 장르다. 누아르만의 클리셰를 피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한 킴 모건에게 클래식 누아르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에게 누아르는 블라인드와 선풍기, 중절모, 섹소폰 등이 등장하는 장르다. 나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누아르는 본래 공포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장르이며 몰락과 비극을 기록하기도 하며 거침이 없다. 운명의 힘이나 신의 의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고 인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이야기가 결정된다. 캐릭터의 운명이 각자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반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자신이 운명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운명에 끌려가는 남자에 대한 영화다.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이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그를 앞서 간다.
당신의 작품에는 보통 진짜 ‘괴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괴물의 모습을 했다고 해서 진짜 괴물은 아니다. 이번 영화에는 진짜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괴물 같은 인간이 등장하는 셈이다.
안티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이번 작품이 처음이다. 주인공 ‘스탠’을 정말 이해하고 싶었기에 더 흥미롭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나는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을 사랑하며 그를 이해한다. 스탠은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만 그는 늘 잘못된 선택만을 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처음엔 흑백으로 찍고 싶어하지 않았나? <나이트메어 앨리>는 어땠나?
흑백 촬영을 고려하진 않았지만 조명은 흑백 느낌을 원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컬러가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실제로 몇몇 컬러는 특정 의미가 부여되었다. 이를 테면 카니발 장면은 빨간색이고 ‘스탠턴’이 도시로 가면서 빨간 색을 버리지만 ‘몰리(루니 마라)’는 계속 빨간색을 유지한다. 반면 도시는 온통 흰색과 검정색, 금색이다. 그리고 도시의 모든 것은 반짝이도록 만들었다. 반면 카니발에는 톱밥, 낡은 캔버스천, 나무 소재 등이 사용되었다. 이 영화는 컬러로 촬영된 흑백 영화인 셈이다.
영화 속 카니발 장면은 다양한 미술을 실현해볼 수 있는 기회였을 것 같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타마라 대버렐과 촬영감독인 댄 로스츠센과 함께 카니발 세트에 대해 내린 첫 번째 결정은 실물 세트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블루 스크린으로 촬영한 카니발 장면은 죽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촬영장에서 텐트가 바람에 흔들리고 심장박동 같은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을 실제로 담으려면 위험하더라도 실제 세트를 만들어야 했다. 비바람 등의 기후 변화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무척 컸다. 세트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이전에 완성되었지만 이후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 촬영이 중단되었다. 때문에 카니발 세트가 오랫동안 비바람에 노출되었다. 일부는 바람에 날아가버렸다.(웃음) 카니발 세트는 아트 디렉팅이 아주 조금이라도 과하면 카니발이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는 위험 부담도 있었다. 마치 ‘카니발 디자인이 얼마나 기발한지 확인해보세요.’ 같은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었다. 나는 카니발의 현실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진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과거 카니발 디자이너가 사용한 서체와 간판을 세운 방식 등을 찾아보고 그런 요소들로부터 추론하고 재구성했다. ‘그들은 여러분의 과학적인 즐거움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같은 카니발 현수막 문구도 정말 중요했다.
타마라 데버렐의 작업은 워낙 정교해서 카니발의 사소한 곳까지도 디테일을 살려냈다. 정말이지’미친’ 수준이었다. 풍선, 경품, 큐피드 인형까지 모두 진짜였다. 심지어 방수포 귀퉁이의 고정 장치도 가죽과 놋쇠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만들어 시대를 정확히 고증해냈다.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다.
다른 인터뷰에서 상상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을 상상에서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상상력의 한계가 지나치게 넓어져 스스로 자제력을 필요로할 때도 있는가?
나는 항상 카메라를 움직이지만 튀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카메라를 낮은 곳에 둔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다리 틈새로 잘 보려고 노력한다. 결국 편집되긴 했지만 영화에 ‘스탠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버스 안 내부 샷이 있다. 브래들리가 ‘감독님, 제발 카메라를 움직이지 마세요. 전 가만히 앉아있으니까요.’라고 말해 난 마지못해 삼각대를 가져오기도 했다. 삼각대는 내가 절대 포장을 풀지 않는 택배와도 같은데 말이다. 물론 결국엔 언제나처럼 돌리로 찍었지만, 그래도 한 테이크 만큼은 카메라를 가만히 두었다. 두 번째 테이크에서 카메라를 옮기고 말았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웃음) 하지만 나는 카메라에 관해선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를 움직여보며 “저게 뭐지?”, “내가 뭘 보고 있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탐구의 길에 놓인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그를 계속 따라다녀야 할 수밖에 없다. 브래들리 쿠퍼가 새로운 무대에 설 때마다 카메라는 그의 뒤를 따라간다. 그와 함께 새로운 무대를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