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선
회화의 확장과 변주에 관해 꾸준히 모색해온 작가.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벽에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벽과 기둥으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한눈에 담기 힘든 거대한 작품은 회화를 보는 통상적 시선을 와해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이렇게 작가는 회화 안에 머문채 지경을 넓히는 중이다.
거대하다. 회화 작품을 보면서 형태를 먼저 체감하는 일은 드문데, 이번 작품을 보면서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최근 회화가 공간에 놓이는 방식이나 설치로 확장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기반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해갔다. 다수의 회화 작품이 흰 벽의 적당한 위치에 걸린 채 감상을 유도하는데, 그 틀을 지울 만한 초대형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계획의 중심이었다. 그림 자체가 벽이 되어 서있거나, 그림 속 이미지들이 구조를 이루어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모습 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내가 회화라는 매체에 어떻게 접근해 이를 다루고 극복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총 7개의 작품이 나란히, 또는 마주 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작품 배치에 숨겨놓은 의도가 있나? 처음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지나는 길에 파티션처럼 두 어 이미지가 관람객의 동선을 가로지르는 걸 상상했는 데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관람객이 전 시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앞에서든, 뒤에서 든, 가까이 혹은 멀리서, 계속해서 단편적으로 감상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생각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이다. 그리고 이는 ‘두 개의 기둥과 모서리들’과 마주 보도록 배치했고, 이. 작품은 뒷면 ‘두개의 원 기둥’과 짝을 이루고 있다. 또 이를 직각으로 마주 보는 또 다른 그림 벽이 있다. 이렇게 커다란 그림들이 전시장 안에서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기도 하고, 불안전한 대칭을 이루는 상황을 떠올리며 구성했다.
과거 한 전시의 작업 노트에 직접 써둔 글이 떠오르는 설명이다. ‘그림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중략) 그림들은 서로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반영하며 더욱 복잡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때는 한 그림이 그다음 그림의 부분이 되고, 그렇게 계속 반영한다는 맥락에서 쓴 글인데 생각해보면 이번 전시는 이를 설치로 풀어서 해본 것 같다. 6~7년 전에 쓴 글인데, 이게 다시 꺼내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작품 설명 중 ‘전체 이미지를 계획한 후 이를 분할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캔버스를 하나씩 완성해가면서 서로를 이어나간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하나처럼 보이는 작품이 실은 몇 개의 작품이 모인 어떤 공간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까? 아니면 오롯이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봐야 할까? 중의적인 걸 좋아한다. 각각의 캔버스는 하나의 부분이 됐지만, 또 독립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또 다른 걸 그려서 새로운 조합이 될 수도 있다 고 생각한다. 회화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태도 같은 것이 보다 솔직하게 담기는 매체라 생각하는 데,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에는 귀납적인 나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작고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 들을 모아서 결국 전체는 이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편인 데, 그걸 이번 작업에도 반영한 셈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꽉 차 있는 그림을 그려야지’ 하고 마음 먹었을 때, 하나를 스케치하고 이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한 게 아니라 하나씩 그려가면서 이들의 연결과 조합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전시장에서 완성된 결과물을 마주했을 때, 작가로서 어떤 감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작업실 천장이 높지 않아 그릴 때는 포토샵으로 결과를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장에 와서야 내 작품을 처음 본 셈이다. 상상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데,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전시장에 들여놓은 뒤로는 내 손을 떠난 터라 내 것이 아닌 듯한 느낌도 들고, 왠지 부끄럽기도 했다.(웃음)
물리적인 거리에 따라, 시선의 높낮이에 따라 달리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최적의 거리가 있을까? 관람객이 내 그림을 마주했을 때 단번에 파악 하기 어려웠으면 좋겠다. 시야를 벗어날 정도로 크다는 이유로든, 내용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든. 그래서 가만히 서서 몰입하는 게 아니라, 시선도 바꿔보고 몸도 움직이면서 이 화면 속에 담긴 게 무엇인지, 왜 여기 놓여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등을 계속 생각하면서 이를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잘 보이는 자리를 찾기보다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보이는 것 속에서 질문해가길 바란다.
전시장 어디서든 눈에 잘 띄는 데에는 다양한 색의 조합이 한몫한다. 색을 쓰는 패턴이나 방식이 있다면?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형태도 중요시하지만, 색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예전 그림에서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 같은 작업을 많이 했는데, 최근 그 등장인물이 사라지고 도형이 중심이 되면서 색의밝기나 채도가 어떤 분위기를 설명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의 역할과 자리를 대체한 것 같다. 단순하게는 회화 작가의 특권으로 다양한 색을 많이 쓰고 싶은 마음도 있고. (웃음)이런 색 옆에 저런 색을 놓고 조합했을 때 일반적이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다. 조각에서 부조를 만들 듯이 색을 이용해 공간감을 만들 기도 하고 오히려 굉장히 평평하게 두드리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작업하다 보면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색과 그렇지 않은 색이 있을 것 같다. 초록색을 잘 쓴다. 나에게 가장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건 이야기다. 내가 그리면서 어떤 이야기를 찾아가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때 이야기의 배경이 숲이나 들판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어려운 건 빨간색이다. 조절하기 어렵다고 할까. 그런데 이번에는 크기가 커지면서 특정 이미지가 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빨간색을 보색조로 많이 쓰게 됐다.
모든 작업을 수채만으로 완성한다. 이 방식을 선호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꺼낼 때 유화는 맞지 않는 느낌이 드는 반면 수채는 그리고 자 하는 이미지들과 잘 맞는다는 느낌이다. 체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름 같은 미끈거리는 질감을 좋아하지않는다. 나 자체가 수성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웃음) 다만 계속 쓰면서 기법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회화를 확장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어떤 식으로 회화를 받아들이고 작업하는지 궁금하다. 초기에는 ‘회화는 당연히 평면이지’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마주한 평면의 화면에만 신경을 썼다. 캔버스 프레임은 그림을 위해서 존재하고 지지체이고, 그 이후엔 사라져 버리는 유령이라고 해석했던 거다. 그러다 2017년 <모 든 것과 아무것도> 전시를 하면서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 공간이 회화를 전시하기에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고민하다 공간을 구획하는 과정에서 작품 가로 길이를 아예 벽 사이즈로 키우는 시도를 했더니 프레임 자체가 새롭게 보이고, 그게 오브제로 기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그리는 데만 집중했는데, 그 전시 이후 그림이 어떤 공간에 어떻게 놓일지에 영향을 받게 됐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회화 작가라 칭하는 건, 작업 방식이 회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일까? 회화로 설치 작업을 하지만, 회화를 떼어놓고 설치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내게는 회화가 중요하고, 그만이 가진 물성이 중요하다. 이건 의도적으로 만든 기조라기보다 타고난 나의 성향에 가깝다. 작업한지 한 10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다른 걸 해본다고 했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나라는 경계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되게 답답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회화 작업을 통해 내 중심에 있는게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회화 작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회화를 바라보길 바라는지 묻고싶다. 모든 예술 작업이 그러하듯 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람객 역시 작 품을 마주할 때 자유롭길 바란다. 이걸 이해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게 어려운 일이긴 하다. 나 역시 난해한 작품을 봤을 때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고, 그런데도통 알 수 가 없고, 그러면 움츠러 들기도 한다. 별건 아니지만 그럴 땐 뭐든 질문을 던져보라 말하고 싶다. 전시장을 떠나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계속 질문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노혜리
다양한 재료를 조합한 오브제, 신체의 움직임, 언어가 어우러진 퍼포먼스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직조를 탐구해온 노혜리 작가. 그가 <아트스펙트럼 2022>에서 선보인 ‘폴즈(Falls)’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혼자 이민 생활을 하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 여행을 했을 때 국경 지역에 자리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아가지 않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1997년의 금융 위기, 2001년의 9·11 테러, 2017년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임기 시작까지 세 가지 사건을 다룬다. 폭포처럼 맹렬히 하강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작가는 인간이 세워둔 경계를 뛰어넘는 연대의 가치를 발견한다.
먼저 나이아가라 폭포가 ‘폴즈’의 시작점이 된 계기에 대해 묻고 싶다. 어릴 때 아버지가 혼자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시게 되면서 아버지와 10여 년간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이후 2017년에 로스앤젤레스부터 뉴욕까지 미 대륙을 횡단하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에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이때 아버지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는데, 폭포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2017년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해인데, 이때 강력한 이민 규제 정책을 추진하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서 불법 이민자라고 일컫는 이들을 체포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에 대해 생각하며 ‘폴즈’를 작업하게 되었다.
‘폴즈’가 1997년의 금융 위기, 2001년의 9·11 테러, 2017년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임기 시작까지 세 가지 사건을 다룬다고 들었다. 세 가지 사건이 각각 다른 의미로 ‘폴즈’의 의미 안에 내포된다. 작품의 제목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무언가가 하강하는 상황을 뜻하기도 한다. 1997년에 환율이 급락했고 2001 년에 건물이 무너져 내렸으며 2017년에는 트럼프의 임기 시작 이후 미국 내 이민자의 지위가 하락했다. 또 우리 가족이 1998년에 미국으로 다 같이 이민을 갔다가 2002년 초에 아버지만 남겨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폴즈’에서 다룬 사건들이 개인사와 연결되는 지점도 있다. 미술관 한쪽에서 재생되고 있는 ‘폴즈 인터뷰’ 영상을 보면, 8명의 사람들이 세 사건과 연관된 각자의 기억에 대해 말한다. 이 영상을 만들면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8명의 출연자는 어떻게 선정했나? 기준이 명확했다.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태어나 199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 그러다 보니 대부분 1980년대생이고 국적은 한국, 일본, 필리핀, 멕시코 등 다양하다. 출연자들이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로서 느끼는 정서에 비슷한 지점이 있다.
이번 작업에 여러 소재를 쓴 것이 눈에 띈다. 나무, 알루미늄, 도자, 유리, 철, 돌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 평소 작업할 때 어떤 형상을 재현하거나 의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질감, 모양, 색이 만나 이뤄내는 시각적인 물성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폴즈’에는 물이나 종이와 관련한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물이 쏟아져 내리는 형태의 유리, 영어로 미등록 이민자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인 ‘언도큐멘티드(undocumented)’ 에서 연상한 종이, ‘워터폴 부빙가’라는 이름의 나무를 활용하는 식이다.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니 ‘THINGS I PICK UP’이라는 제목으로 모아둔 사진들이 있었다. 일상의 사물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흥미로운 조합의 사물을 발견하면 사진을 많이 찍어둔다. 그게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되기보다는 여러 사진들에서 받은 영감이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듯하다. 머릿속에 데이터처럼 축적 되어 있다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셈이다.
‘폴즈’는 여러 개의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오브제 들의 배치와 전시 공간에 대해서도 고민했을 것 같다. 조각이 아니라 설치 작품이기 때문에 공간 자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눈높이가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도 고려하며 ‘폴즈’를 작업했는데, 미술관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작품을 감상할 때 선과 면 등이 어우러져 있는 일종의 풍경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축약한 지도나 그래프의 이미지 들을 떠올리며 오브제들을 배치했다.
‘폴즈’를 통해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내 작품은 퍼포머가 등장할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물, 신체, 내레이션 중 어느 하나가 두드러지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이루게 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내레이션도 파편화된 단어를 나열하거나 둘 이상의 언어를 섞는 식이다.
퍼포먼스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전체가 온전히 기억에 남지 못한다는 특성 때문이다. 나의 퍼포먼스에는 내가 말하고자 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진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는 퍼포먼스를 통해 한날한시에 미술관으로 모인 관객한테 전해지고, 이후 각 관객의 머릿속에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퍼포먼스가 각자에게 흩어지며 무언가가 닿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폴즈’의 퍼포먼스에 함께 등장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학교를 같이 다닌 동료이자 수년 전 ‘예술 근육 강화 훈련’을 함께한 작가 중 한 명인 엄지은이다. 예술 근육 강화 훈련은 5명의 작가가 아무 준비 없이 한자리에 모인 후 1시간 동안 각자의 퍼포먼스를 구성해 선보이는 것으로, 약 1년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충실한 관객이 되어준 적이 있기에 엄지은 작가를 또 한 명의 퍼포머로 선택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엄지은 작가의 체격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왜 체격이 비슷한 퍼포머가 필요했나? ‘폴즈’의 퍼포먼스에서 엄지은 작가는 1997년에 도산한 기업의 목록, 2001년 9월 11일의 날씨, 2017년에 구금된 미등록 이주자의 통계자료 등 객관적인 수치를 말한다. 퍼포먼스는 그가 담당한 거시사와 나의 개인사 혹은 가족사가 교차하듯이 진행된다. 그래서 서로를 ‘쌍둥이’라고 부르 면서 이번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혼자 하는 퍼포먼스가 아니기에 미술관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현장에서 많은 것을 직접 맞춰나갔다.
퍼포먼스의 동작을 구성할 땐 무엇에 중점을 두는 편인가? 사물과 동작의 상호작용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세부적인 부분은 조형을 구성할 때와 비슷하다. 각 사물의 조합을 생각할 때처럼 동작의 속도나 크기가 일치하거나 대비되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지은 작가가 천천히 걸을 때 난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내가 종이를 접을 때 엄지은 작가는 펼쳐서 글자를 읽는 듯한 동작을 한다.
퍼포먼스를 선보이지 않고 영상으로 촬영해 재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직접 퍼포먼스를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관객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공간이 주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다. 퍼포먼스를 마친 내게 관객들이 다가와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하더라도 공개 여부를 놓고는 항상 고민한다. 앞서 말했듯 퍼포먼스를 이루는 모든 것이 낱낱이 이해되기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 이 영상을 멈추거나 돌려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퍼포먼스 영상을 만들더라도 이번 전시처럼 미술관 한쪽에 틀어놓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예전에는 퍼포먼스와 연관 있는 영상을 따로 제작하거나 내레이션만 오디오로 재생하는 방식을 택한 적도 있다. 퍼포먼스의 기록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폴즈’에서 다룬 이야기처럼,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사건의 중첩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겪는다는 건 사회의 수많은 사람 중에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개인의 경험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경험을 왜 하게 되는지, 사회의 제도나 구조의 영향 때문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한다. ‘폴즈’를 통해 미국 이민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한국에 있는 미등록 이민자들을 떠올렸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혈통을 가진,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기에 이 나라에서 불편 없이 누리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더 나아가 인간은 국적, 인종, 성별, 학벌, 정치적 성향 등에 따라 굉장히 좁은 사회를 이룬다. 인간이 세워 놓은 그 경계로 인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사건의 중첩을 발견하는 건 어떠한 관점을 얻는 것이고, 이는 연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본다.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데 예술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어떤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하거나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데 예술의 효율은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이 지닌 힘이 있다면 ‘주의 깊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 나무의 한 면이 거칠지만 다른 면은 오일이 칠해져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경험은 예술이 줄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을 쌓아가다 보면, 내 주변의 존재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의 뉘앙스가 가진 차이를 보다 잘 알아채게 될 것이다. 존중과 배려를 요하는 이러한 관찰이 기반이 된다면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다.
차재민
철저한 조사와 연구, 사람과의 만남, 사회에 대한 궁금증. 차재민 작가가 작품을 완성해 갈 때 필요한 것들이다. 현실 문제를 첨예하게 바라보며 고민하고, 그 결과를 싱글 채널 비디오 또는 다채널 비디오에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아트스펙트럼 2022>에서 두 작품을 선보인다. 이름 없는 질병을 앓는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네임리스 신드롬(Nameless Syndrome)’, 신세대 퍼포머들이 헌책방에서 벌이는 소동을 담아낸 ‘제자리비행’을 통해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보다 풍요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국내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아트스펙트럼 2022>에 함께한 소감이 어떤가?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전시인 만큼 그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물학적 나이뿐아니라 내 작업이 정말 ‘젊은’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작가에 따라 젊음이라는 수식어를 빨리 소진해버릴 수도, 오래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보다 새롭고 젊은 작업을 해내고 싶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인 ‘네임리스 신드롬’과 ‘제자리 비행’은 싱글 채널 비디오 형식의 작품이다. 영상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학부 때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을 다루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워낙 관심이 많은 편이라 눈에 보이는 것들을 카메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매체 특정적인 영상보다는 ‘무빙 이미지’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무빙 이미지는 현대미술 안에서 생겨나는, 아날로그로부터 뻗어나가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주제 측면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주로 다뤄왔나? 초반엔 노동, 임금, 도시 개발 등 자본주의 일반에 관해 다뤘고 최근엔 돌봄의 영역으로도 넘어갔다.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병간호를 해드렸던 개인사의 영향도 있었다. 상호 취약성이나 상호 연결성에 관심이 있기에 최근 작업들은 자본주의와 돌봄 그리고 신체와 관련이 있다.
‘네임리스 신드롬’도 돌봄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했나? 맞다. 실제로 어머니가 지금의 의학으로는 진단받기 어려운 병을 앓으셨고, 내게도 진단할 수 없는 증상이 있다. 내 주변의 여러 여성들 또한 정신 질환과 우울증을 넘나드는 신체적 증상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진단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들이 주류 의학의 시스템을 겪으면서 어떤 이미지적 경험을 하게 되는가?’가 ‘네임리스 신드롬’의 주제다.
그 이미지적 경험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의학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개인의 신체에 관한 것이지만, 당사자가 직접 읽어낼 수는 없다. 의사만이 그 이미지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병원과 의료시스템은 굉장히 일방적이고, 정립되지 않은 통증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간 사람은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병을 대면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네임리스 신드롬’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 “다섯 챕터로 구성된 내레이션과 검사실의 거울, 유리, 물 등 어딘가에 상으로 맺히는 신체 이미지가 포개지는 에세이 필름이다.” 무언가를 반사하는 물질인 거울, 유리, 물을 통해 검사자와 피검사자가 겹치는 이미지들을 만들었다. 몸이라는 사적 영역이 가시화 될 때 당사자가 객체가 되는 경험을 이미지를 통해서 전달해보고 싶었다.
‘네임리스 신드롬’을 5개의 챕터로 구성한 이유도 궁금하다. 각 챕터가 일종의 카드라고 생각했다. 5장의 카드를 섞어 내가 정한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관객이 내가 정해놓은 순서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진 않는다. 24분에 이르는 작품이 반복 재생되니 두 번째 이상의 챕터가 나올 때부터 보기 시작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내 작업은 관객이 직접 챕터들을 엮으면서 만들어가는 해석을 추구하니, 현실의 이야기와 메타적 비평을 담고 있는 ‘네임리스 신드롬’ 속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살펴보기를 바란다. 챕터를 구성한 또 다른 이유는 대상이 이야기의 전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진단할 수 없는 병을 앓는 여성들의 실태를 보고하는 르포르타주가 아니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어떠한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고, 다섯 챕터를 통해 이야기가 뻗어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내가 ‘네임리스 신드롬’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대상이 맞닥뜨린 상태에 가깝다.
출연자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이번 작업을 위해 내가 직접 인터뷰한 사람들이 출연자로 많이 등장한다. 최근 여성 질병 서사에 관한 출판물이 많은데, 내 작업이 미술로서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돼 여성 우울증을 다루는 책을 쓴 하미나 작가님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작가님이 본인의 트위터에 진단받기 어려운 증상을 가진 인터뷰이를 찾는다는 게시물을 올려주었고, 이걸 보고 꽤 많은 여성이 연락해왔다.
그 인터뷰가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인터뷰 내용이 작업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인터뷰는 내가 작가로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타인의 말을 빌리지 않고 당사자와의 만남을 최우선에 두는 민족지학적 연구 방식을 옹호하는 편이라 인터뷰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인터뷰뿐 아니라 여러 도서도 참고한 듯하다. ‘네임 리스 신드롬’에 자막으로 등장하는 텍스트가 카를로 긴 츠부르그의 <징후들: 실마리 찾기의 뿌리>, 앤 보이어 의 <언다잉>,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등에서 인용했다. 이번 작업을 위해 거의 반년 동안 책만 읽었다. <네임리스 신드롬>에 쓰인 텍스트는 내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인터뷰이의 말이나 책 속 문장을 모은 것이다. 나뭇가지를 쌓은 탑과 같은 글이기에 굳이 문장 간 이음새를 만들려고 애쓰진 않았다.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의 톤이 중요했을 듯하다. 맞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이 내레이션을 맡아주었는데, 그 때문인지 음성에서 독특한 질감이 느껴졌다. 단순한 낭독자가 아닌 그 이상의 역할을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에 그가 직접 등장한다.
‘네임리스 신드롬’을 감상한 후, 이름 없는 병에 관한 이야기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19와 오미크론처럼, 이름이 없던 새로운 존재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소수성을 지닌 것들은 재빠르게 명명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권력은 권한에 더 가까운 의미인데, 권력을 영어로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고 하지 않나. 명명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의학에만 해당하는 문제 가아니며, 문화와도 깊이 얽혀있는 것 같다.
한편 ‘제자리비행’은 ‘3명의 신세대 퍼포머가 벌이는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소동’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을 헌책방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헌책방은 소멸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누군가 읽었던 책들이 모여 있지만, 그 내용은 지식이 되고 껍데기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선택받았지만 버려지거나 남아 있는 상태인 셈이다.
퍼포머들이 좁은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쌓여 있는 책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책탑’은 측면에서 볼 땐 나선형의 높이가 느껴지지만, 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저 평평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 특성이 인류의 업적에 관한 내 생각과 연결된다. 그렇지만 책이 어떠한 상징이 된다기보다는 ‘한 번의 소용돌이를 만든다’는 행위를 발생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자리비행’의 ‘비행’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퍼포머들이 내는 소리도 독특하다. 퍼포머 중 한 명이 내 조카다. 기차 등 자신보다 큰 존재의 소리를 자주 모방하는 그의 모습을 오래 지켜본 것이 ‘제자리비행’의 시작점이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조카와 단둘이 어 딘가에 다녀온 후 그곳의 소리로만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또 한 명의 퍼포머로 함께한 지인도 때마침 내게 ‘언어가 사라진 세계’에 대한 소설 <말과 소리>를 추천했다. 이렇게 자연스레 비언어적 세계에 관심을 갖 게 되었고, 우리가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교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자리비행’ 작업을 했다.
‘제자리비행’의 소개글에 ‘안부 인사’라는 표현이 있다. 팬데믹 이후에 격리와 은둔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격리 기간은 여러 문화에서 비롯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reset)’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을 각자가 다시 태어나는 시간,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시간,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으로 체감한다. 그래서 ‘제자리비행’을 그런 시간에 각자의 곁으로 전하는 일종의 안부 인사라고 소개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 혹은 현실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질문해왔다. 그런데 사회나 현실은 단일한 정의나 지반이 존재하지 않기에 의문을 붙임으로써만 구체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정체도 이와 유사한 것이라고 느낀다. 공고하게 의지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기보다, 해나감으로써 선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동희
김동희 작가의 작업은 공간을 바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간의 형태와 특성, 그 안에 담길 요소들을 조정하고 전복하고 변형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낸 동선과 풍경은 곧 작가의 작품이 된다. ‘리버스 마운틴’을 통해 관람자는 전시장과 전시된 다른 작품의 틈과 곁, 너머에서 색다른 풍경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
공간의 특성을 모티프 삼아 작업을 이어간다. 이번 전시의 시작점에서 리움미술관 그라운드갤러리의 어떤 부분에 주목했는지 묻고 싶다. 전시장의 천장에 해당하는 블랙박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의 건물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건축가의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지점이 재미있었고, 이 부분을 내 작업으로 풀어내고 싶다 생각했다.
‘리버스 마운틴’은 그림이나 영상, 설치 작품처럼 명 확하게 눈에 띄는 형태가 아니라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선 안에서 달리 보이고 경험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상해야 할까? 감상에 대한 개념을 달리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전시장에 와서 작품을 본다’가 아니라 이 작품 속에서 공간적 요소를 달리 경험한다거나, 가벽 같은 전시를 위한 구조물 자체를 달리 보는 방식을 작업으로 삼고 싶었다. 전시를 둘러보며 보이는 것들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는 게 내 작업의 주요한 부분이다.
관객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작업 방식을 이해하고 처음부터 인지하고 보거나 혹은 가장 마지막에 찾아내거나. 아쉽지만 결국은 못보고 가는 관람객도 있을 것같다. 하하.
(웃음) 작가 입장에선 내심 어떤 반응을 기대할까? 당연히 빨리 인지하면 좋겠지만, 바로 보이는 작품이 아 니라서. 시간을 길게 두면서 자주 앉고, 두리번거리면서 전시장의 풍경을 보도록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더 빨리 찾기 어렵지 않나 싶다. 아직은 난간이나 통로만 인식하 고 가는 분이 많은데, 이후에 준비한 단서들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이 인지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단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리움미술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에 들어가면 내 작업을 좀 더 살필 수 있는 영상이 있고, 추가로 정보를 전시할 계획이다. 또 전시를 보고 간 이들이 SNS에 올린 사진들을 모은 피드 역시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를 가상 전시장으로 여긴다. 물리 공간에서 느낀 감상이 관람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들을 검색해보고, 그러다 작가의 이전 작업도 보는 것들이 모두 감상의 방식에 해당한다고 여긴다. 직접 보면서 얻은 정보와 가상의 전시장에서 찾아낸 정보를 통합해 각자의 이해와 해석을 만드는 것이 내 작업을 관람하는 또 하나의 묘미이지 않을까 싶다.
직접 도슨트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설명을 더할 수 있을까? 작품명이 ‘리버스 마운틴’인데 등산할 때 동선이나 산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의 요소들을 중첩시키고 반대로 뒤집어지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그래서 이 산의 관리자가 되어 안내하는 방식이 재미있을 것 같다. 여기서 어디를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 보인다는 식의 설명을 더해보고 싶다.
그럴 때 안내자들이 중간에 꼭 하는 얘기가 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지점이 여기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시간대를 제일 좋아해요.’ 멋진 풍경을 보러 갈 때 날씨 나 시간대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지 않나. 실망할 때도 있고, 굉장히 멋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 전시장에서도 해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블 라인드가 오전 11시 10분부터 20분에 한 번 열리고, 오후 1시 10분에서 20분부터 또 한번 열리면서 자연광이 안쪽으로 들어오는데 나는 그 시간대를 가장 좋아한다. 다만 해의 위치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전시 기간 동안 블라인드가 열리는 시간을 조금씩 조정할 예정이다.
작업 과정에서 공간 못지않게 다른 작가들의 작품 또한 깊은 탐구가 필요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이 전시는 전체를 컨트롤할 수 없는 역할이라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도 다른 작가의 작업을 체크하면서 조율했다. 이 과정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계획 단계에서는 이곳이 공원처럼 보였는데, 다른 작가들의 작업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시 자체가 숲으로 변해 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나는 숲이 있는 산을 체험 하는 것처럼 동선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쪽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한 이전의 전시를 보면 천장이 막힌 경우가 많은데, 일부를 뚫어서 그 부분이 골짜기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지난해 리틀 아트 선재 센터에서 선보인 전시 해설 중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발견했다. ‘이것은 건축의 일부인가? 아니면 이 자체가 작품인가? 혹은 다른 작업의 부속인가?’ 이번 전시에서도 묻고 싶은 질문이다. 모두 해당한다. 나의 작업이 대체로 그러하듯 이번 전시에도 해당되는 대답이다. 의자는 마치 벽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도록 벽과 분리하지 않고 마감했다. 센서 등이 들어 오는 부분은 누구의 섹션인지 모호하게 보일 텐데, 실은 박성준 작가의 작업에 필요한 기계실을 내 작업 삼아서 마치 건물의 일부처럼 조정해서 설계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건축의 일부가 될 수도있고, 다른 작가의 작업에 심하게 들러붙어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게 나의 작업이다.
전시에서 이런 방식을 시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졸업 후 인테리어 쪽 일을 배운 적이 있다. 그 무렵 주변 작가들이 전시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전시하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 배운 기술을 활용해 그런 공간을 전시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공간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형식 자체에 재미를 느끼면서 지금의 작업에 이르게 되었다.
공간에 대한 이해와 다른 시선이 필요한 작업일 것 같다. 새로운 공간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지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먼저 반듯한지를 본다.(웃음)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설계할 때는 반듯한 게 디폴트인데, 그게 실체가 됐을 때는 반듯하지 않은 게 디폴트가 되는 간극이 있다. 나는 그 부분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어떤 부분이 더 좋기 때문에 그걸 만든다기보다 수치나 퍼센트를 조정하는 식이다.
사실 공간을 다루는 사람 중에는 그 부분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 반듯한 것이 반듯하지 않게 흐르는 것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반듯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그럼 이걸 건강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니 오히려 그 차이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울퉁불퉁한 공간에 반듯한 벽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간격으로 띄워서 설계하는 게 좋을 지, 아니면 울퉁불퉁한 채로 괜찮은 방법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관객에게도 그런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전형적이고 반듯하게만 바라보려 하지 않고 간극을 살필 줄 아는 태도 말이다. 내 작업은 어떤 한 포인트라기보다 이 전시장에 씌워진 하나의 겹이라 생각한다. 반투명한 겹.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면 달리 보이는 게 있을 것이다.
김정모
전시장 한 귀퉁이, 단 한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는 ‘시간-예술거래소’. 번호표를 뽑고 관객은 대기시간을 포함해 입장하는데 걸린 총 시간을 기록한 뒤 작가의 안내 문구에 따라 예술 작품을 소유하는 계약서를 쓰게 된다. 하루에 1백명이 참여해 전시가 끝날 때까지 1만7백 명이 작품을 공동 소유하게 되는 거다. 관객의 시간과 작가의 작품이 교환되는 과정을 통과하다 보면 언뜻 미술 시장의 생리를 목격하게 된다.
‘시간-예술 거래소’는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온 관객 참여형 전시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시간이라는 요소를 가져온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관객 참여형 작품은 큰 맥락에서 보면 물리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않나. 전시에 찾아오는 것 자체도 근본적으로 참여 행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시간이라는 요소는 전시에 포함되기 마련이다. 시간을 크게 의식했다기보다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컬렉팅은 특정 소수 계층만 가능한 행위이지 않나. 작품 가격대가 워낙 높게 형성돼 있고, 진입 장벽도 높다. 특정 계층에게만 허용된 작품을 소장하는 행위를 모든 관객이 경험했으면 했다. 미술 작품을 거래하는 수단으로 돈 말고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재화인 시간이 떠올랐다. 거래소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걸린 대기시간을 내 작품의 지분으로 바꾸는 생리를 생각해봤다.
관객 참여형 전시를 구상하고 관객에게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조소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닐 때까 지만 해도 전통적 조소 작업을 했다. 3m, 5m 등 내가 구현하고 싶은 조형적 세계관이 있는데 공간의 제약 때문에 그걸 고수하는 게 힘들었다. 전시장에 보내기 전 작업실에서 작품의 느낌을 보고 싶지만 협소한 공간에서는 불가능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외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생각하게 됐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베를린 전시다. 베를린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처음 관객을 만났다. 이전에는 전시장에 작품을 놓고 관람하는 관객을 멀리서 지켜봤다면 처음으로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거다.
어떤 전시였나? 당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리더가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뭘 할까 하다가 당시 베를린 길거리 풍경을 휴대폰으로 찍고 다녔는데, 유독 쓰레기 더미에 관심이 갔다. 어디선가 미술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도 하고. 지금껏 미술관에서 봤던 조형적인 특징들이 그 쓰레기 더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거다. 왜 미술관에 놓인 어떤 오브제를 보고는 ‘이게 쓰레기인가, 작품인가’ 하며 농담을 하지 않나.(웃음) 지금껏 길에서 찍은 쓰레기 더미 사진을 출력해 관객에게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묻고 그 이유를 적어달라고 했다. 관객들이 굉장히 정성스럽게 의견을 적어주고, 또 관객들끼리 토론을 나누는 걸 보는데 재미있었다. 빼곡히 적어준 글을 보는 순간, 이 작품이 관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관객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했다.
지난해 4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에서 ‘행운 교환소’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특정 조건을 갖춘 관객에게 배지를 주는 등 기념품처럼 무언가를 준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에게 ‘증명서’를 준다. 관객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그 시간에 무언가를 같이한다는 것이 일종의 거래라고 봤다. 전시에 참여한 관객들이 뭔가 하나를 갖고 돌아가기를 바랐고, 또 거래라는 속성을 명확히 가시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워드’가 있으면 확실히 관객 참여도도 높다.(웃음) 관객들이 소장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증명서도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들어보려 했다.
관객을 작품 안으로 초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작가로서의 즐거움도 있을 것같다. 어떤가? 관객을 직접 대면하기보다 구조를 만들고 그 옆에 비켜서서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주된 일이다. 설정한 구도 안에서 관객이 각자 체험하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로 그 반응을 확인하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다양한 의견을 올려주신다.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관객 대부분은 원래 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나는 그분들 의 존재가 작품보다 더 돋보였으면 좋겠다. 오늘 같은 이런 촬영도 나 혼자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있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았을까 싶고.
작가의 작업을 설명하는 글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성이다. 일전에 ‘전시장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다층적 이해관계가 포함된 곳’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장소는 작가의 작업에 있어 관객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마다 지닌 성격과 맥락,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어떤 전시장은 20대 초반 관객이 유독 많이 찾고, 공공 미술관은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찾는다. 작가로서 구상하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전시장이 지닌 특징을 고려하고, 동시에 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앞서 말한 ‘행운 교환소’를 전시한 일민미술관은 20대 초반 관객이 많다.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카드 게임을 생각한 것도 공간의 영향이 크다. 이번 전시를 여는 삼성 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역시 특정 관객층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리움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미술품 컬렉션에도 관심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일전에 ‘어떤 가치가 제도화되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은 어떤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특정 가치보다는 전시를 준비하는 상황 혹은 준비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들에 대해 그때 그때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이번 전시에서는 컬렉팅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이어진 것 같다. 미술도 일종의 제도이지 않나. 교육제도 안에도 미술이라는 카테고리가 있고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미술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는데 어떤 지점에서 미술은 지나치게 신성시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관객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의 일부가 이번 작품에도 녹아 있는 듯하다. 맞다. 요즘 작품 소장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재력 있는 한 개인이 고가의 작품을 구매했다면 최근에는 작품을 분할해 판매한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사람이 공동 구매하는 거다. 가령 한 거장의 1억원짜리 작품을 1백 명의 사람들이 10만원씩 내고 나눠서 구입하는 식이다. 마치 건물을 사듯이. 그렇게 구입한 작품은 갤러리 창고에 보관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판매 수익을 나눠 갖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방식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작품을 구매하고 소장한다는 것의 의미가 이렇게나 달라 질 수 있구나 싶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이는 컬렉팅이 아니지 않나. 대체 불가능 토큰(NFT)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고 있다.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근 두근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안유리
안유리 작가의 영상 ‘스틱스 심포니 (Styx Symphony)’는 히로시마 피폭 피해자이자 반전운동가로 활동한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의 시 ‘히로시마’로 시작한다. 이내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단어를 찾아 서’, 시인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야 안젤루의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고정희 시인의 ‘프라하의 봄 7: 85 년의 C형을 묵상함’, ‘프라하의 봄 8: 오매, 미친년 오네’ 의 낭독으로 막을 내린다. 총 15분 51초. 이미지와 소리는 빠르고 느리게 흐르다 이내 큰 진폭으로 보는 이의 온 감각을 완전히 압도한다.
작품 제목에 쓰인 ‘스틱스(STYX)’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승과 저승 경계에 있는 강을 뜻하고 그 강을 지키는 여신의 이름이라고 작품 도입부에서 설명한다. 일찍이 신화와 전설을 차용해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10년 전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집이라는 건 정착과 안착을 의미하는, 말 그대로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이지 않나. 한데 어릴 때부터 나는 왜인지 발 딛고 있는 자리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여행도 다니고, 유학도 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이런 마음이 나에게만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들어 문학과 영화 등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이동하는 순간 머물 때는인지하지 못하던 경계가 훨씬 더 견고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며 경계로 인한 현상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에는 4명의 여성 시인 글이 등장한다. 모두 20세기의 시대적 폭력을 겪은이들인데 이들을 한데 묶은 경위가 궁금하다. 이 작품은 고정희 시인에게서 출발했다. 청소년기에 비제도권 교육을 받았고, 당시 고정희 시인 10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여성 시인, 여성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됐다. 그때 본격적으로 여자들이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같다.인생의큰 전환점이었다.지난해 고정희 시인 30주기를 맞아 20년 전 함께 추모제를 열었던 친구들과 다시 작업하기 위해 모였는데 이런 주제의식을 지닌 작가가 또 누가 있는지 찾는 과정에서 위 여성시인들이 묶였고 이내 ‘스틱스 심포니’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일전에 허수경 시인과 작업(‘항해하는 말들; 시인과의 대화, 허수경’)을 하기도 했는데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가진 어떤 면에서 접점을 느꼈는가? 교과서에서 소개하는 여성 시인이라 하면 규방시 혹은 서정시 정도로만 분류되지 않나.한데 처음 고정희 시인의 시를 읽고 그때까지 교육받은 여성 시인의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강력한 힘을 느꼈다. 언어 자체도 강인했지만 당시 키워드였던 민족과 민중, 여성, 노동 등의 사회문제에 대 해 치열하게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순 시인이나 최승자 시인의 시는 또 어떤가. 교과서에 나오는 여성시인의 시와 실존하는 여성시인들의 시가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는 내게 중요한 영감이자 시작점이되었다. 유독 여성시인과 그 작품들과 더 단단히 연결되었던 것 같다.
네 작가의 작품 중 최종적으로 특정 작품을 결정한 각각의 이유도 있을 것 같다. 20세기는 많은 것이 폭발 한 시기다. 전복적인 사건도 많았고. 아직도 풀리지 않거나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사건도 많다. 고정희 시인이 1980년대에 68혁명을 떠올리며 쓴 ‘프라하의 봄’은 곧 그가 겪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겹쳐지지 않나. 이밖에 제2차 세계대전과 히로시마 원폭 투하 등도 있다. 하지만 단지 이 사건들을 전시하는 것으로 그치길 원하지 않았다. 사건들을 통해 개인이 사건을 겪고, 살아내고, 어떻게 기록을 남겼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맥락에서 위 작품들을 선택했다.
안유리, ‘스틱스 심포니’, 2022, 2채널 영상 설치, 15분 51초
역사적 비극을 전시하는 것 그 너머를 생각했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건 지금,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낭송한 이가 전시 개막일에 전시장에 친구를 데려왔었다. 러시아 태생의 고려인 3세로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이였는데, 그분이 전시를 보고 미술관에서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될지 몰랐다고 했다. 미술과 예술은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같지만, 각자의 위치와 영역에서 우리가 몸담은 이 세계가 무엇인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테나를 세우고 주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는 이번 작품을 통해 투 채널을 사용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념하거나 잘 표현하고자 의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작품은 전체적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혹은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보여주는데 이 두영역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동일한 영상이 나오기도 하고, 한 면은 뒤집어진 채로 플레이되기도 한다. 두 채널의 경우 단채널과 비교할 때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문제이기때문에 보는 환경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도 그렇지만 이번 작업은 유난히 사운드가 크다. 공간에 들어 섰을 때 소리가크게 울려서 몸으로 먼저 감각하기를 바랐다. 두 채널도 그런 맥락에서 준비한 설정이다.
맞다. 특히 사운드 면에서 고정희 시인의 ‘프라하의 봄 8: 오매, 미친년 오네’에서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판소리 같기도 하고. 스포큰 워드(spoken word),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고 부르는데 흑인들이 마이 크와비트, 음악 없이 랩을 하는거다. 그 육성이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앞서 말한 고정희 시인 10주기 추모전에서 스포큰 워드로 작업했었고 이를 새롭게 구성했는데 작곡가에게 의뢰해 소리를 더 입혔다.
안유리 작가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기억의 기록’이다. 충실하고도 창의적인 기록자로 살아가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기록의 방법이 영상 작업인 이유도 궁금하다. 의외로 스스로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는다. 당장 휴대폰만 봐도 문자메시지조차 저장해두지 않는다. 매일매일 다 지운다. 나에 대한, 혹은 나와 관련한 기록은 남기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관심도 별로 없다. 주변에 봐야 할 게 워낙 많지 않나. 기록의 방법으로서 영상과 텍스트, 사운드를 도구로 쓰는 건물성에 관심이 없는 것과 연관되는것 같다. 물성으로 남겨지고, 위치 지어지는 것이 부담스럽다. 집에도 책외에는 물건이 없다. 가구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전화를 하면 왜 이렇게 소리가 울리느냐고 묻는다.(웃음) 쌓아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영상이 매력적인 거다. 미술관의 불이 꺼지면 작품은 사라지지 않나. 이동도 쉽다. 일시적으로 켜고 끄는 것을 반복할 수 있으며 언제고 다시 재생할 수 있다는점이 매력적이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소리가) 지나가고,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다. 그걸 보고 나서 오랜만에 다시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읽게 됐다. 그러다 안톤 체호프가 사할린섬에서 쓴 기록 까지보게 됐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섬에는 원주민이 있었는데 러시아화되고 이후 일본과 조선 사람들이 유입되는 과정을 보면서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이 다시 연상되는 거다.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끔찍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