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스텔라 칼리니나(Stella Kalinina)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모스크바에서 지낸 그는 여름이 오면 우크라이나의 제2의 도시 하르키우(Kharkiv)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지움(Izyum)으로 향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집이 있는 작은 마을. 그 곳에서 보낸 시간은 스텔라와 부계 친척들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져주었다. 2022년 지금, 스텔라는 미국에서 20년 넘게 거주 중이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이지움의 친척 집에는 여전히 이모할머니 ‘라라’와 그의 남편 ‘보바’가 머무르고 있다. 언제나 자신을 반겨주는 가족이있는 그 마을을 스텔라는 ‘고향’이라 부른다. 2010년과 2020년 사이, 그는 이지움을 네 번이나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곳의 모습을 촬영해 ‘나를 기다리는 마을 (Where They Wait For Me)’이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로 엮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지움도 긴장과 공포에 휩싸였다. 친밀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지움의 사진들을 소개하며 스텔라는 현지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평화가 절실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를 기다리는 마을(Where They Wait For Me)’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는 유년의 기억과 가족 그리고 친척집에 관한 일종의 명상록이다. 여름이 되면 이지움으로 향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온 직후, 나는 향수병을 앓을 정도로 그곳을 그리워했다. 2010년부터 이지움을 사진으로 남긴 것은 친척들과 떨어져 다른 국가에서 살아가야 했던 현실과 타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이민으로 인한 상실감을 인정하고, 고향을 추억하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었다.
이지움은 어떤 마을인지 궁금하다. 여러 대도시와 달리 내가 추억하는 이지움과 지금의 이지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마을은 점점 노령화하고 있다.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이모 할머니와 이모 할아버지는 수십 년 전부터 농작물을 직접 키우고, 겨울을 나기 위해 피클과 잼을 만들어 창고에 보관한다.아마 이지움의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에 자리한 지역이라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섞인 수르지크어를 주로 사용한다. 가끔 이 언어를 들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진 작업을 위해 이지움으로 향했을 때, 무엇을 촬영하려고 했나? 나를 추억 속으로 보내줄 수 있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했다. 이지움의 풍경, 소리, 냄새, 맛을 포착한 사진들은 어린 시절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사방이 탁 트여 주변 풍경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언덕이 하나 있다. 그 언덕이 과거에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요충지였다고 한다. 현재 그 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추모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있나? 몇 개의 추모관과 전사자들의 묘지가 곳곳에 있다. 이지움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다면, 주민들의 대화에 녹아 있는 전쟁의 상처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어떤 기분이 드나?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이지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알고 있나? 러시아의 공습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됐고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다. 전기와 가스가 끊긴 채 한겨울을 보낸 생존자들은 공포에 떨고 있고, 대피 공간마저도 위협받고 있다. 얼마 전 이지움에 끔찍한 폭격이 가해졌다. 처참히 파괴된 마을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마주했다. 러시아군이 이지움의 절반을 장악했고, 우크라이나군은 나머지 절반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아마 이 인터뷰가 공개되는 시점에는 또 다른 사건이 터질지도 모른다.
이지움에 있는 당신의 가족은 무사한가? 3월 초에 친척들과 연락이 끊긴 적이 있는데, 일주일 후 그들이 방공호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모할머니를 이웃들이 도와준 것 같다. 내 가족이 친절한 사람들과 안전하게 지내고 있어서 깊이 감사하다.
만약 지금 이지움에 간다면 무엇을 촬영하고 싶나? 희망, 결의, 공동체 의식, 인류애가 느껴지는 사람들의 행동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파괴와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지라도 영감을 찾을 것이다.
당신에게 이지움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지움은 내게 언제나 ‘가족’ 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이 시작된 후 ‘우크라이나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이 내 친척과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에게 큰 연대감을 느낀다.
당신의 사진을 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를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았거나 평생 찾아갈 생각이 없더라도, 내 사진이 당신의 마음에 닿는다면 좋겠다. 전쟁이 무엇을 위태롭게 하는지 아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건 바로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온 힘을 다해 지키려는 땅과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