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우프 곽예인

6명의 여성, 퀴어 멤버로 구성된 사진가 그룹 우프(W/OF.)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낙원>, 2021년 <어느> 두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올해 2월에는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힘쓰는 비영리단체 더블유엔씨(WNC)의 전시에서 연대를 주제로 작품을 공개했다. 자기 내면의 욕망과 내면을 파고드는 수많은 의문들을 사진과 영상, 글로 담아내려고 한다.

 

카메라 뒤에서 누군가를 찍는 역할을 주로 한다면, 오늘은 피사체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섰어요. 어땠나요, 오늘 촬영? 매우 만족스러워요. 작가님이 명장이세요.(웃음)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니 새롭기도 하고 재밌었어요. 

2019 개인전 <낙원> 개최하며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아낸다고 말했어요.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풀어내는 매체로사진이라는 언어를 택한 계기가 있나요제가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받는 피드백이 생각을 천천히 하라는 거거든요. 근데 지금 다니는 현상소 실장님도 같은 말을 하시더라고요.(웃음) 불현듯 떠올랐다 스치듯 지나쳐버리는 상념을 낚아챌 수 있는 도구가 스냅 카메라였던 것 같아요. 내가 감각하는 걸 당장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거죠.

본인과 맞는 매체였던 거네요맞아요. 동시에 가장 익숙했고요. 기억하기로 사진은 열두 살 때부터 제 취미였고, 고등학생 때는 돈을 모아서 DSLR 카메라를 살 정도로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요. 카메라가 가장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매체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 누드 작품인알을 깨고 나와, 싱클레어 비하인드 스토리가 특히 인상 깊어요. 카메라 인물을 주체로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모델과 함께 옷을 벗고 촬영했다고 들었어요20대 초반에 인체 모델로 잠깐 일했어요. 그때 옷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깨달음은 ‘매체 안에서 개인이, 약자가, 소수자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알을 깨고 나와, 싱클레어’는 이런 물음을 품고 있을 무렵 찍은 사진이에요. 그때는 모델에게 카메라가 최대한 가볍게 다가갔으면 해서 그런 액션을 취했는데, 지금의 생각은 또 달라요. 렌즈 앞에 선 사람과 카메라 뒤에 선 사람은 결코 동등해질 수 없는 것 같거든요. 저도 오늘 카메라 앞에 서니까 바로 어색해하잖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작업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나누고 교감한 내용을 최대한 사진에 반영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토피아라는 사진가 팀을 이끌다 현재는 창작 그룹우프 몸담고 있죠. 개인 작업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소수자들로 구성된 단체를 꾸리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이유가 있나요개인은 너무 작고 약한 것 같아요. 아직까지도 사진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여성, 퀴어 사진가의 수가 아주 적어요. 저희 세대 사진가들과 훨씬 이전 세대 사진가들 사이, 그 가운데가 텅 비어 있어요. 가끔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나도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고요. 다들 이런 현실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뭉치는 것 같아요.

 

사진가 우프 곽예인

데님 크롭 톱과 팬츠는 모두 낫노잉(Notknowing), 그린과 실버로 레이어드 된 이어커프와 이어폰 팬던트의 네크리스는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우프는 ‘1990년대생’, ‘여성혹은퀴어라는 공통점을 가진 6명의 창작자로 구성된 그룹입니다. 김보람, 성지윤, 홍지영, 황선미, 황아림, 지금의 멤버들과 함께하게 과정이 궁금해요사실 지금 이 질문을 받고 나서야 저희가 모두 1990년대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웃음) 우프라는 이름을 걸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초부터예요. 원래는 SNS 상으로 건너 건너 알고는 있었어요. 사진이 좋아서 팔로하거나, 친구의 친구로만 아는 정도였죠. 약 3년 전 우연히 어느 사진 비평 클래스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됐어요.

클래스 이후에도 6명이 함께할 있도록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저희는 모두 자기 몸을 둘러싼 욕망과 의문을 갖고 작업해요. 사진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동료를 바라는 갈증도 있고요. 이런 공통점이 저희를 뭉치게 한 것 같아요. 왜 우리의 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는 중이에요. 아마 앞으로 작업을 이어가면서 알게 되겠죠.

지난해 12 우프의 매거진 <슬픈 구멍> 출간했어요.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동시대를 살아가는 퀴어 또는 여성으로서 느끼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슬퍼진다는 말을 자주 해요. 저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고, 오랜 시간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몸과 싸워왔어요. 제가 바이섹슈얼인데 이 사실이 좋지만 동시에 슬플 때도 있고요. 저를 구성하는 많은 것이 저를 슬프게 만들곤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항상 건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갓생’도 살아야 하고, ‘미라클 모닝’도 해야 하고, 정서적으로는 늘 밝아야 하죠. 저희는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만들었어요.

슬픈 구멍 무엇을 의미하나요우프의 멤버 각자 해석이 달라요. 어떤 친구는 구멍을 불법 촬영 카메라에 비유하고, 또 누군가는 여성의 자위에 빗대기도 해요. 흔들리는 눈동자에 비유한 친구도 있고요. 이 책을 접하는 모두가 ‘구멍’에 대해 감각하는 바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거죠.

우프의 행보가 사진업계, 그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나요사진업계는 오랜 시간 남성 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속하는 사진가는 비교적 납작하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고요. 우프의 작업을 그저 청춘 여성, 퀴어 작가의 멜랑콜리 정도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이 썩 달갑지 않아요. 저희는 한 잡지 안에서 각자의 무수한 의문과 욕망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매체를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우프를 시작했어요. 

 

“당신이 아는 원 밖에도 사람이 살고,
당신 역시 어떤 원 밖의
사람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원 안에서만 교집합을 찾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인스타그램을 보면 직접 찍은 사진을 업로드할 그와 어울리는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직접 글귀를 함께 공유하는 좋아하는 같아요. 평소 글을 읽고 쓰며 영감을 얻는 편인가요맞아요. 창작을 하려면 내 세계에 몰두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의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많이 봐야 하는 것 같거든요. 오랜 시간 글쓰기를 놓지 않은 덕인지 올해 상반기에 제가 쓴 책을 출간하게 됐어요. 저 혼자 쓰는 책은 아니고 다른 분들과 공동으로 집필 중이에요. ‘엄살원’이라는 크루의 기획자를 필두로 여러 작업자들이 모여서 준비하고 있어요.

엄살원은 어떤 크루인가요병원에서 병명을 밝혀주지 못해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엄살이라고 의심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엄살원은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크루예요. 매달 게스트를 섭외해 비건 만찬을 차려주고, 밥값은 그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받아요. 안 담이라는 친구가 기획과 편집, 요리를 하고 유리가 공동기획과 섭외, 제가 영상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는 더블유엔씨가 주최하는 전시 <WOMAN: 연대> 작품을 올리기도 했어요‘무대 천천히 어두워집니다’라는 제목의 작업물을 공개했어요. 12점의 사진과 함께 자꾸만 소외당하게 되는, 사람들이 미워하는 여성들과 나눈 인터뷰를 담았어요. 사람은 아주 작은 원 안에서 살고, 그 원을 넘어선 영역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거거든요. 경계를 넘어보지도 않고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표면적으로만 연대한다고 말하지 말고 원 너머의 것을 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아는 원 밖에도 사람이 살고, 당신 역시 어떤 원 밖의 사람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원 안에서만 교집합을 찾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요.

여성이라는 사실이 사진가로서 활동하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제가 만약 여성이, 그리고 퀴어가 아니었다면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저이기 때문에 수도 없이 구겨져야 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지금의 제가 되었어요. 이 흔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이 생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요.(웃음)

 

그레타 거윅 프란시스 하

배우 겸 감독 그레타 거윅, 영화 <프란시스 하> 스틸컷

동경하는 여성 창작자가 있나요아주 많는데, 요즘은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쓴 김민정 시인과 <딕테>의 저자 차학경에게 빠져 있어요. 사진 예술가 신디 셔먼과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도 빠뜨릴 수 없고요. 리사 해니건이라는 싱어송라이터도 좋아해요. 그가 삶을 구축해가는 방식이 좋아요. 데미언 라이스가 리사 해니건을 자신의 뮤즈라고 말하곤 했는데, 거기에서 벗어나 자기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에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재하고자 한 거잖아요. 그런 태도에 매료됐어요. 

앞으로 사진을 통해 시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우선 올해는 저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보고 싶어요. 곽예인이라는 사람을 낱낱이 쪼개어 보고, 거기서 파생되는 조각들을 쫓아갈 것 같아요. 저를 대상으로 다양한 작업을 실험하듯 해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