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가 한창이던 19세기 말 프랑스, 노동계급의 가정에 텃밭이 할당되었다. 텃밭에 대한 법적 소유권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수확한 농산물은 노동자의 몫이었다. 이런 텃밭은 2백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족 정원(Family Gardens)’이라 불리고 있다. 파리와 맞닿은 주 센생드니(Seine-Saint-Denis)의 가족 정원이 특히 유명한데, 비옥한 땅 덕분에 프랑스 최대 규모의 상품 가치를 지니게 되면서 ‘베르튀(Vertus)’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르튀는 ‘미덕’을 뜻한다. 파리와 주변 지역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후, 텃밭의 면적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파리가 2024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수영장 건축이 빠르게 추진되었고, 텃밭을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은 더 크게 분노했다. 텃밭을 지키려는 이들과 도시를 개발하려는 이들 사이의 싸움은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파리의 사진가 알렉상드르 실베르망(Alexandre Silberman)이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보내왔다.
‘미덕의 침해(Infringement of the Virtues)’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센생드니의 텃밭이 큰 위기에 처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이 열릴 수영장의 건축이 시작되었고, 수도의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파리 주변 지역을 통합하는 ‘그레이터 파리(The Greater Paris)’가 조성된다면 2030년쯤에는 센생드니 면적의 70%가 콘크리트로 뒤덮일 전망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알리기 위해 2021년 2월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센생드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직접 마주하며 어떤 생각을 했나? 텃밭을 지키려는 이들과 도시를 개발하려는 이들의 힘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감자와 콩 등을 수확하는 데 익숙한 노동자들이 텃밭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도심을 지나 텃밭에 들어서면, 갈등이 벌어지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텃밭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지켜온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노동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대부분 나이가 꽤 많았고 텃밭을 가꾸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갈등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길 때 무엇에 중점을 두었나? 농업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노년의 농부들과 현대적인 환경을 지향하며 텃밭을 파괴하려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시간의 격차. 농촌과 도시의 상반된 풍경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이 단절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텃밭이 지닌 아름다움과 절망감을 모두 사진에 녹이고 싶었다. 또 사건 자체를 넓은 앵글로 담아내기보다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텃밭의 노동자, 나뭇가지, 과일, 흙을 촬영한 사진이 많다.
텃밭을 보호하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텃밭 주변을 영구적으로 점거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이 발생했고, 경찰까지 개입했다. 다양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을 듯하다. 현재는 갈등이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된 듯하다. 얼마 전, 수개월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텃밭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파리 행정항소법원이 수영장 건축을 즉각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수영장 건축을 빠르게 추진하던 행정기관은 이제 기존 계획을 수정해 다른 부지를 찾아야 한다. 지난해 9월에 텃밭을 점거한 이들을 해산시키며 시간과 자본을 낭비한 것도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4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땅이 텃밭으로 복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과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텃밭의 무분별한 파괴를 중단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다음, 편견 없는 관점으로 자연과 도시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식량, 생명, 아름다운 삶을 선물해줄 수 있는 자연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사진에 담긴 갈등을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부와 공공기관의 결정이 옳다고 여기기 쉬운 이유는 그들에게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텃밭 노동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시 개발을 강행한 이들이 결국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공권력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다가오는 4월 24일,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이 탄생한다. 거대한 세력에 맞서 행동할 수 있는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