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를 강타한 지진이 안긴 슬픔을 언젠가는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며,
사진가 에민 외즈멘(Emin özmen)이 보내온 그날의 장면들.
2023년 2월 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Istanbul). 난 여느 날처럼 오전 7시에 일어나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이의 우유병을 채우며 트위터에 접속했을 때, 이 나라에 자연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지난 새벽 가지안테프(Gaziantep)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피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건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진 관련 뉴스를 보며 지난 10년 동안 튀르키예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떠올렸다. 몇몇 도시에서 발생한 테러, 탄광 폭발 사고, 홍수와 대형 산불 그리고 지진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저주받은 건 아닐까?
난 사진가로서 튀르키예를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향해 인권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 나의 사진 속 사람들은 내가 당시에 걱정한, 지금도 안부가 걱정되는 대상이다. 이와 동시에 나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자연재해로 생명을 위협받았던 이들도 있다. 2011년, 일본을 찾아가 대지진과 쓰나미가 남긴 처참한 피해를 두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다. 인간이 일상을 살아가며 품고 있던 모든 염려가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는 절박한 감정을 느꼈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렇게 하면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련한 희망을 품으며.
지진이 발생한 당일에 현장으로 향했다. 첫 촬영을 마친 후, 전기를 쓸 수 있는 주유소에 앉아 사진을 편집할 때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2011년 일본에서 호텔이 무너져 세상을 떠난 동료들이 생각났다. 그날 밤을 호텔이 아닌 차에서 보냈다. 차 안에서 추위를 피하고 잠을 청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하루 사이에 3백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고 들었다. 대피소가 긴급히 필요한 사람은 수천 명에 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임시로 마련된 텐트에서 지냈고, 비닐하우스에서 추위를 피하는 가족도 있었다. 주유소 앞은 자동차 연료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리의 상점이 전부 문을 닫아 음식을 구하기 어려웠다. 강진이 휩쓸고 지나간 모든 지역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2~3일이 지났을 무렵,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사이에서 수많은 시신이 수습되었다. 도시의 병원에 영안실이 부족해 체육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고,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번 지진 현장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곳의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셋째 날부터 해외에서 온 구조대가 작전을 펼치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튀르키예 정부와 형식적 절차를 밟느라 파견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건물 잔해를 정리할 수 있는 장비와 차량 여러 대가 이라크와 이란 등지에서 왔고, 그 외 여러 나라에서도 의료 팀을 보내 임시 병원을 설치하는 등 큰 힘이 되어주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 소중한 연대에 오래도록 감사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계적 규모의 구호 활동이 모든 생존자에게 닿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부의 체계적이지 못한 대응 때문일 것이다. 자연재해가 발생한 국가의 대응이 지연되거나 부실하다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튀르키예의 지진은 ‘실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은 불법 건축물을 허가한 부패한 공무원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금전적 이득을 위해 질 낮은 자재를 사용하는 등 부실 공사를 시행한 건설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그리고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결국 재앙을 낳았다. 튀르키예의 칸딜리 천문지진관측소에 따르면 2월 6일부터 3월 6일 사이에 카흐라만마라슈(Kahramanmaraş)에서만 총 1만2천여 회의 여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시작된 이후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튀르키예에서 사망한 사람은 5만 명에 이른다. 희생자 가족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자원봉사자의 활동은 일시적 도움에 불과하다. 지진은 단 몇 분 동안 발생하지만, 그 결과 사람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자연재해의 슬픔을 극복할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들을 완벽히 치유해주지 못한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이들의 심경을 헤아리려 애쓰지만,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괴로움에 겨운 사람들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서도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감히’ 촬영한 순간만이 사진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내가 자연재해의 현장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그곳을 촬영한 사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오늘을 포착한 사진이 당장 엄청난 영향력과 중요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튀르키예는 앞으로도 계속 극심한 아픔을 겪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언젠가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는 건 사진이 아닐까. 그럴 거라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사진들을 마주한다면,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의 희생과 회복력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진은 단 몇 분 동안 발생하지만,
그 결과 사람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