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걸 연대기(The Rocketgirl Chronicles)’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코로나 19로 멜버른이 봉쇄되었던 기간에 시작했다. 당시 거주지 반경 5킬로미터 너머로 나가지 못했고, 밖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하루 최대 두 시간에 불과했다. 내 딸 미아(Mia)가 그때 네 살이었는데,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시기임에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한테 주어진 야외 활동 시간에 재미있는 ‘우주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아이를 꼬마 우주 비행사처럼 꾸며주고, 둘이 함께 동네 곳곳을 찾아다녔다. 그 모습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평소 자주 들고 다니던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물이 모여 이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미아의 여행 테마가 ‘우주’인 이유가 있었나? 당시 미아가 우주에 매료되어 있었다. 미아는 매일 내게 “아빠, 왜 밤이 오면 하늘이 어두워져요?”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관한 아이의 무궁무진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해준 구글에 감사할 정도였다.(웃음) 방대한 개념에 대해 탐구해 가는 미아의 열정을 지지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동네를 여행할 때 입기 좋은 우주복을 선물했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가 소재부터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며 수트와 헬멧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도 헬멧 표면에 종잇조각을 덧붙이는 등 우주복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주복을 입고 밖으로 나선 미아가 자신의 상상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다. 그렇다. 미아의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집을 나서기 전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동네를 한 바퀴씩 돌곤 했고, 목적지를 미리 정해두더라도 도중에 흥미를 끄는 장소를 발견하면 발걸음을 옮길 때도 있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아이는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을 품고 있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즐겁게 탐사를 이어갔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아이가 자연스레 사진으로 남기기 좋은 포즈를 취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사진 촬영은 우리가 수행한 임무의 일부일 뿐이었다.

 

 

미아와 함께한 여행의 시간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미아의 풍부한 상상력 덕분에 나도 아이가 이끄는 여행을 즐기며 친숙한 동네를 새롭게 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미아가 운하 수면에 비친 건물들이 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궁금해할 때, 나 또한 물에 반사되어 나타난 세계를 문득 발견하며 경이를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우리는 여행 동반자로서 많은 일을 함께 했다. 그날 보고 느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내일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며 앞으로 펼쳐질 모험을 그려나갔다. 이제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여행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사실은 전염병이 우리가 했던 여행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증명한다. 미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추억을 쌓아가겠다는 ‘로켓걸 연대기’의 목표는 지금도 변함없다. 우리가 탐험할 수 있는 세상은 현실 세계보다 훨씬 광활하다는 걸 아이와 함께 여행하며 깨달았다.

타지로 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프로젝트를 통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여행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구 곳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관광지를 찾아가더라도,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다면 각 지역이 선사하는 놀라운 경험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방 한구석에서 상상을 펼칠 때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현실에 어떤 경계를 세우거나 지우는 건 마음에 달린 일인 것 같다. 그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면 우리 삶이 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일상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삶을 타임라인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매 초마다 각자의 시간이 그려가는 경로를 따라 여행 중인 셈이다. 그 여행의 체감 속도는 나이대별로 차이가 있다. 젊을 때는 천천히 나아간다고 느껴질 테지만,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며 점점 현실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삶의 운전대를 ‘자동조종’ 상태로 두게 될지도 모른다. 이 상태를 벗어나 모든 순간 충실히 운전하며 타임라인을 알차게 채워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경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을 여행하듯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건 결국 ‘호기심’이다. 세상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때 더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미아의 여행을 담은 사진들이 전 세계 사람들한테 가닿는 것 또한 일종의 여행이 아닐까 싶다. ‘로켓걸 연대기’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라나? 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인상을 받듯이 사진도 동일한 시각적 맥락 안에서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지 않나. 사람들이 ‘로켓걸 연대기’를 통해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며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사진가로서 매우 기쁠 것 같다. 한국 독자들에게 미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 또한 ‘로켓걸 연대기’가 이뤄낸 의미 있는 성취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 스스로 삶의 운전대를 잡고, 각자의 여행을 만끽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