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 서정재 이사는 수장고까지 갖춘 컬렉터이다. 뒤의 작품은 일본 미술가 다이스케 요코타의 그림.

서정재

인테리어 디자이너 

서울과 제주의 집에 컬렉션이 가득 차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장고까지 마련할 정도로 예술품을 사랑하는 서정재 컬렉터의 공간을 방문했다.
아트 토이에서부터 스트리트 아트 작품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의 컬렉션이 흥미롭다.

미국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최초의 컬렉션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980년대 후반, 고등학생 때 추억의 장난감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로보트 태권브이가 최초의 컬렉션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수입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만화 관련 컬렉션을 수집하게 되었고요. 우리나라 만화 캐릭터는 아트 토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드물어서, 얼마 전부터는 개인적으로 의뢰해 아트 토이를 만들고 있기도 해요. 판매용이 아니라 전적으로 소장용으로요.

수장고에 방대한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요 컬렉션을 소개해준다면요? 로보트 태권브이 아트 토이를 3백여 점 가지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 피스도 여러 점 있고요. 그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컬렉션은 1백55년 전통의 루즈(Reuge) 오르골입니다. 다음으론 베어브릭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략 1천여 개를 수집했으니 컬렉션 규모가 큰 편입니다. 미술 작품으론 장 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에디션을 가장 아낍니다. 수장고는 3년 전에 마련했는데,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방문해서 환기를 시켜주고 있어요. 예전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방문했지만요.(웃음) 앞으로 아트 토이와 같은 동심의 세계를 담은 컬렉션을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 개관을 꿈꾸고 있어요. 제가 수장고에서 행복한것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이 세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최근에는 어떤 작품을 새롭게 수집했나요? 아트 부산의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 부스에서 포르투갈 미술가 넬 브록피엘드(Nell Brookfield) 신작을 구매했습니다. 이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그리며 전 세계 컬렉터의 주목을 받고 있죠. 30대의 젊은 작가이지만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는 전시회나 아트 페어에 가서 좋은 느낌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 있어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가격이 높은 작가보다는 가능성 있고 작품이 매력적인 작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작가의 인품도 중요하다생각하고요. 스캔들이 있는 작가의 작품은 흠이 되니까요.

다양한 장르의 컬렉션을 하면서 미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겼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림이 마음에 들어오면, 작가의 인생을 살펴보게 되었어요. 그의 인품에 대한 국내외 평판도 보고요. 많은 컬렉터들이 작가의 유명세에 집중하는데, 저는 그의 삶과 인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초기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한 작가가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린 것을 알게 된 게 시발점이 됐죠.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시작하고 난 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생기기도 했나요? 아이러니하게도 사치가 줄었어요. 예전에는 자동차와 시계를 좋아해서 신나게 구입하곤 했는데, 이제는 모든 용돈을 미술 작품 컬렉션에 쏟아붓고 있거든요. 친구와 술자리를 가질 때에도 집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한잔하는 즐거움을 발견했거든요.

컬렉터를 꿈꾸는 미술 애호가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수집해야 합니다. 컬렉션은 돈도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취향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해요.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자주 보고, 국내외 아트 페어를 찾아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관심 있는 작가의 작품을 주목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이미 팔렸더라도 그 작가의 다른 작업도 있으니 작품세계를 계속해서 탐구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국내 아트 페어로는 키아프, 프리즈 서울, 대구아트페어, 아트 부산, 더 프리뷰 성수 등을 추천합니다. 물론 해외 아트 페어도 가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 우리나라 아트 페어에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간혹 투자를 위해서 많은 작품을 수집했다가 리세일하고, 다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도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많은 작품을 소장하기보다는 일 년에 단 한 작품이라도 아주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자 합니다.

식탁 위에 설치한 살바로르 달리의 작품.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진 소장 작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미술가 윌 분(Will Boone)의 작품은 코로나19 시기에 대출을 받아서 소장했습니다. 대출까지 받아서 구입한 작품은 이 그림이 처음인데, 그만큼 한눈에 반했어요. 21세기에 환생한 앤디 워홀의 느낌을 받았거든요. 앤디 워홀은 사물을 소재로 한 미술을 했지만, 윌 분은 소재를 응용하는 기법이 다릅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거실에는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의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포르투갈 작가 리카르도 파사포르트(Ricardo Passaporte)의 사랑스러운 작품과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도 매력적입니다. 특히 좋아하는 공간은 서재인데, 김보희 작가의 제주 그림과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가 걸려 있습니다. 두 그림이 마주 보고 걸려 있어서 두 작품에 담긴 녹색과 빨간색의 대비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요.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 연작이 서재에 걸려 있다. 건너편에 있는 김보희 작가의 초록색 작품과 아름다운 대조를 이룬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집에 작품을 두는 노하우를 전해준다면요? 아름다운 미술 작품은 그 자체가 인테리어입니다. 미술 작품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인테리어가 과하게 강렬하면 안 돼요. 가구와 가전, 마감재를 깔끔하고 심플하게 하고, 조명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디자인보다는 조명이 중요하거든요. 모든 벽이 화이트 컬러면 다양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니, 아늑함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 집은 두 개의 벽에 다른 컬러를 연출했습니다. 거실의 한 벽은 그레이, 부엌의 한 벽은 네이비 컬러로요. 이 벽에 그림을 걸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멋진 분위기를 낼 수 있어요.또한 액자의 색과 프레임, 소재도 중요합니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작품 특징에 따라 액자를 바꾸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요.

거실에 걸린 키스 해링의 경쾌한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