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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샤넬의 런웨이를 내려다보는 아바나 시민들.

5월 3일, 쿠바 아바나의 파세오 델 프라도 길 위에서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이 열렸다. 샤넬이 초청한 7백여 명의 프레스와 게스트들은 각자의 시각으로 SNS에 #chanelcruisecuba 패션쇼의 순간을 포스팅했다. 이 모든 일이 쿠바와 미국의 외교 관계 회복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지난해 7월, 아바나에 설치된 와이파이 공유기는 샤넬의 런웨이를 전 세계 패션 피플에게 전하는 메신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냈다.

뷰익, 캐딜락, 쉐보레 등 1950년대 이전의 아메리칸 빈티지 오픈카는 샤넬 룩으로 단장한 세계 각국의 게스트와 셀러브리티를 싣고 쿠바 교통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쇼가 열리는 파세오 델 프라도로 향했다. 쿠바에서 <분노의 질주 8>을 촬영하던 빈 디젤을 비롯한 샤넬의 앰배서더 바네사 파라디, 지젤 번천, 여배우 틸다 스윈턴, 마린 백트 등 스타들이 빈티지 오픈카에서 내릴 때마다 베란다에서 신기하게 내려다보던 아바나 시민들은 길가에서 마라토너를 응원하듯 환호하며 이국의 낯선 손님에게 자신의 대리석 길을 기꺼이 양보해주었다. 그러는 동안 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빛바랜 파스텔 톤의 콜로니얼풍 건물에 황금빛 석양이 깃들었다. 그리고 곧 쇼가 시작됐다.

쿠바의 풍성한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샤넬의 방식을 벗어나지 않은 86벌의 컬렉션 의상을 입은 톱 모델들이 대리석 길을 따라 편안한 플랫 슈즈와 플립플롭,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신고 산책하듯 지나갔다. 간혹 등장하는 남자 모델들은 모두 한손에 시가를 들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이다.

아바나 구시가 바로크식 건물에서 영감 받은 강렬한 컬러의 미니드레스, 체 게바라가 애용하던 베레, 쿠바 전통 셔츠를 재해석한 시스루 블라우스, 관광지의 기념품같은 문구를 적은 티셔츠, 샤넬 공방에서 만들어낸 자수와 시퀸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은 어딘지 모르게 레디투웨어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고, 캐주얼하면서 한결 젊다.

 

라틴 밴드 멤버 같은 시퀸 재킷을 차려입은 칼 라거펠트가 꼬마 모델 허드슨 크로닉의 손을 잡고 런웨이에 오르자 어디선가 등장한 쿠바 밴드의 요란한 민속음악과 모델들의 피날레가 한데 어우러졌다. 우리식으로 치면 마당놀이 같은 걸쭉한 춤판이 벌어졌고, 그 열기는 아바나 구시가 산크리스토발 교회 앞의 광장 플라자 드 라 카테드랄에서 열린 애프터파티로 이어졌다.

라틴 인스피레이션 크루즈 컬렉션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맘보, 차차차, 탱고에 대한 칼 라거펠트의 오랜 애정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샤넬의 쇼는 언제나 패션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영감의 원천이 새롭게 바뀌어도 항상 샤넬스럽고 또 샤넬스러워도 매번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