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노출이 허락되는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보다 은유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완성된 새로운 노출이다. 이번 시즌엔 파격적인 커팅의 섹시한 원피스나 크롭트 톱 대신 호기심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속 보이는 옷’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으니까. 비밀스러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스타일은 왠지 한번 더 보고 싶고 생각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는데, 화이트 셔츠 하나만 걸친 여자의 모습이나 보디라인이 드러나는 H라인 스커트를 향한 남성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듯.

 

SEE-THROUGH

이렇듯 은밀한 노출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올여름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시스루 룩을 먼저 주목해야 한다. 언더웨어의 색감이 은은하게 비치는 시폰과 실크, 레이스 룩은 무더운 여름에 어울릴 뿐 아니라 세련되고 우아한 방식으로 관능미를 드러내고 싶은 여성들에게 제격. 섬세한 레이스 소재로 완성한 발렌시아가의 화이트 시스루 룩은 자연스럽게 침실이 상상되는 은밀한 매력을 발하고, 보헤미안 무드를 내세운 클로에는 시스루 소재를 튜닉 톱과 드레스로 풀어내 감각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라프 시몬스의 마지막 디올 쇼를 수놓은 소재 역시 얇디얇은 시폰. 부드러운 시폰 소재에 핑크와 화이트 등의 색감이 더해지니 우아함이 배가됐다. 이 외에 알렉산더 맥퀸과 블루마린, 프로엔자 스쿨러 등 굵직한 패션 하우스가 선보인 시스루 룩이 페미니티의 정수를 보여준다.

 

SPORTY MESH

한편, 메시 소재는 시스루의 나긋나긋하고 청순한 이미지와 반대 지점에 위치한다. 올해 봄여름을 휩쓴 1990년대 트렌드와 맞물려 두각을 나타낸 메시는 스포티하고 캐주얼한 무드로 노출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 스트링을 규칙적으로 엮거나(모양이 그물과 비슷해 네트 소재라고도 한다) 패브릭에 커다란 구멍을 송송 뚫어 완성한 메시 소재는 시스루 룩 못지않게 매력적인데, 이를 다채롭게 표현한 디자이너가 여럿 눈에 띈다.

대표 주자는 단연 알렉산더 왕. 90년대 쿨 키즈 룩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에 등장한 메시 티셔츠와 슬리브리스 톱은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모던 스트리트 룩’에 힘을 더했다. 캡을 푹 눌러쓰고 트레이닝팬츠를 입은 모델들이 더없이 쿨하고 근사해 보이는 데는 단연 메시 소재의 공이 클 듯. 파이널 판타지에서 영감을 받은 미래적인 여전사가 등장한 루이 비통 쇼는 또 어떤가.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미래주의에 매료됐다고 고백했지만 그의 컬렉션이 오히려 관능적으로 느껴진 건 보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네트 패브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물망처럼 보이는 섹시한 드레스를 선보이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 발맹과 발렌티노, 스텔라 매카트니를 보시라. 이쯤 되면 새로운 노출법을 시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보일 듯 말 듯’ 살결이 비치는 시스루와 메시 소재 중 본인의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골라보길. 물론, 두 가지 모두 시도해도 좋겠다. 본격적인 여름은 이제 막 시작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