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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시간에 비례할까? 적게는 수백 시간, 많게는 수천 시간에 걸쳐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샤넬 오뜨 꾸뛰르를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작은 손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프티 망’이라고 불리는 장인들이 오랜 시간 묵묵히 닦아온 기교와 정성 어린 손길이 빚어낸 특별함이 아니었다면 결코 마주하지 못했을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그들을 쇼에 참여하게 하는 게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도 모습을 드러내야죠.” 칼 라거펠트는 지난 7월 선보인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아틀리에 장인들에게 헌정하며 그들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고자 했다. 매 시즌 마법 같은 무대가 펼쳐지는 파리 그랑 팔레는 작업대부터 재봉틀, 거울, 핀, 옷감, 색색의 실과 마네킹까지 그대로 옮겨졌고, 캉봉가에 자리한 공방들의 아주 사소한 모습까지 속속들이 재현됐다. 물론, 1백20명이 넘는 샤넬 하우스 소속 재봉사들 중 78명 또한 그 자리에 함께하며 보이지 않던 공방 장인들의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쇼가 열린 지 20여 일 후 도쿄 긴자 스토어에서는 파리에서 선보인 오뜨 꾸뛰르 의상을 직접 볼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영국 장식 미술가인 오브리 비어즐리의 작품에서 영감 받은 화려한 깃털 장식의 이브닝드레스들을 비롯해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는 재단으로 완성한 실루엣과 구조적이고 그래픽적인 컬렉션이 눈에 띄었다. 디테일을 배제한 말끔한 수트부터 스팽글로 6백 시간에 걸쳐 트위드 효과를 낸 우아한 드레스, 단 하나를 만드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스테이트먼트 장식의 디테일까지. 가히 예술 작품에 가까운 완성도와 찬란함이 두 눈을 현혹했다. 이 모든 의상과 장신구는 쇼가 열리기 7주 전에 칼의 디자인 스케치가 담당 꾸뛰리에에게 전달되며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장인들은 이때부터 마치 칼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스케치에 표현된 작은 선과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무형의 아이디어를 유형의 작품으로 구현해낸다.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샤넬 오뜨 꾸뛰르는 단순한 판타지 창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리 장식박물관에 걸릴 잘 만들어진 아트 피스에 그치지 않고 오뜨 꾸뛰르가 하나의 의상이자 태도로서 바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실용성 또한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드 카펫 행사나 웨딩을 위한 특별한 드레스만이 아니라, 데님 아이템과 함께 입을 수 있는 웨어러블한 트위드 재킷부터 와이드 팬츠, 점프수트에 이르기까지 젊고 모던하게 변주된 다채로운 의상은 하우스의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오뜨 꾸뛰르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었다.

“오뜨 꾸뛰르는 꿈과 환상이 뒤섞인 아주 작은 섬이에요. 패션과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명품이죠.” 칼의 말처럼 오뜨 꾸뛰르가 분명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작은 섬을 감상할 수 있는 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기쁨이 아닐까. 마음껏 꿈꾸고 상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권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