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힐과는 담을 쌓은 에디터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발렌시아가의 슬래시 앵클부츠다. 투박하고 매니시한 앵클부츠야 컬러별로 갖고 있을 만큼 좋아하지만, 이렇게 낮고 날렵한 힐이 달린 디자인이라니! 마치 굽이 부러진 것처럼 사선으로 기운 슬래시 슈즈(Slash Shoes)는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데뷔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키튼 힐의 매력은 우아하면서도 편안하다는 점이 아닐까? 발을 괴롭히지 않고도 이름처럼 새끼 고양이(Kitten)를 닮은 귀여우면서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꽤 유혹적이다. 거대한 플랫폼 힐이나 가느다란 킬 힐에 올라서 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그렇다고 납작한 스니커즈나 블로퍼를 신고 쿨한 척하며 여성스러움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니 그럴밖에.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시즌 디올의 리본 디테일 슬링백인 쟈디올 슈즈(J’adior Shoes)는 출시와 동시에 히트 아이템으로 등극했고,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디올 데뷔 컬렉션 중 최고의 잇 아이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키튼 힐은 디올뿐 아니라 발렌시아가, 베트멍, 로에베, 셀린느 등 영향력 있는 컬렉션에서 메인 아이템으로 빛을 발했으니 이번 시즌 그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지?
새 시즌 키튼 힐의 공통점은 바로 뮬 혹은 슬링백으로 디자인된 점이다. 마놀로 블라닉과 베트멍이 협업해 선보인 로열 블루 컬러의 새틴 뮬을 보라! 베트멍은 클래식한 스틸레토 힐처럼 생겼지만 뒤축을 접으면 슬링백으로 신을 수 있게 디자인해 영민한 감각을 뽐냈다. 셀린느의 앞코가 날렵한 오렌지색 뮬, 로에베의 위빙 밴드 슬리퍼, 드리스 반 노트의 구조적인 모양의 슬링백 등 하나같이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키튼 힐의 또 다른 진가는 어떤 옷에든 잘 어울리는 훌륭한 활용도다. 슈즈만 봤을 땐 페미닌한 룩에만 어울릴 듯하지만 스트리트 패션을 살펴보면 캐주얼한 데님 진 차림에 가장 많이 스타일링한 걸 알 수 있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블랙 드레스에 신고 등장한 1960년대부터 키튼 힐 슈즈가 여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이유는 이토록 차고 넘친다. 여자라면 아기 고양이처럼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키튼 힐을 어떻게 탐내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