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형광펜 같기도, 청량한 열대 과일 주스 같기도 한 네온 컬러는 올봄 빼놓을 수 없는 키 트렌드다. 선명한 네온 컬러를 보자마자 무채색을 향한 디자이너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이내 지겨워졌을 정도. 게다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새 시즌 네온 컬러는 겨우내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네온 컬러만큼 봄과 여름에 어울리는 색깔이 또 있을까요? 게다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에밀리오 푸치의 새로운 수장 마시모 조르제티의 말처럼 형광색 물감을 곱게 바른 듯한 에밀리오 푸치의 컬렉션은 그 자체로 뚜렷한 존재감을 발한다.

 

사이키델릭한 네온 컬러로 물든 런웨이 중 특히 돋보이는 하우스를 꼽자면 단연 발렌시아가다. 뎀나 바잘리아의 탁월한 감각으로 재구성한 ‘모던 페미니티’는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1980년대 무드의 복고적인 실루엣에 곁들인 핑크,라이트 튀르쿠아즈, 애시드 그린 등 컬러의 향연은 쇼의 완성도를 높인 일등 공신이었다. 또 머리부터 발끝까지 네온 컬러로 뒤덮은 과감한 스타일링은 부담스럽기보다 오히려 ‘형광색’의 새로운 매력을 일깨운 시도였으니.

 

여성들의 식을 줄 모르는 찬양 속에 ‘셀리니즘’ 왕국을 공고히 하고 있는 피비 필로 역시 시각을 자극하는 색감을 곳곳에 배치해 네온 컬러의 매력을 설파했다. 각진 형태의 매니시수트와 청아한 화이트 드레스 사이로 나타난 네온 룩은 런웨이에 산뜻한 에너지를 주입했고, 컬러풀한 주얼리와 스타킹을 비롯한 액세서리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뿐만이 아니라 메탈릭한 네온 컬러 언더웨어와 아웃도어 룩을 선보인 알렉산더 왕과 DKNY, 가죽 퍼펙토 재킷에 다양한 네온 컬러 아이템을 더한 하이더 아크만, 우아한 드레스를 완성한 발렌티노와 보테가 베네타, 사랑스러운 ‘네온 걸’의 탄생을 알린 미우미우와 몰리 고다드도 기억해야 할 브랜드.

반가운 점은 새 시즌 네온 룩이 한층 간결하게 정제된 실루엣으로 선보였다는 사실. 레트로 무드와 스포티즘에 충실하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동시대적인 디자인의 네온 룩은 무채색 마니아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하지만 회색빛 도시에서 외로운 ‘형광펜’으로 남고 싶지 않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무채색 옷차림에 네온 컬러 티셔츠로 포인트를 주거나 백과 슈즈 등의 액세서리부터 시도하길. 새로운 계절, 스타일에 산뜻한 에너지와 활력을 더하는 데 네온 컬러 만큼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