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시즌 트렌디한 옷을 사기 위해 드나들던 자라에 타임리스(timeless) 웨어 섹션이 등장했다. 군더더기라곤 없는 캐시미어 스웨터, 툭 떨어지는 오버사이즈 코트, 질 좋은 자카드 드레스 등 클래식한 옷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더 나아가 연령대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모델 말고시아 벨라, 크리스티나 드 코닌크, 야스민 와르셈이 등장한 광고 캠페인까지 보면, 자라 타임리스 라인엔 ‘누구나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 있다는 이미지가 단번에 박힌다.
SPA 브랜드가 한 철 입는 옷을 판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클래식한 디자인에 우수한 품질을 갖춘 라인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세 번째 컬렉션을 론칭한 유니클로 U 라인도 지향점이 비슷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프 르메르는 ‘베이식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목표로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니트 드레스, 심리스(seamless) 다운 재킷, 체스터 코트를 디자인했다. 한결 간결하지만, 최첨단 테크닉을 동원하고 신소재를 사용한 점이 남다르다. 유행을 벗어나지 않는 디자인,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이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된 셈이다.
모던한 테일러링에 중점을 둔 H&M 스튜디오 리미티드 컬렉션도 전 세계의 특정 매장에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 파리 편집숍 콜레트와 협업한 캡슐 컬렉션을 전개한다. 지난 8월 론칭한 브랜드 아르켓(Arket) 역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베이식 컬렉션을 선보인다. 오가닉 메리노 울 컬렉션이나 무게와 두께가 각각 다른 코튼 티셔츠 등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든 기본적인 옷이 주를 이룬다.
파산 신청을 하고 사라졌던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의 쿨한 복귀도 이러한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기존과 동일한 로고와 깔끔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스웨트숍 프리(Sweatshop Free)’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 온두라스의 화기애애한 생산 공장과 온실가스를 줄이는 시스템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둔 이들의 홍보는 옷의 품질을 강조하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무조건 빨리, 많이, 저렴한 옷을 만드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듯 말이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분위기 덕분에 오래도록 손이 가는 옷이 도처에 깔리게 되었으니, 우리에 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까?